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건으로 희생된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표시와 함께 그들의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하길 바랍니다. 무엇으로도 졸지에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을 잃은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보상할 수 없기에 무기력함 마저 느끼게 합니다. 현장에서 악몽의 순간을 경험한 모든 학생들과 스탭 분들도 하루 속히 그 충격에서 벗어나길 또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무어라고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참사는 정말 큰 충격 그 자체입니다. 억장이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가슴이 끝없는 아픔과 함께 말할 수 없는 통탄함으로 가득 찬 느낌입니다. 무슨 말로도 이번 사건으로 받은 충격은 다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콜롬바인 고등학교 참사 사건을 기폭제로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학교 내의 이런 대형 사고들은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고, 이런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몸서리 처지게 합니다. 또 언제 어디서 누가 이런 일을 다시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안전한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번 일을 저지를 이가 같은 한국인 학생이라는 사실은 더욱 충격입니다. 만나는 타 민족 분들도 이 번 사건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말하지만 범인이 한인 학생이라 것을 저에게 말해 봐야 대화에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언급을 꺼려하더군요. 자기네들끼리는 말하는 것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비극을 대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장래가 염려됩니다. 또한 이런 일이 제발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바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해법은 가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민 교회의 많은 아이들의 정서 문제는 가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정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보금자리여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요즘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앎) 부모의 지나친 폭언이나 폭력 행위 등은 아무리 자녀에게 교육적인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감정의 절제에서 실패한 것은 교육적일 수 없습니다. 이는 결국은 학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상한 감정을 무절제하게 자녀에게 쏟아 붇는 것은 결코 충고가 되질 않습니다. 그 것은 폭언입니다. 자녀가 잘못한 것이 있어도 자녀가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하는 체벌 또한 폭력행사 밖에는 안 됩니다. 한국적 교육 방법이 때로는 자녀에게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반대로 부모가 일에 바빠서 자녀의 성장에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다면 아무리 부모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가 버림 혹은 무시 받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한인 이민 가정에 대해서 가장 우려하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일에 바쁘다 보니 방과 후에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버립니다. 일이 끝난 후 집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해도 몸이 피곤하니 사랑을 줄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적습니다. 이런 사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불만을 쌓아갈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갖게 됩니다.
사랑의 절대적인 기준은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감사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됐어” 하는 식의 생각은 불완전한 것일 뿐입니다. 사랑의 평가는 사랑을 받는 아이들이 자기 입장에서 합니다. 사랑을 주는 표현 방법이 잘못된 부모라면 자녀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부모와 함께 있다고 해도 사랑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녀의 마음에 이미 정서적인 상처가 있다면 이도 또한 변수가 됩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1. 돈으로 보상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2.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대화가 있어야 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민 가정들의 상당수가 사실자신들이 자녀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돈으로 보상하려는 심리가 강합니다. 한 달에 한번이라도 자녀와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 없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녀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권해야 합니다. 단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좋은 친구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자녀가 외톨이가 되지는 않는지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모들은 ADHD같은 자녀의 행동/신체 발달 장애 문제들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왕따를 당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한인 부모들은 유난히 자녀가 공부 잘하는데 만 초점을 두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다른 잘못은 용서되는 것이 한인 가정들입니다. 따라서 정서 장애나 사회성 발달 장애의 경우에는 눈에 띄는 경우도 있지만, 사고가 난 다음에야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부분을 무시하거나 무감각하게 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체적 자신감과 사회성과 감성과 영성입니다. 이 중 어떤 것도 소홀히 하면 전인적인 인격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교회도 이민 사회에 대한 영적/도덕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인 교회들은 영적 사역에는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정신 건강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깝습니다. 아무나 누가 잘못되면 말세 핑계나 귀신이야기를 하기는 쉽지만 정작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교회의 사역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 가족 중에 육체적인 질병이 생기면 남에게 말하기는 쉬워해도 정서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남에게 특히 목회자에게는 감추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는 한인 교회들에서 사역할 당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들의 학생들 중에 상담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아이들이 제가 생각한 것 보다 의외로 많았습니다. 종종 분명히 문제가 많은 아이라서 제가 먼저 그 가능성을 부모에게 말해 보면 그 때서야 제게 이미 상담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꺼내기 까지는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담임 목사님에게 이야기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절대 비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제가 전문가와의 정기 상담을 권하면 그때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고민을 말하곤 했습니다.
교회도 이제는 교인들의 정신 건강 부분에 눈을 떠야 합니다. 목회 상담이건 성경적 상담이건 이 부분에 눈을 뜨고 기초적인 공부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민 교회의 가정들은 정신 건강 면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쉽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경직된 신학으로 무장된 목회자의 말이 자칫 교인들의 마음에 교회가 더욱 상처를 주는 꼴이 되기도 쉽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조차 정죄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과의 관계까지 어렵게 할 수 도 있습니다.
