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목사(익산 갈릴리교회, 바울선교회 이사)

1. 선교사 지원

선교사 시험 본다고 지망하고 오면 소위 면접이란 것을 보게 됩니다. 지망자는 말합니다.
"저는 중국에 소원이 있습니다" 또는 "모슬렘권입니다"
"언제부터 선교사의 꿈을 갖게 됐나요?"
"5년 됩니다", 어떤분은 "어렸을 때부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어는 준비하셨나요?"
"아니요"
"그러면 중국에서 활동한 선교사 가운데 알고 있는 선교사는 있습니까?"

전혀 모르든지 기껏 대봐야 허드슨 테일러 정도인데 그것도 책을 통해서가 아니고 들어서 아는 이름 정도입니다. 테일러가 미국사람인지, 영국 사람인지조차 모르고 중국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시험을 보러 오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제발 준비를 차근차근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적군을 무찌르는 군인이 되려면 피나는 훈련을 받아야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교지를 무슨 도피처로 생각하는가 말입니다.

옛날에는 이 대학 저 대학 떨어지면 교회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하는 말씀이 '신학교나 가거라'하고 얘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명으로 신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패자의 도피처였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사명 없는 월급쟁이 목사를 양산해 냈습니다. 그 여파가 지금 한국교회의 아픔이듯이 목회해도 안 되고 장사를 해보아도 안 되고 그래서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 살겠다고 뛰어 들었다가는 선교사는 지옥 가고 후원하는 교회나 개인도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 선교사로 나가려고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주님께서 저에게 선교사의 꿈을 주셨고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라고 정확하고 확신에 찬 답변을 하고 또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 상식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선교사를 지원하는 지망생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 도피처가 아니라, 사명에 의해 철저히 준비하고 문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선교사 훈련입니다.

바울선교회에 지망하는 후보생들 중에 상당부분 훈련 중간에 탈락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훈련이 힘들어서, 또는 훈련할 때 훈련원 화장실 청소를 시켰더니 "내가 생명을 살리는 선교사가 되려고 왔는데, 화장실 청소나 시키고 나를 무엇으로 보느냐"고 말하면서 빗자루를 걷어차고 나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런 목사님을 선교사로 안보내기를 여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교사가 아니고 교회개척하는 담임목사를 하고 직원이 여러 명 있지만 그래도 저 역시 때로 교회도 쓸고 마당도 씁니다. 선교사 훈련 때만 아니라 선교지에 가서도 종으로 선교사는 선교지를 섬겨야 마땅합니다. 같이 훈련받는 선교사들 간에 공동체 생활을 어려워 하면서 서로 싸움만 하고 천국지점을 이뤄야 하는데 마귀의 소굴을 이루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선교훈련은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6개월의 국내훈련과 8개월의 필리핀 선교훈련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선교사 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3. 세 번째는 선교사의 현지사역입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는 것은 누리러 가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려고 가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고생했으니 해외에 나가서 마음껏 누려보려고 한다면 이런 선교사는 머지않아 하나님 앞에서는 어쩌면 구원은 커녕 내쫓김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목사나 선교사는 가지고 있는 것도 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배와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버렸듯이 더 많이 주고 누리는 것이 아님을 명심합시다.

닮을 것은 닮기 싫어하고 안 닮아도 될 것은 닮는 이 시대의 목회자나 선교사가 안타깝습니다. 가정을 내 힘으로 꾸려가야 합니다. 왜냐고요? 주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들은 현지에 있어도 자녀교육은 거의가 미국으로 보냅니다. 떠나고 보면 선교사님들은 최고급 생활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라고 부정하실 분도 있겠으나 미국 유학 보내는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교회 목사들도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큰 혜택과 은혜를 선교사들은 누리고 있다는 얘기이고 그러기 때문에 더 무겁게 선교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국교회에 보여주기 위한 선교가 아닌 주님께 보여 드리는 선교사역, 나를 채찍하고 나를 죽이며 주님만 높이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최초의 선교사이신 예수님께서 지구촌에 오셔서 선교하시다 십자가에 순교하신 것처럼 선교사로 이 정신을 높이고 옷깃을 여미는 자세로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교를 하다가 주님처럼 지구촌의 선교지 어디에 묻히는 것입니다. 그 때 선교를 많이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선교했느냐고 주님은 물으실 것입니다. 그 때 대답해야 합니다.

위 글은 바울선교 86호 바우리단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