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는 마르틴 부버가 그의 책 <나와 너>에서 했던 “모든 상대는 나를 가상한다”라는 말입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사물을 예민하게 대하고 자신에 대해 심각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는 했지만 왠지 여유를 잃어버리고 어렵고 복잡한 삶을 사는 편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유머감각을 가진 척 했지만 속으로는 가벼운 것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모두 어렵고 복잡하였습니다. 인생이 늘 무겁게만 생각되었습니다. 기쁨과 웃음은 순간이고 실패, 실수, 좌절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방황하는 제 영혼에 하나님은 은혜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정작 심각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나의 인생을 통하여 심각하게 여겨야 할 것은 하나님, 십자가의 피 흐르는 예수님의 복음, 성령님, 그리고 성경말씀과 교회와 영혼 구원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볍게 여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반대가 될 때가 있습니다. 아직 옛 모습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나 자신을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해석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할 때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주십니다. 성령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분명한 믿음을 주셔서 인생의 짐을 벗고 가벼워질 수 있게 하십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치유를 또 한 번 경험하게 됩니다.


체스터톤은 “천사가 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무겁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든 알포트는 “자기 자신을 보고 웃을 줄 아는 노이로제 환자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절반은 치유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을 보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은 하늘을 비상하는 날개를 얻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여유있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원의 시각에서 보면 잠시 잠간의 이 세상에 대단한 문제는 없습니다.


볼티모어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오자마자 다시 월요일부터 베이커스 필드 연합 집회를 가야 합니다. 건강과 일 등으로 괜히 심각해지려는 제 자신을 주님 안에서 가볍게 합니다. 실제로 저는 주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저를 통해 말씀하실 승리의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삶을 측량할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나와 하나님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겠습니까? 나의 건강, 나의 가정, 나의 사업, 남은 인생의 계획 등에 내가 주님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함을 통해 자신을 가볍게 하여서 이번 한 주간도 존재가 넉넉해진 행복감을 맛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