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교회다운 교회가 있고 교회답지 못한 교회들도 있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첫째로 세우신 목자가 하나님이 보내셔서 세우시고 붙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종이어야 할 것이고 그 종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를 이끌며 양떼들로 하나님 기대에 합당한 성도되게 하기 위해서 목회 방침이 확실하고 영적 체질 신앙이 하늘나라로 통하는 교회가 됐을 때에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와 능력으로 선포되어져야 하고, 그 말씀에 부딪히는 심령들이 죄악의 응어리가 깨어지고 녹아지고 부서지고 완전히 거듭나서 의인의 반열에 거룩한 성도로 구원을 얻어야하며, 구원 얻은 성도들이 성령에 이끌리는 영적 소망을 목적으로 믿음으로 살기를 힘써서 목자와 함께 그리스도의 나라 확장에 합심 전력할 수 있을 때 그 교회가 바로 교회다운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방색을 드러내며 폐당을 짓고 서로 헐뜯고 싸우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기를 힘쓰는 것이 가장 바로 믿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계 선교를 전심으로 시작하게 하셨는데, 그 바울의 선교를 다른 차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레데라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거기서 이방인으로서 디도(원어로 티투스)라고 하는 사람이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어지고 회개함으로 거듭나서 성령을 받고 사도 바울과 같이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믿음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에게 말씀을 통하여 체계적인 복음을 깨우쳐 주고 기도 훈련을 통하여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영력으로 무장하게 하고 또 사도 바울을 함께 모시고 살면서 바울 사도께서 밤낮 소원하고 애쓰고 수고하며 몸부림치는 삶의 목적이 뭔가 그것을 디도가 잘 깨달았습니다. 디도는 성경에서 디모데와 같이 사도바울에게는 믿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도 사도 바울을 믿음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영적 성과를 위하여 자기 생애를 헌신하고 희생하며 전도하고 봉사하기를 힘쓰다가 사도 바울의 그 신앙 생활, 사명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도 바울의 신앙과 신학 또 사명 의지와 또 희생 봉사하는 것을 그대로 전수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아들이라고 바울은 거침없이 사랑하는 아들 디도라고 불렀던 겁니다. 아버지 바울을 믿음으로 아주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의 신앙생활이 상당히 성숙되고 또 수준급으로 자라게 됐기 때문에 그를 그레데라고 하는 지역에다가 남겨 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레데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목자를 세워야 하는데 그때엔 신학교 제도가 없었던 시절이라 그 누구를 교회의 목자로 세운다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디도를 그레데라고 하는 섬에다가 떨어뜨려 놓은 이유는 그곳에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진 여러 동네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들마다 무슨 부족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아 주고 또 바울이 명한 대로 각 동네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장로라고 하는 것은 교회 목회를 위한 목자를 여기서 장로라고 기록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장로라고 하는 것은 전부 목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자를 어떤 기준으로 세우느냐면 6절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신앙인으로서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책망 받을 약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한 것은 일부다처제로 여자 여러 명 데리고 사는 일들이 아주 보편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되려면 자기 자녀들 , 아내나, 부모님들의 믿음이 하나같이 확실한 가정을 꾸리는 사람이어야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목회자를 일명 감독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또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나, 교회 직분자들이 약점이 많고 책망받을 일이 많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으로 칼날같이 찔러 쪼개고 지적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게 될 때에 자기 입장 때문에 힘 있는 교훈을 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고 그 반대로 그 약점이 상대방들로 하여금 교육적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애타게 복음을 위하여 순교적 각오로 피나는 수고와 고생과 노력을 하면서 그가 마지막 순간 순교하기까지 힘쓰고 애썼던 것은 자기 영혼이 하늘나라에 영광스러운 자격으로 들어갈 수 있기 위함이 첫째였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시키는 성과를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이 말씀은 그레데라고 하는 곳에 여러 집단이 있었는데 거기의 지도자들은 아부하는 말을 해서 상대방의 주머니를 노리고 뺏어 챙기면서 못된 짓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할례당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그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 중에도 유대교에 입교해서 할례를 받은 사람들까지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유대교를 고집하느라고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아주 헐뜯고 비방하면서 예수 같은 거 믿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라는 식으로 선동하면서 많은 영혼을 노략질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엔 영지주의도 끼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복종치 아니하고, 즉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가 많다는 것은 진리도 아니고 구원의 소망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헛소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이용해 