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에서 왔는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는가?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정리하지 않은 일체의 칭의론은 사람의 관점일 뿐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성화 이전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한다(롬 8:28). 그 하나님의 선을 우리는 은혜로 이해하는데, 사실은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이 선을 이루심의 전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사람으로부터 오지도 않았고, 전혀 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전혀 하나님의 선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선에 도달 할 능력도 없을 때 이미 하나님을 구원을 이루셨다고 말씀하신다(롬 5:8-9).
하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은 ‘아시는 것으로부터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롬 8:28-30). 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서순(序順)을 소위 ‘구원의 서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서순은 시간적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순서가 오직 삼위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고 끝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신 바’는 인간의 의지적 선행이나 윤리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에서와 야곱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이 ‘아신 바’는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할 때 그것을 조건으로 삼으셨다면, 인간의 행위, 즉 인간의 윤리 도덕의 행함으로 구원의 조건이 될 것이나, 하나님은 성경의 모든 구원 사상의 통일의 위해서 일체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돌리신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랑하시기로 정하신 자를 아시며, 아신 자들만을 부르신다. 그리고 부르신 그들만을 의롭다 하시는데, 이 이유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심이다(롬 8:29). 본받아야 할 이 형상이라는 말은 ‘유사하게 닮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소위 성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신 자들, 또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칭의가 성화보다 먼저인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화를 칭의 보다 앞에 놓으면 기독교는 인간이 만드는 윤리 도덕의 종교가 되고 만다. 그러나 칭의가 성화보다 우선하므로 아신 자, 부르신 자들의 삶(성화) 이전에 ‘의롭다’는 하나님의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이성으로 다 깨달아 알 수 없는 비밀일 것이다.
따라서 구원은 소명(召命)에서부터 영화(榮華)까지의 총칭이다. 그리고 이 구원 전 과정이 인간으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로 말미암는다. 따라서 소명으로부터 중생, 회개, 신앙, 칭의, 양자. 성화와 구원의 완성인 영화롭게 하시는 전 과정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완성되었다.
부르심의 대상도, 시기도, 방법도, 성화의 삶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는 현재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고, 그것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의 과정에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침입한다고 한다면 그 만큼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義)를 훼손시키는 행위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훼손하는 인간의 일체의 사상이나 노력을 용납하지 않으시기 위해서 일찍이 타락한 인간의 가치를 정해 놓으셨는데, ‘버러지’, ‘구더기, ‘벌레’ 등의 호칭으로 하나님의 의에 전혀 도달 할 수 없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교훈하셨다.
인간의 구원이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은 자가 구원을 잃는 일도 마땅히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듯이, 인간의 노력이나 윤리적 삶으로는 구원을 잃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이 윤리적으로 완전하게 타락하는 것을 용납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집 나간 탕자가 타락의 삶을 사는 동안 아버지는 그를 기다렸듯이, 비롯 일시적인 타락은 허용하시나 반드시 스스로 아버지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이는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서다(눅 15:23-32). 칭의를 논하고 구원을 논하는 신학자들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신 삼위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 속에 들어 있는 그분들의 선하심과 고난과 인내와 이루심에 의를, 훼손하는 일체의 일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순두부 한 그릇을 식탁에 내어놓기 위해서 주방에서는 많은 과정의 수고가 있었듯이, 한 사람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미 많은 일들을 하셨고 또 하셔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윤리 도덕,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지고선(至高善)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