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0일 금요일 캘리포니아주의 교회에서부터 워싱턴 D.C의 내셔널 성당에 이르기까지 이날을 버니니아텍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기념 예배와 미사 행사를 가졌다. 버지니아공대에서는 수천 명의 재학생과 교수진이 상징색인 주황색 옷을 입고 추모행사를 가졌다. 버지니아주를 비롯한 미국 대도시에서는 이날 하루 이 학교의 상징색인 주황색과 적갈색 옷을 입고 함께 슬픔과 충격으로 가득찬 추모의 마음을 나눴다.

지난 닷새동안 사람들은 조승희의 살인에 대해 그 동기와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노스이스턴 대학교 제임스 알랜 폭스 박사는 이렇게 논증했다. "조승희는 20여 년 동안 간직하며 키워 온 성격적 결함과 정신적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자신만의 '악마'를 배양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승희 부모와 학교, 미국 사회가 어릴 적부터 성격적 결함을 지닌 그를 철저하게 '외톨이'로 만들었다. 언어와 문화의 이중적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한 사람에 대한 냉대와 차가운 무관심은 결국 세상을 저주하는 살인과 분노의 자폐아를 만들고 말았다. 가난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의사가 부모에게 정신이상 증세를 경고했는데도 설마했다. 교수들이 몇 번이나 학교측에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를 돌봐주려고 하지 않았다. 심각한 정서장애를 겪어야 했던 조승희가 선택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캠퍼스 킬러가 되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방송사에 자작 동영상과 사진과 편지를 통해 슬픔과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다시 한번 확인사실 하듯이 절망과 충격으로 몰아넣어버린 철저한 이중적 복수극이었다.

조승희의 잔인한 범죄행위에 대해 한국인들은 국가적인 사죄를 미국에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말 조승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민족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일까? 그에 대한 악한 행위에 대해 참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추악한 범죄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혹시 당할지도 모를 이민사회에 대한 미국인의 보복적인 폭력과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이미지 훼손, 국가적 불이익에 대한 불안감 때문은 아닌가?

조승희는 그의 동영상에서 “너희는 내 영혼을 파괴했다”고 외쳤다. 조승희를 파괴했던 그 상실감을 우리도 두려워하고 있다. 조승희의 소외감과 증오, 박탈감, 피해망상적인 살인과 분노의 살인이 가져올 한국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미국의 분노와 복수가 두렵다.

조승희를 살인마로 만들어낸 이민사회에 숨겨진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성공강박관념이 또다시 노출된 것이 부끄럽고,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똑같은 정체성의 상실과 외톨이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을 발견한 부모들의 자책감이 힘들고, 소외된 정신장애를 품지 못한 교회의 무능이 폭로된 것에 대한 수치심이 우리를 추모의 자리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편지에는 기독교의 위선에 대한 비판적 글이 있다. "너는 개인적 기쁨을 위해 약자와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골라 그들을 박해하고 가족들과 타인들 앞에서는 고상한 기독교인인양 행동했다"며 "보드카와 마약을 탐닉하고 토요일 밤 탈선을 즐긴 뒤 다음날 아침 교회로 향하는 너희는 또 한 주 동안 조롱하고 위협할 약자들을 찾아 다니느라 참으로 분주하다..” 애써 광적인 표현이라고 외면하고 싶지만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다.

추모의 날, 버지나아 공대 하늘은 흐렸다. 비가 내렸다. 버지니아텍 캠퍼스 중앙 잔디밭인 드릴 필드에는 이번 참사의 사망자 33명을 기리는 추모석들이 타원형으로 놓여 있었다. 왼쪽에서 4번째에 놓인 조씨 추모석 앞에는 버지니아텍을 상징하는 VT 모양의 카드가 놓여 있고 여기에는 '2007년 4월 16일. 조승희'라고 씌어있다. 또 추모석 오른쪽 옆에는 "조승희의 가족에게.. 사랑으로(To the family of Cho Seung Hui with love)"라고 쓰인 종이도 있었다. 추모석에는 특히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걸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머지않아 너의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을"라는 내용의 쪽지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최악의 가해자였던 조승희를 그들은 여전히 버지니아 공대의 학생으로 그리고 이번 사건의 희생자의 한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16일, 총에 다리를 맞은 경제학 전공 남학생 가렛 에반스는 입원중에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우리가 사건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었고 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가장 중요한 첫번째 단계는 바로 용서입니다. 나는 조성희를 용서합니다."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과 교수, 동문들은 침묵의 묵념에 이어 아픔을 떨치고 다시 일어서자는 듯 일제히 "렛츠 고 호키(Let's Go Hokie)"라는 구호를 외쳤다. 우리도 한국과 이민사회 우리가 받게 될 불이익과 손해, 부끄러움보다 조승희를 만들어낸 오늘의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며 그를 한국인의 한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조승희가 없는지 주변을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조경호 목사(산호세 중앙 침례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