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아버지! 저 왔어요. 며칠이나 있다 가니?/ 내일 아침 가야 돼요. 모레 가면 안 되니?/ 모처럼 자식과 마주하는 저녁 밥상 ②제 할 짓 다 하고, 인심 쓰듯 찾아뵙고/ 온갖 생색 늘어놓고 그것이 효도인양/ 그 마음 아시면서도 내색 않는 아버지 ③아버지, 저 갈래요. 잊은 것 없나 잘 챙겨라!/ 여보! 애들 줄 것, 다 차에 실어놨나?/ 평생을 다 퍼주고서도, 죄스러워하는 마음 ④지팡이 의지하여 잘가라 손짓하는/ 가슴 속 그리움을, 자식인들 알겠나/ 내 생전 몇 번이나 오려나, 달래시는 그 마음 ⑤너는 나 없어도 나는 너 없이 못 산다/ 너도 자식 키우면 내 마음 알겠지/ 그 마음 알 듯하니 그 자리에 안 계십니다"(유화웅의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별일 없으시죠? 진지 잡수셨어요? 몸은 어떠세요? 동생들 소식은 들으셨어요? 잠은 잘 주무시죠? 운동 열심히 하세요!/ 저희들은 잘 있으니 염려 마세요/ 또 연락 드릴게요/ 전화 한 통화로 효도하고 삽니다"(유화웅<효도>) "자식 온단 소식 듣고 문밖에서 아침부터/ 오는 길 밀리잖나, 왜이리 늦어지나/ 조이는 마음 감추시며, 헛기침만 하십니다"(유화웅<아버지>)
네 곳 학교의 교장을 역임한 바 있는, 독실한 기독교 교육 전문가 유화웅(劉和雄) 장로의 효심 지극한 글은 그의 개인적 경험이면서 또 우리 모두의 경험이기도 하다. '아버지'라는 명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父傳子傳)이라는데, 아버지는 나의 생각과 언어와 행동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또 나는 나의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이어져 가는가? 정말 생물학적으로 설명되는 DNA의 공통점이 있기는 한 건가? 개인은 낳아서 자라나 죽고 또다시 자녀가 태어나 살다가 죽고 하는데, 그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연결되는 그 무엇이 과연 있는 것인가?
아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다시 노인을 거쳐 사라진다. 대나무의 각 마디처럼 한 마디씩 살다가 떠나가도 그 대나무의 방향은 올곧게 자라난다. 사람들이 대를 이어 세대가 계승되는 것도 이와 같을까? 바쁜 일과 속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순간들이 있기는 한 건가? 부자지간이 애틋하고 영원한 사랑과 그리움이듯이 부부관계는 또 어떤 것인가?
"젊을 때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아서 부부 연을 맺었다/ 결혼하지 육년이 지나 상끝에 새끼가 달리기 시작할 때는, 둘이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부부며 사랑이라 생각했다/ 다시 석삼년이 지나, 서로 소 닭보듯 해도 부부는 한 가족이므로 같이 살아야 하는 걸로 알았다/ 그래서 양심도 묻어두고, 남보다 돈 잘 벌고 성공하여, 처자식 잘 먹여 살리면 그게 최고의 가족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나이 칠십 넘어, 자식들 다 떠나보내고, 외롭고 옹색한 길에 드니 가시버시(부부의 낮춤말)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어디 가나 혼자 아니고, 가려울 때 등 긁어주고, 매사에 무람 없고(스스럼 없고)두남 두니(탓하지 않고 편들어 주니) 그게 바로 부부더라"(최복현<부부>)
"사람이 살아가면서 더워 추워한다고 무슨 소용 있나, 미워 예뻐한다고 달리 방법 있나, 느낌이나 생각이 나와 무슨 생각 있나/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지만, 철부지가 때를 맞춰 산다는 것도, 그리 만만치가 않다/ 함부로 말할 수도, 일일이 따질 수도 없는, 웃고만 살 수도, 울고만 살 수도 없는, 하물며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란, 더욱 난감하다/ 먹고 자고 싸면서 시간만 축내고, 세상 한 구석을 차지한 채, 말하고 움직이는 것 초차 정당한지, 판단하기가 간단치 않다/
그래서 생각도 변화도 없이, 물에 물탄 듯 살고자 해도, 그렇게 놔두지 않는 자아(自我)라는 것이, 산다는 모순의 연속이. 내 확신에 오류가 얼마나 많은지 발견할수록 두려운 것이 삶이거늘 하물며 무명(無明: 근본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을 걷어내는 일이야, 멀고먼 구경(究竟: 궁극, 사리의 마지막)의 길이야/ 지금은 오직 주(主)와의 연(緣)에 숨어 자위(自慰)의 종복으로 살아갈 뿐이다. 고백하며 엎드려 살 뿐이다"(최복현<산다는 것이>)
한 시인의 감성으로 느끼고 깨달은 부부의 도리나 행복의 계산법 그리고 좀 더 근원적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생각의 단서를 준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일 뿐 아니라 가정을 생각하는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입양의 날(11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 (20일) 부부의 날(21) 등이 연속돼 있다. 어찌 부모와 자녀, 그리고 부부의 중요성을 5월 한 달만 생각해서 되겠는가? 그러나 무디어진 우리들의 감성과 인간 도리에 대해, 그리고 삶과 행복에 대해 한번 더 짚어보고 가라고 예정돼 있는 5월이 아니겠는가? 가족의 의미, 부모됨과 자녀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보는 시간이길 빌어본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