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환
(Photo : 기독일보) 최윤환 목사.

화사한 아침의 햇살은 눈이 부시다
게레르트 순교의 언덕을 무겁게 공기 마시며
부다페스트 도시를 세로로 질러 흐르는 시원한 다뉴브, 옆구리에 끼고
마리아 테레지아 오스트리아 여왕시대를 거처
프란시스 요제프 왕이 건축한 궁전의 화려한 왕궁 앞에서
강 맞은편 수십 개의 뾰족탑, 파란 하늘을 유영하듯 반짝이는 국회의사당
도화지 안에 펼쳐 놓은, 天然 色 살아 있는 그림이다

아스팔트 보도를 차박차박 소리 번지며 오르는 구불 길 곁
일. 이차대전에 사용되었던 장신의 대포 곡사포들이 이어 서서
그날의 상흔(傷痕)을 남긴 채,
총탄자국의 성벽엔 수없이 할퀸 자국으로의 요새(要塞)성터
돌 굳은 성벽의 포탄 구멍자국이 길게 일그러져
그날의 아픔을 그대로 훑어 내리고 있구나.

언덕 허리를 돌아오를 때
전쟁 흔적(痕迹)의 정점에 오르면
하늘 찌르게 솟아오른 구소련의 패전 탑이
모스코바를 향해 여전히 월계 잎 높이 쳐들고
나라 되찾은 승리를 소리치고 있는데
절절한 전쟁의 상처 입은, 낱낱 아픔들이
해맑은 공기를 때리나 부다

지금에 사 저 아름다운 도나우
다듬어 놓은 인간의 미학, 그래서
인간 영혼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
긁고 긁히는 아픔을 넘어서, 순교를 또 넘어서서

인간영혼의 거대한 작품(作品)이여,
미학의 지혜는, 깊은 다뉴부 수액(水液)을 담아 올려, 영원하여라
재창조의 진리를 가슴 속에 품어
영원하여라, 영원하리라.

처음에는 왜 저 '게레르트' 傳道者가 박해 순교로, 저 높은 언덕 산에서 상자에 갇혀 바닥 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머리 안에 그려 보면서, 몸서리가 처 졌드랬습니다. 그러다가, 아! 인간은 內面 속에, 저런 勇士의 용기도 솟아오르는 수가 있구나, 마음을 가다듬어 보았습니다.

부다베스트, 그래! 오스트리아 왕국의 壓制에 抗拒도 긴 세월 해 내면서, 1.2차 대전의 소용돌이에도 휩쓸리면서, 구소련의 공산주의 軍制에도 쓰리게 견뎌 넘으면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자신의 歷史的 소리를 떨구어 뜰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물러 떠나간 敵의 수도 모스코바를 향하여, 자국 승리의 월계수를 널리 비쳐 처 들어 주고 서 있습니다. 인간 생명은 진실로 질긴 것입니다. 아무리 밟고 또 짓밟아도, 다 끝장내어 손들고 마는 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짓밟히면 밟힐수록, 곁으로라도 더 아름다운 빛깔을 비쳐낼 줄 아는 것이 인간 生命입니다. 아니 짓밟은 자들의 이름들은 세월 흘러서 간 곳이 없어져도, 짓밟힌 용사들의 이름들은 세대를 걸쳐 서서, 더 두드러지게 떠오릅니다. 이를 다른 轉移된 표현으로는 人間美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나는 우리나라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인간 누구나의 개개인의 역사나 생애도 줄기차게 이 그림을 그려내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굳게 다짐합니다.

'부다페스트'는 멀리서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뉴브에 씻기어, 도시가 전체가 맑습니다. 거리에 새겨진 건물 벽의 조각들이나, 고답(高踏)스럽게 곳 곳 세워진 기념물들이나, 그 손끝마다 묻어진 구석구석마다가 사람의 향기로운 냄새가 짙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창조주의 귀한 선물이기에, 우리는 이 감탄을 내부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세월 흐르면 흐를수록 다듬어져 가는 인간 지혜의 점철(點綴)의 寶石이 되어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