먹고 주머니 털어먹고 못된 짓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가정들이 망쳐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 가정은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시고 하늘 복을 얻어 하늘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가정이 항상 영적으로 하나 되어져야 하고 그래서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 모시고 사는 신령한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그레데 사람들처럼 거짓말쟁이, 또 악한 짐승처럼, 또 배만 위하는 거짓말쟁이 되지 말자는 것과 사람처럼 살아야 사람대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기대와 관심과 대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레데인들의 악함을 엄히 꾸짖어서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고 영적 소망의 구원을 얻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에 유대교의 선동에 휩쓸려 속아서, 멸망의 길로 빠져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기에 사도 바울 혼자서는 세워진 모든 교회들을 다 보살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디도는 그레데 교회의 총책이 되어서 사도 바울의 손발 노릇을 잘 하므로 그레데의 복음화를 위하여 놀라운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저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동하는 생활의 모습은 하나님 모르는 사람처럼 안 믿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전도의 문을 닫게 하고 교회를 비방 듣게 하고 못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시인하고 행동으로는 부인하는 자, 가증한자가 되고 복종치 아니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도 그간에 선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교하는 방식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선교지가 여러 군데 있으면 그 지역 단위로 각 선교사를 보내서 교회 목회 사역을 하게 하고 그 어느 지역에 미주면 미주, 호주면 호주, 또 아프리카면 아프리카, 유럽이면 유럽 이런 곳에 감독자를 꼭 파송해서 그 감독자로 하여금 그 지역 모든 선교사들을 총괄해서 바른 사역을 하도록 보살피고 이끌어 주는 역할로 선교하는 방식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훌륭한 목자를 모셔야 하고 여러분들의 믿음이 그 참 선한 목자를 통하여 바로서서 하나님 앞에 목자의 신앙처럼 인정받아야 할 것이고 그 믿음 가지고 생활 신앙으로 본을 보이고 또 은혜와 덕을 끼치면서 선교에 힘써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시키는 것은 곧 자기가 하나님 앞에 가서 칭찬 듣고 영광스러운 자격을 갖출 수 있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 바로 세워서 세계 선교에 여러분들이 이 교회 역사 끝 날까지 자원하는 열심으로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자기 개인의 생활이 모범적인 생활로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는 모습을 갖추어 갈 때 하나님이 기꺼이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8~20)
교회다운 교회는 첫째로 세우신 목자가 하나님이 보내셔서 세우시고 붙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종이어야 할 것이고 그 종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를 이끌며 양떼들로 하나님 기대에 합당한 성도되게 하기 위해서 목회 방침이 확실하고 영적 체질 신앙이 하늘나라로 통하는 교회가 됐을 때에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와 능력으로 선포되어져야 하고, 그 말씀에 부딪히는 심령들이 죄악의 응어리가 깨어지고 녹아지고 부서지고 완전히 거듭나서 의인의 반열에 거룩한 성도로 구원을 얻어야하며, 구원 얻은 성도들이 성령에 이끌리는 영적 소망을 목적으로 믿음으로 살기를 힘써서 목자와 함께 그리스도의 나라 확장에 합심 전력할 수 있을 때 그 교회가 바로 교회다운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방색을 드러내며 폐당을 짓고 서로 헐뜯고 싸우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기를 힘쓰는 것이 가장 바로 믿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계 선교를 전심으로 시작하게 하셨는데, 그 바울의 선교를 다른 차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레데라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거기서 이방인으로서 디도(원어로 티투스)라고 하는 사람이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어지고 회개함으로 거듭나서 성령을 받고 사도 바울과 같이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믿음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에게 말씀을 통하여 체계적인 복음을 깨우쳐 주고 기도 훈련을 통하여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영력으로 무장하게 하고 또 사도 바울을 함께 모시고 살면서 바울 사도께서 밤낮 소원하고 애쓰고 수고하며 몸부림치는 삶의 목적이 뭔가 그것을 디도가 잘 깨달았습니다. 디도는 성경에서 디모데와 같이 사도바울에게는 믿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도 사도 바울을 믿음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영적 성과를 위하여 자기 생애를 헌신하고 희생하며 전도하고 봉사하기를 힘쓰다가 사도 바울의 그 신앙 생활, 사명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도 바울의 신앙과 신학 또 사명 의지와 또 희생 봉사하는 것을 그대로 전수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아들이라고 바울은 거침없이 사랑하는 아들 디도라고 불렀던 겁니다. 