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성경은 이 한 마디 선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창조의 마지막 날, 비로소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 ‘아담’을 지으셨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끝이다. 아담의 생김새는 어떠하고 지적 수준은 어느 정도였으며, 결정적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 어떻게 지어졌는지 설명이 없다. 마치 단어 하나, 그리고 행간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시(詩)처럼 성경은 그렇게 세상의 시작을 알렸다.
이 ‘창조’는 ‘진화’라는 피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난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진화론’은 자신의 뿌리를 밝혀낼, 어쩌면 뿌리 그 자체일지 모를 신념의 기반을 제공했고 ‘창조론’을 대신했다. ‘창조냐 진화냐’는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만큼 오늘날 많은 이들을 고민하게 하는 물음이다.
그런데 창조론과 진화론은 항상 이렇게 대립해야만 할까. 지금의 구도는 하나가 옳다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그른 것이 되고 마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최근 교과서의 진화론 관련 내용이 수정 혹은 삭제됐다는 것 때문에 양측이 충돌한 것엔 이런 구도가 작용한 측면도 있다. 서로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이런 극단적 대결 양상을 지양하고 창조론의 세계를 보다 풍성하게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창조론 오픈포럼’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창조를 믿되, 그 구체적 과정과 방법에선 ‘다양성과 가능성’을 열어(open)놓자”는 것이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창조론 오픈포럼은 오는 6일 오전 9시 경기도 안양 성결대학교에서 제11회째 진행된다. 이 포럼을 기획하고 지금까지 그 중심을 지키고 있는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를 만나 창조와 진화의 관계, 그리고 이 둘의 미래를 들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창조론 오픈포럼은 창조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에게 다 열려 있나?
“그렇진 않다. 창조론 오픈포럼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복음주의를 지향한다. 그런 복음주의 안이라면 학문에 제한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창조신앙은 같다. 그러나 창조론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런 창조론들을 복음주의에 기초를 두고 서로 논의하고 토론해 보자는 것이다.”
-창조론이 그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창세기 초반부를 제외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창조론이 저마다 달라진 원인이다. 가령 어떤 이들은 창조를 믿으면서도 진화를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 창조 과정에서 진화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창조론과 진화론을 상호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 ‘빅뱅’을 믿는 창조론자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믿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사고다. 내가 믿는 우주와 이 지구의 나이만이 진리라는 생각에서 다른 모든 연대는 부정하는 자세가 과연 옳을까. 성경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데도 자신만의 창조론을 절대적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이념화하고 교조주의화하면 안 된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함께 거론된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비교될 수 없는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양자를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보는 것은 사안을 정확히 꿰뚫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창조냐 진화냐보다 섭리냐 우연이냐가 더 맞는 표현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창조론자들 중에서도 진화를 믿는 이가 있고, 진화론자이면서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진화를 섭리 안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선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창조는 믿으나 진화는 부정하고, 반대로 신과 창조를 배제한 채 오직 진화론만을 고수하는 이들이 종종 대결국면을 조성한다.
그렇게 보면 창조냐 진화냐는, 누군가 비유하듯 ‘사람이냐 아름다움이냐’를 묻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비교다. 아름다운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도 양자를 마치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몰고가기 때문이다.”
-신학의 다른 분야와 달리 유독 창조신학은 그 학문적 깊이가 빈약한 것처럼 비친다.
“20세기 들어 폰 라드나 칼 바르트 같은 구속 신학을 강조하는 유명 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창조 교리에 대해 무관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또한 창조론 연구에 뛰어든 복음주의 학자들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연구되지 못하고 개발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창조 신앙이 없으면 구속 신앙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창조와 구속 교리는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또한 단순한 변증적 창조-진화 논쟁뿐 아니라 우리 삶과 밀접한 환경 및 생태 문제를 비롯해 건강과 농업, 디지털 시대의 고민 등등이 모두 창조 신앙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할 영역이다. 이에 대한 신앙적, 그리고 신학적 성찰의 목소리가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창조론 오픈포럼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다양한 창조론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준 있는 논문들이 나올 수 있는 그런 터전을 마련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창조론은 진지한 신학적 성찰 없이 하나의 구호나 운동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 창조론 오픈포럼을 통해 그런 부분들이 많이 다듬어진 것 같다. 창조론 연구와 운동은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복음적 신앙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진지하게 성찰해 가야 하는 분야다. 그래서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이 포럼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한국교회가 창조론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현재 본지에 ‘조덕영의 창조신학’을 연재 중이다.
