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연합뉴스) 16일 오후 1시께 인천 자월도 북쪽 해상, 500t급 해경 경비함정 503함 갑판 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유류운반선 두라3호 폭발사고로 숨지거나 실종된 선원 가족 37명이 사고 발생 하루 만에 자월도 사고 해역을 찾은 것이다. 503함 부함장 조효상 경위가 안내 방송을 통해 "사고해역 인근에 도착했습니다"고 알리자, 가족들이 갑판 난간 위로 몸을 쭉 내밀고 바다를 바라봤다.
멀리 1km 가량 떨어진 해역에 엄청난 폭발로 두 동강이 난 채 위태롭게 떠있는 두라3호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들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초 사망자로 알려졌다 정정을 거쳐 실종자로 분류된 이종완(3등 항해사ㆍ21)씨 어머니는 너무 울어 일어설 힘조차 없는지 쭈그려 앉았다. 그는 "아들아, 엄마 왔는데 너도 와야지. 어딨어. 어떡해, 우리 아들"이라며 오열했다.
두라3호 승선원 가운데 최연소이자 사망자로 최종 확인된 이진수(3등 기관사ㆍ20)씨의 부모는 눈물도 다 말라버린 듯 망연자실한 눈빛이었다. 실종자 유준태(1등 항해사ㆍ51)씨의 형 준영(56)씨는 사고 선박을 향해 생사를 알 길이 없는 동생의 이름을 목청껏 부른 뒤 고개를 떨궜다.
역시 실종자인 구인주(2등 항해사ㆍ53)씨의 누나 인점(60)씨는 난간 앞에 털썩 주저 앉아 바다를 향해 하얀색 손수건을 흔들었다. 구씨는 "내 동생아 온나. 누나가 부른다. 지금 네가 갈 때가 아니다. 바다용왕님, 동생 물 밑에서 솟아 나오게 하소서"라며 통곡했다.
사고 해역에는 헬기 1대와 경비함정 20여척이 이틀째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가족들은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 속에서 하루 빨리 실종 선원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두 손을 모았다.
실종자 박양기(갑판장ㆍ66)씨의 형 청기(75)씨는 "사망자 유족보다 더욱 답답한 것이 실종자 가족"이라며 "동생의 옷가지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는 사고 해역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 채 그 주위에 머물렀다. 수심이 10m 안팎으로 비교적 얕은 편이어서 대형 경비함정이 다가갈 경우 갯벌에 얹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30여분 지났을까. "사고 해점에서 인천항으로 귀항할 예정입니다"라는 부함장의 안내 방송과 함께 503함이 인천항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사랑하는 가족을 바다에 남긴 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15일 오전 8시께 인천시 옹진군 자월도 북쪽 5.5km 해상에서 4천191t급 두라3호에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폭발이 발생해 승선원 16명 중 5명은 구조됐으나 5명이 숨졌고 6명은 실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