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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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규 목사.

기독교의 최대 최상 최후의 메세지는 '부활' 이다

'부활' 이어야 한다.

기독교의 존폐는 부활신앙에 달려있다.

 

부활의 확실성을 전해주는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만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아멘' '아멘' 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지 단지 믿음의 내용만이 아니리는 것이 분명하다'

할렐루야!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믿음도 헛것되며 우리는 여전히 형벌 받을 죄인 신세였다.

구원도 없었고 영생도 없다.

 

인간은 죽는다

지금도 유한한 인간은 죽어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죽음 저 넘어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겁을 먹고, 떨며, 불안해하고, 비겁해지고 있다.

그런 인간에게 시급하게 전해야 할 메세지가 무엇일까?

'부활'이다 '부활 신앙'이다.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년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나이를 먹고 늙어가며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기는 살아도 결코 세상에 매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날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살고 있다.

 

'부활'이 헬라어로 '아니시스타스' '일어나라' 이니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부활 신앙'이 부활하여 일어나야 하겠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