왜 조 군이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왜 그 많은 수의 무고한 학생들과 교수와 스탭 등이 무참히 죽어야 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엄청난 일로 인해서 충격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며, 희생자들의 가족과 현장에서 이 번 일을 직접 겪은 많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한 이 충격의 순간을 이길 힘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 이 일로 인한 우리 모두의 슬픔과 분노를 그 분의 사랑 안에 녹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미국 개혁 교단(RCA) 뉴욕 대회 송흥용목사
무어라고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참사는 정말 큰 충격 그 자체입니다. 억장이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가슴이 끝없는 아픔과 함께 말할 수 없는 통탄함으로 가득 찬 느낌입니다. 무슨 말로도 이번 사건으로 받은 충격은 다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콜롬바인 고등학교 참사 사건을 기폭제로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학교 내의 이런 대형 사고들은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고, 이런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몸서리 처지게 합니다. 또 언제 어디서 누가 이런 일을 다시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안전한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번 일을 저지를 이가 같은 한국인 학생이라는 사실은 더욱 충격입니다. 만나는 타 민족 분들도 이 번 사건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말하지만 범인이 한인 학생이라 것을 저에게 말해 봐야 대화에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언급을 꺼려하더군요. 자기네들끼리는 말하는 것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비극을 대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장래가 염려됩니다. 또한 이런 일이 제발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바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해법은 가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민 교회의 많은 아이들의 정서 문제는 가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정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보금자리여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요즘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앎) 부모의 지나친 폭언이나 폭력 행위 등은 아무리 자녀에게 교육적인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감정의 절제에서 실패한 것은 교육적일 수 없습니다. 이는 결국은 학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상한 감정을 무절제하게 자녀에게 쏟아 붇는 것은 결코 충고가 되질 않습니다. 그 것은 폭언입니다. 자녀가 잘못한 것이 있어도 자녀가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하는 체벌 또한 폭력행사 밖에는 안 됩니다. 한국적 교육 방법이 때로는 자녀에게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반대로 부모가 일에 바빠서 자녀의 성장에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다면 아무리 부모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가 버림 혹은 무시 받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한인 이민 가정에 대해서 가장 우려하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일에 바쁘다 보니 방과 후에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버립니다. 일이 끝난 후 집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해도 몸이 피곤하니 사랑을 줄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적습니다. 이런 사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불만을 쌓아갈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갖게 됩니다.
사랑의 절대적인 기준은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감사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됐어” 하는 식의 생각은 불완전한 것일 뿐입니다. 사랑의 평가는 사랑을 받는 아이들이 자기 입장에서 합니다. 사랑을 주는 표현 방법이 잘못된 부모라면 자녀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부모와 함께 있다고 해도 사랑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녀의 마음에 이미 정서적인 상처가 있다면 이도 또한 변수가 됩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1. 돈으로 보상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2.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대화가 있어야 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민 가정들의 상당수가 사실자신들이 자녀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돈으로 보상하려는 심리가 강합니다. 한 달에 한번이라도 자녀와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 없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녀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권해야 합니다. 단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좋은 친구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자녀가 외톨이가 되지는 않는지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모들은 ADHD같은 자녀의 행동/신체 발달 장애 문제들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왕따를 당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한인 부모들은 유난히 자녀가 공부 잘하는데 만 초점을 두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다른 잘못은 용서되는 것이 한인 가정들입니다. 따라서 정서 장애나 사회성 발달 장애의 경우에는 눈에 띄는 경우도 있지만, 사고가 난 다음에야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부분을 무시하거나 무감각하게 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체적 자신감과 사회성과 감성과 영성입니다. 이 중 어떤 것도 소홀히 하면 전인적인 인격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교회도 이민 사회에 대한 영적/도덕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인 교회들은 영적 사역에는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정신 건강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깝습니다. 아무나 누가 잘못되면 말세 핑계나 귀신이야기를 하기는 쉽지만 정작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교회의 사역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 가족 중에 육체적인 질병이 생기면 남에게 말하기는 쉬워해도 정서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남에게 특히 목회자에게는 감추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는 한인 교회들에서 사역할 당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들의 학생들 중에 상담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아이들이 제가 생각한 것 보다 의외로 많았습니다. 종종 분명히 문제가 많은 아이라서 제가 먼저 그 가능성을 부모에게 말해 보면 그 때서야 제게 이미 상담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꺼내기 까지는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담임 목사님에게 이야기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절대 비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제가 전문가와의 정기 상담을 권하면 그때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고민을 말하곤 했습니다.
교회도 이제는 교인들의 정신 건강 부분에 눈을 떠야 합니다. 목회 상담이건 성경적 상담이건 이 부분에 눈을 뜨고 기초적인 공부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민 교회의 가정들은 정신 건강 면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쉽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경직된 신학으로 무장된 목회자의 말이 자칫 교인들의 마음에 교회가 더욱 상처를 주는 꼴이 되기도 쉽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조차 정죄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과의 관계까지 어렵게 할 수 도 있습니다.
왜 조 군이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왜 그 많은 수의 무고한 학생들과 교수와 스탭 등이 무참히 죽어야 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엄청난 일로 인해서 충격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며, 희생자들의 가족과 현장에서 이 번 일을 직접 겪은 많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한 이 충격의 순간을 이길 힘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 이 일로 인한 우리 모두의 슬픔과 분노를 그 분의 사랑 안에 녹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미국 개혁 교단(RCA) 뉴욕 대회 송흥용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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