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學而)는 논어 20편의 첫번째 편명(編名)인데, 전 16장으로 되어있다. 논어의 편명은 처음의 두 자 또는 석 자를 따서 만들었다.

"학이 편에는 학문에 관한 논의와 공자의 근본사상에 대한 입언(立言)이 많으므로 이 학이편을 숙독하면 제2편 이후는 자연 이해하기가 쉽다"고 주자(朱子)는 말했다.

그 학이편 12장 첫 구절이 저 유명한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면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면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인데, 해석하면 이렇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를 배우지 않았으니 처음 가르침부터 궁금한 것이 많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의 댓귀로 왜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락호라’ 했는가? 내게는 수수께기이다.

겨우 짜맞춘다면 ‘불역열호’를 병행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번역자가 ‘또한’이라는 부사를 사용한 까닭에 더욱 그런 심증이 간다. 일종의 감탄 추임새가 아닐까? 그런데 나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데서 기쁨을 누리는 일 보다는 벗을 사귀고 즐기는 일에 불역열호의 점수를 주고 싶다. 배우고 익히는데 재미있어 하는 인간군은 대체로 독불이기 쉬운 까닭이다.

벗이라면 먼곳에서든 가까운 곳에 있든 가리지 않고 만사를 제치고 만나는 이는 팔방미인이기 쉬워 외골수와는 아주 다른 인간군이다. 공자께서는 이 두 부류의 인간을 합성 조화시켜 군자상(君子像)을 삼았는데 역사를 통틀어도 좀체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슈베르트라 불리우는 「스티븐 포스터」가 3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을때 그의 수중에는 38센트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짧은 생애 동안 지독한 빈곤 속에서도 284곡의 아름다운 가곡을 남긴 그가 작곡한 “꿈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하늘의 별 빛을 바라 보라 한갓 헛되이 해는 지나 이 맘에 남 모를 허공있네 꿈길에 보는 귀여운 너 들어주게 나의 고운 노래 부질없었던 근심걱정 다 함께 사라져 물러가면- 벗이여 꿈깨어 내게오라(1절) 바닷가 멀리 들려오는 내 노래소리를 들어보라-아득한 강변 안개끼고 아침해 비치어 아롱지네 꿈길에 보는 귀여운 너 날은 밝아 하늘 아득한데 슬픔은 이미 사라지고 그대의 얼굴에 미소띠면 - 벗이여 꿈깨어 내게 오라”

그렇다. 벗이란 내 노래를 들어주는 이요, 부질없는 근심 걱정을 나눌 수 있는 자이며, 내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미소짓게 하는 사람이다.

9월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것은 유붕자원방래가 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북경과 아이오아에서 한 날 다우(茶友) 두분이 날아온다. 그들이 오면 꿈길의 다연(茶宴)을 조촐하게 베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