아버지 바울을 믿음으로 아주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의 신앙생활이 상당히 성숙되고 또 수준급으로 자라게 됐기 때문에 그를 그레데라고 하는 지역에다가 남겨 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레데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목자를 세워야 하는데 그때엔 신학교 제도가 없었던 시절이라 그 누구를 교회의 목자로 세운다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디도를 그레데라고 하는 섬에다가 떨어뜨려 놓은 이유는 그곳에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진 여러 동네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들마다 무슨 부족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아 주고 또 바울이 명한 대로 각 동네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장로라고 하는 것은 교회 목회를 위한 목자를 여기서 장로라고 기록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장로라고 하는 것은 전부 목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자를 어떤 기준으로 세우느냐면 6절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신앙인으로서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책망 받을 약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한 것은 일부다처제로 여자 여러 명 데리고 사는 일들이 아주 보편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되려면 자기 자녀들 , 아내나, 부모님들의 믿음이 하나같이 확실한 가정을 꾸리는 사람이어야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목회자를 일명 감독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또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나, 교회 직분자들이 약점이 많고 책망받을 일이 많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으로 칼날같이 찔러 쪼개고 지적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게 될 때에 자기 입장 때문에 힘 있는 교훈을 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고 그 반대로 그 약점이 상대방들로 하여금 교육적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애타게 복음을 위하여 순교적 각오로 피나는 수고와 고생과 노력을 하면서 그가 마지막 순간 순교하기까지 힘쓰고 애썼던 것은 자기 영혼이 하늘나라에 영광스러운 자격으로 들어갈 수 있기 위함이 첫째였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시키는 성과를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이 말씀은 그레데라고 하는 곳에 여러 집단이 있었는데 거기의 지도자들은 아부하는 말을 해서 상대방의 주머니를 노리고 뺏어 챙기면서 못된 짓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할례당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그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 중에도 유대교에 입교해서 할례를 받은 사람들까지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유대교를 고집하느라고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아주 헐뜯고 비방하면서 예수 같은 거 믿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라는 식으로 선동하면서 많은 영혼을 노략질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엔 영지주의도 끼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복종치 아니하고, 즉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가 많다는 것은 진리도 아니고 구원의 소망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헛소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이용해 먹고 주머니 털어먹고 못된 짓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가정들이 망쳐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 가정은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시고 하늘 복을 얻어 하늘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가정이 항상 영적으로 하나 되어져야 하고 그래서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 모시고 사는 신령한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그레데 사람들처럼 거짓말쟁이, 또 악한 짐승처럼, 또 배만 위하는 거짓말쟁이 되지 말자는 것과 사람처럼 살아야 사람대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기대와 관심과 대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레데인들의 악함을 엄히 꾸짖어서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고 영적 소망의 구원을 얻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에 유대교의 선동에 휩쓸려 속아서, 멸망의 길로 빠져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기에 사도 바울 혼자서는 세워진 모든 교회들을 다 보살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디도는 그레데 교회의 총책이 되어서 사도 바울의 손발 노릇을 잘 하므로 그레데의 복음화를 위하여 놀라운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저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동하는 생활의 모습은 하나님 모르는 사람처럼 안 믿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전도의 문을 닫게 하고 교회를 비방 듣게 하고 못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시인하고 행동으로는 부인하는 자, 가증한자가 되고 복종치 아니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도 그간에 선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교하는 방식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선교지가 여러 군데 있으면 그 지역 단위로 각 선교사를 보내서 교회 목회 사역을 하게 하고 그 어느 지역에 미주면 미주, 호주면 호주, 또 아프리카면 아프리카, 유럽이면 유럽 이런 곳에 감독자를 꼭 파송해서 그 감독자로 하여금 그 지역 모든 선교사들을 총괄해서 바른 사역을 하도록 보살피고 이끌어 주는 역할로 선교하는 방식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훌륭한 목자를 모셔야 하고 여러분들의 믿음이 그 참 선한 목자를 통하여 바로서서 하나님 앞에 목자의 신앙처럼 인정받아야 할 것이고 그 믿음 가지고 생활 신앙으로 본을 보이고 또 은혜와 덕을 끼치면서 선교에 힘써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시키는 것은 곧 자기가 하나님 앞에 가서 칭찬 듣고 영광스러운 자격을 갖출 수 있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 바로 세워서 세계 선교에 여러분들이 이 교회 역사 끝 날까지 자원하는 열심으로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자기 개인의 생활이 모범적인 생활로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는 모습을 갖추어 갈 때 하나님이 기꺼이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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