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陶淵明)과 소동파(蘇東坡)의 꿈 이야기

중국의 동진때의 시선(詩仙) 도연명(陶淵明)은 입신의 포부를 가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령생활 80일만에 향리 전원으로 돌아간다. 이때에 쓴 유명한 시가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는 논밭을 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전원 시인으로 맑고 깨끗한 시를 많이 썼다. 그는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민간인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시는 생활로부터 스며나온 마음의 부르짖음이었으며, 따스한 인간미가 서려 있다.

그의 귀거래사의 일절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리. 내 밭과 뜰에 잡초 가득하리니. 내 영혼이 육체의 종이 되었다고 헛된 후회와 슬퍼만 하고 있으랴.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 미래는 쫓아가도 늦지 않았다. 어제는 틀렸더라도 오늘은 내가 옳음이로다. 가볍게 떠서 배는 지나가고 바람은 산뜻하게 옷깃을 스치는구나. 나그네에게 길을 묻지만 새벽 희미함이 애석하구나. 내 옛집 지붕이 보여 걸음을 빨리하여 달려갔더니 하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문 옆엔 사랑스런 아이들이 있구나. ....(중략)고향으로 돌아가리, 홀로 사는 법을 배우고, 세상과 나는 어울리지 않으니, 무엇을 세상에서 더 찾을 것인가.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가 흡족하고, 음악이 있고 책이 있으니 더욱 흡족하구나. 농부가 다가와 봄이 뜰 이곳저곳에 왔으니 나가 함께 밭을 갈자고 한다. ..."

도연명의 꿈은 자연과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여유자적한 생활이었다. 소동파(蘇東坡)는 도연명보다 5백년 후에 나타난 북송시대의 시인이다. 그의 유명시 화도연명의고(和陶淵明擬古)에 " ...主人枕書臥(주인침서와)하야 夢我平生友(몽아평생우)라 忽聞剝啄聲(홀문박탁성)하고 驚散一盃酒(경산일배주)라 倒裳起謝客(도상기사객)하니 夢覺兩愧負(몽각양괴부)라,,," 란 구절이 있다. 번역하면 "... 주인은 책을 베고 누워서 내 평소 벗을 꿈 꾸었네 문득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놀라 일어나며 한잔 술 엎어버렸네 바지 꺼꾸러 입고 일어나 객에게 사과하니 꿈 깨어 둘 다 저버린 것 부끄러워라..."

소동파는 도연명의 시에 화답시를 400수나 썼다고 한다. 이 시는 그런 화답시의 하나인데, 본문에 나오는 夢我平生(몽아평생우)의 평생우는 시선(詩仙) 도연명을 가르킨다. 얼마나 그리워하였으면 꿈속에서 도연명이 찾아오는 꿈을 꾸었을까? 소동파의 본명은 소식(蘇軾)이다. 그는 문장가, 학자, 정치가로 그가 장강줄기 적벽에 유배되어 살면서 스스로 동파거사(東坡居士)라 불렀는데 후대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것이 그 필명의 기원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 소순(蘇洵)과 그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도연명과 같이 이상주의자로 자연과 사람을 사랑한 다정다감한 사람이었기에 각박한 현실 정치에 적응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오늘날도 도시 생활고때문에 고향을 찾는 귀농민들이 많다. 그때 도연명이나 소동파처럼 귀거래사의 넉넉한 꿈을 품는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