성경은 이 한 마디 선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창조의 마지막 날, 비로소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 ‘아담’을 지으셨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끝이다. 아담의 생김새는 어떠하고 지적 수준은 어느 정도였으며, 결정적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 어떻게 지어졌는지 설명이 없다. 마치 단어 하나, 그리고 행간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시(詩)처럼 성경은 그렇게 세상의 시작을 알렸다.
이 ‘창조’는 ‘진화’라는 피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난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진화론’은 자신의 뿌리를 밝혀낼, 어쩌면 뿌리 그 자체일지 모를 신념의 기반을 제공했고 ‘창조론’을 대신했다. ‘창조냐 진화냐’는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만큼 오늘날 많은 이들을 고민하게 하는 물음이다.
그런데 창조론과 진화론은 항상 이렇게 대립해야만 할까. 지금의 구도는 하나가 옳다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그른 것이 되고 마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최근 교과서의 진화론 관련 내용이 수정 혹은 삭제됐다는 것 때문에 양측이 충돌한 것엔 이런 구도가 작용한 측면도 있다. 서로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이런 극단적 대결 양상을 지양하고 창조론의 세계를 보다 풍성하게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창조론 오픈포럼’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창조를 믿되, 그 구체적 과정과 방법에선 ‘다양성과 가능성’을 열어(open)놓자”는 것이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창조론 오픈포럼은 오는 6일 오전 9시 경기도 안양 성결대학교에서 제11회째 진행된다. 이 포럼을 기획하고 지금까지 그 중심을 지키고 있는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를 만나 창조와 진화의 관계, 그리고 이 둘의 미래를 들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창조론 오픈포럼은 창조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에게 다 열려 있나?
“그렇진 않다. 창조론 오픈포럼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복음주의를 지향한다. 그런 복음주의 안이라면 학문에 제한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창조신앙은 같다. 그러나 창조론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런 창조론들을 복음주의에 기초를 두고 서로 논의하고 토론해 보자는 것이다.”
-창조론이 그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창세기 초반부를 제외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창조론이 저마다 달라진 원인이다. 가령 어떤 이들은 창조를 믿으면서도 진화를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 창조 과정에서 진화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창조론과 진화론을 상호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 ‘빅뱅’을 믿는 창조론자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믿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사고다. 내가 믿는 우주와 이 지구의 나이만이 진리라는 생각에서 다른 모든 연대는 부정하는 자세가 과연 옳을까. 성경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데도 자신만의 창조론을 절대적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이념화하고 교조주의화하면 안 된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함께 거론된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비교될 수 없는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양자를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보는 것은 사안을 정확히 꿰뚫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창조냐 진화냐보다 섭리냐 우연이냐가 더 맞는 표현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창조론자들 중에서도 진화를 믿는 이가 있고, 진화론자이면서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진화를 섭리 안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선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창조는 믿으나 진화는 부정하고, 반대로 신과 창조를 배제한 채 오직 진화론만을 고수하는 이들이 종종 대결국면을 조성한다.
그렇게 보면 창조냐 진화냐는, 누군가 비유하듯 ‘사람이냐 아름다움이냐’를 묻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비교다. 아름다운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도 양자를 마치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몰고가기 때문이다.”
-신학의 다른 분야와 달리 유독 창조신학은 그 학문적 깊이가 빈약한 것처럼 비친다.
“20세기 들어 폰 라드나 칼 바르트 같은 구속 신학을 강조하는 유명 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창조 교리에 대해 무관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또한 창조론 연구에 뛰어든 복음주의 학자들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연구되지 못하고 개발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창조 신앙이 없으면 구속 신앙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창조와 구속 교리는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또한 단순한 변증적 창조-진화 논쟁뿐 아니라 우리 삶과 밀접한 환경 및 생태 문제를 비롯해 건강과 농업, 디지털 시대의 고민 등등이 모두 창조 신앙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할 영역이다. 이에 대한 신앙적, 그리고 신학적 성찰의 목소리가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창조론 오픈포럼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다양한 창조론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준 있는 논문들이 나올 수 있는 그런 터전을 마련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창조론은 진지한 신학적 성찰 없이 하나의 구호나 운동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 창조론 오픈포럼을 통해 그런 부분들이 많이 다듬어진 것 같다. 창조론 연구와 운동은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복음적 신앙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진지하게 성찰해 가야 하는 분야다. 그래서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이 포럼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한국교회가 창조론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현재 본지에 ‘조덕영의 창조신학’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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