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인물들 중에서 왜 다윗을 선택해서 이렇게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그 이유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가지 이유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그 이유를 우리는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신약성경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 1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해,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를 전하신 예수님께서 성경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시면서 당신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나는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이처럼 다윗의 자손, 다윗의 뿌리라는 말씀을 거듭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구약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11장 1절에서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서 이새는 한 사람을 말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이새라는 사람의 자손 중 한 사람이 결실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렇다면 이새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는 결국 다윗을 가리켜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새의 후손을 통해 대단히 영광스럽고 놀라운 한 뿌리, 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는 다름 아닌 다윗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예언과 맞닿아 있는 또 다른 예언이 연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이번에는 이새가 아니라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다윗의 자손 중에서 의로운 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메시야입니다.

우리는 그를 누가복음 1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여기에서 저는 마리아가 잉태한 아들을 말합니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인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위란 다윗의 왕위를 말합니다. 다윗은 지금도 이스라엘이 흠모하는 위대한 왕입니다. 지금도 유태인들은 언젠가 다윗과 같은 뛰어난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메시야가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알고 또 믿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계속해서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그가 영원히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즉,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왕이시며, 그분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윗의 이스라엘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토록 무궁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2장에는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동네는 다윗의 고향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동네는 어디를 이야기합니까? 베들레헴입니다. 다윗의 고향도 베들레헴이요, 예수님의 고향도 베들레헴입니다. 다윗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준비하기 위해 쓰인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요,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시고, 다윗의 왕위를 이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실 왕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윗을 연구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갖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을 연구해야 할 이유는 그가 유일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열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비록 그가 왕이요, 목자요, 지도자요, 뛰어난 지혜와 재능을 가진 자였지만, 우리는 그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다윗의 모든 생애가 아름다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어두운 밤이 있었습니다. 고통과 환난의 때가 있었습니다. 죄를 짓고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눈물로 회개하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일부러 미친 척해서 생명을 유지해야 했고, 때로는 속에 담아두었던 한을 못내 참지 못하여 유언을 통해 그 한풀이를 아들에게 부탁했던 그런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다윗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성경에 부지기수로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보다 더 순종적이고, 다윗보다 더 깨끗하고, 다윗보다 더 의로운 사람들을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그의 약함과 허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가 이렇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주님께 붙드신 바 되었는지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럼에도 다윗을 마음에 흡족해 하셨는지 그것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마음에 합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이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감정과 다윗의 감정이 같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슬퍼하면 다윗도 슬퍼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면 다윗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 다윗도 화를 내고,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면 다윗도 즐거워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마음이 합해졌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다윗의 일생을 함께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다윗의 일생을 함께 공부해 나가면서 무엇보다 나 또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려는 소망과 열심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