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라는 글자에서 획 하나를 슬쩍 떼어 내면 그것이 독사가 된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들 사이에는 ‘그 사람 목사인가 독사인가 잘 살펴보라’는 말도 많이 돌아다닙니다.

허지만 목사들의 이야기는 사뭇 다릅니다. 목사노릇 제대로 하려면 가끔은 독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나운 이리떼들로부터 선량한 양떼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독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사가 되어야 할 바에는 독이 잔뜩 들은 왕독사가 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농담이지요. 자기미화라 할 수도 있구요. 목사가 독사처럼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목사는 어디까지나 목사여야 하고 그것도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초와 독초 사이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목초는 양떼들에게 마음 놓고 먹이는 좋은 꼴을 뜻합니다. 반면에 독초에는 양떼를 병들게 하거나 죽여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초와 목초는 글자 한 획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성경말씀을 영혼의 양식이라 부릅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풀어 영혼의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있어서도 목초를 먹인다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독초를 먹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아니, 정통과 이단 사이에는 이단(異端)이라는 글자의 뜻 그대로 오직 끝이 다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명석이라는 자가 성폭행으로 중국에서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국제크리스찬연합’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그 교주노릇을 해 왔는데 종교를 빙자하여 오랫동안 젊은 여성들을 성폭행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국에서는 그 피해자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일본과 타이완에서도 몇 백 명 수준이랍니다. 가히 단체 이름을 ‘국제성폭행연합’이라고 고치는 것이 그 행위에 걸맞을 것 같습니다.

“그 놈 힘도 좋아, 나이도 이제 60이 넘었던데....”
“요즈음 젊은 여자애들 속이 텅텅 비었지, 그렇게 쉽게 정조를 내동댕이치다니.”
“어쨌거나, 기독교에는 독버섯이 너무 많아서 큰 걱정이네요.”

반응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목사와 독사, 목초와 독초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 사람도 목사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다지만 어찌 목사이겠습니까? 독사일 뿐입니다.

그가 먹인 꼴도 추종자들에게는 목초처럼 보였겠지만 결국 독초에 불과하구요. 천사의 말처럼 설교하면서도 행동과 인격은 짐승 수준이면 아무리 성경을 잘 풀어도 그건 독초일 뿐입니다.

허지만, 그 정명석이라는 자만 홀로 독사목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천사처럼 설교하고 악마처럼 행동하는 목사들이 어디 한두 명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