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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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목사

BF축제에 오신 여러분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Beautiful Church 에서 Beautiful Festival은 가장 큰 축제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축제입니다. 이웃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축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아름다운 소식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요한복음 3:16절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거의 모든 크리스챤에게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아이들도 노래를 부르며 외우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캘리포니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In-and-out 햄버거 포장지에도 쓰여져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하는데 얼마만큼 사랑하신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이 깨달아지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힘들어지고 중병으로 고통하는 한 집사님이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고 하나님의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라며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식어져가고 있다는 고민을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친구 분은 이렇게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친구 난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귀여운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부드러운 두 눈으로 지그시 바라볼 걸세. 아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옹알거려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그 아이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이 행복해 할 것일세. 그 아이가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까?

수많은 날 밤잠을 자지 못하고 우유를 먹이며 수많은 기저귀를 갈았다는 것을 모를걸세. 더러워진 아이를 씻기며 흘렸던 땀이 얼마나 되는지 알까? 감기가 들어 열이 나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 모를걸세.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빠 미워하며 야속해 하지 않는가 ? 늦은 밤 게임을 그만하고 잠자리에 들라고만 해도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생각할걸세. 내가 가슴 아파 고통스러워할 때도 무심한 아이는 혼자만 즐겁게 떠들고 놀걸세.

설사 죽는다고 해도 며칠 동안은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고 살걸세. 나에게 1원도 가져다주지 않고 끊임없이 돈을 요구할거야.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그 아이를 사랑하지. 이 아이는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때까지 한 참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도 그 사랑을 받는 자식은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부모는 여전히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생명보다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사랑을 전혀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 놀라우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사랑입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인간은 정죄를 받아 죄를 떠나는 법이 없고 단지 사랑을 받아 죄를 떠나게 됩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어느 목사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남산을 중심으로 구두닦이를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 유난히 추웠던 날 같이 구두를 닦는 소위 똘만이들과 함께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 때 남산 가까이에 있던 영락교회가 생각났습니다. 그곳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잠시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한 사람, 두 사람씩 나가는데 유난히도 키가 큰 한경직 목사님께서 우리 구두닦이들을 좀 보자고 하셨습니다. 의아한 채로 목사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런 몰골로 이런 곳에 오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우리 일행을 의자에 앉혀놓고 기도를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축복 기도를 해주시는데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뜨거운 눈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이 청년이 예수를 믿고 죄악의 길로 가지 않고 이 사회에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 목사님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눈물이 가짜라는 생각이 들어 눈을 뜨고 목사님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목사님은 많은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진실하신 목사님의 사랑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구두닦이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목사님의 사랑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배우며 고검, 대검을 거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후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말하기 전에 요한 3:16절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는 말에 대한 설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으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묻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수 있습니까?

그 때 주님이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고 하시며 [12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늘의 일은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가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인자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땅의 일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매달았습니다.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본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민수기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다가 불뱀에 물렀습니다. 그들이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구리뱀을 장대에 매달고 사람들로 구리뱀을 쳐다보게 했습니다.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본 사람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말을 믿지 않고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비슷한 사건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질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됩니다.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하늘로부터 났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십자가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듭남은 내 노력이 아닙니다. 생명의 씨가 들어올 때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이 들어올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휘튼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교수직을 얻은 짐 엘리엇은 에콰도르의 아우카 족이 너무 흉포하여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아 복음을 받지 못했다는 글을 읽고 아우카 족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몇 달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마침내 짐 엘리엇을 찾기 위해서 나셨던 수색대들은 참혹하게 찢겨서 죽어있는 그의 시체와 유품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폐간이 된 Look이란 잡지에 화보가 그대로 실려 온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짐 엘리엇의 부인이 1년 후 간호사 훈련을 한 뒤에 아우카 족에게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이 사랑해서 죽었던 그 민족을 향해서 간 것입니다.

그런데 아우카 족의 특징은 남자는 죽이지만 여자는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자를 다치게 한 자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 부인은 모르고 갔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그들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안식년이 되어 돌아간다고 하자 추장이 온 부족들을 모아 놓고 파티를 열어주면서 물었습니다. “늘 앞서서 고통을 함께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 때 대답합니다. “사실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사람이 내 남편입니다. 그리고 나와 내 남편이 섬기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우카 족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짐 엘리엇을 죽였던 청년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교대회에 와 간증을 했습니다. 그가 받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증거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질 때 그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 아들의 무능함이 아닙니다. 사랑이 능력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이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하나님 아들이 당한 고난의 상징만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의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사람입니다. 개의 아들은 개입니다. 소의 아들은 소입니다. 돼지의 아들은 돼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가장 닮은 모습입니다. 아버지를 닮은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통해서만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이 일어나게 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여주고 계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십자가를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요한 3:18-21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심판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