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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서정 다섯 번째는 성화이다. 성화란 거룩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거룩하다의 기본적인 의미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들이나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구약의 성전이나 신약의 교회에서 예배 중 드리는 예물, 또는 헌금이나 헌물을 “성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되어진 것들이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의 성전이나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위하여 섬기는 사람들을 성직자라고 부른다. 성직자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해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우, 거룩하다는 것은 드려진 예물이나 사람의 도덕적인 성품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소유권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것, 하나님께 속한 모든 사람들은 거룩하다.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성도,” 즉, 거룩한 사람들, 성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되어진 사람들이라고 하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두번째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인격적 성품을 반영하는 도덕성을 뜻한다. 본질상 영적인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생명에 관한 것이다.

중생은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새생명을 부여받은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뜻한다. 이 새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일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 3장 10절), 도덕적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사람이다 (에베소서 4장 24). 성화란 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으로써의 삶의 변화를 뜻한다.

이런 뜻에서의 성화란 영원한 생명의 본질적 특성에 관한 것이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한일서 3장 9절) 라고 한 것도 이 점을 염두에 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씨”에 사용된 “씨”라고 하는 말은 문자적으로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의 “정자,” 혹은 “정충”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말이 나오는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사람이 임신하여 생명을 태동하고, 그 생명이 출생하면 그 사람을 닮은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사람의 영혼 속에 생명을 태동하면, 하나님을 닮은 새사람이 출생하게 되는데, 이 새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의의 거룩한 도덕적 성품을 반영하는 삶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그런 삶을 살아야 당연하다고 하는 것을 강조한다.

신학적으로 성화는 시간적 개념을 따라 두 가지 용어로 설명을 한다. 첫째는 지위적 성화이다. 이것은 칭의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것으로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고, 의롭다라고 하는 말은 듣는 순간 이미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 의로운 일을 행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고 있다고 하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되는 성화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의로울 뿐만 아니라 거룩하다. 마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구별되게 드려져서 성전이나 교회 안에 있게된 모든 것을 거룩하다고 부르는 것과 흡사하다. 칭의가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말미암는 것처럼, 성화 역시 자신의 도덕적 성품이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도덕적 성품으로 말미암아 부여되는 하나님의 선포적 거룩함이다.

둘째는 점진적 성화이다. 점진적이라는 말은 시간과 변화의 두 요소를 포함한다. 시간이 가면 믿는 사람의 도덕적 성품이 점진적으로 하나님을 닮아 성숙해 가는 변화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본질에 관한 부분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삶의 변화를 나타내게 된다.

점진적 성화에 대하여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성화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화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여전히 지속적으로, 점차적으로 향상되기는 하지만 완성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완전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완전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용서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은 새사람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겉사람인 육체가 죄의 영향 아래 있고,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저주와 죄 가운데 있으며, 사단의 활동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듭나서 거룩하게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지라도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고,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전자는 인간의 능력과 책임을 강조한다. 반면, 후자는 인간의 연약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정리하면, 칭의와 성화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다고 할 수 있다. 칭의가 법적인 신분의 변화, 곧, 죄인을 의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라고 하면, 성화는 그 신분의 변화가 효력있는 영적 실체라고 하는 것을 입증해 주는 내적 변화이다. 칭의와 성화가 다 하나님 주도적인 역사이지만, 둘 다 믿음으로만 그 효력을 경험하게 되는 영적 사건들이다. 칭의는 성화의 뿌리이고, 성화는 칭의의 열매이다.

원리적으로 칭의와 성화는 둘 다 순간성과 시간성을 갖고 있다.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순간에 의롭다 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순간에 성화된다. 그러나, 그 구원의 순간은 새생명의 시작일 뿐이다. 이것은 구원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경과하면서 아직 자라가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자라가야 할 부분이 점진적 성화에 해당된다. 점진적 성화는 영혼과 육체의 온전한 구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영혼 속에 나타날 성품의 변화, 곧, 인격적이고 도덕적 변화와, 그로 말미암아 수반되어질 육체의 활동으로 말미암는 삶의 변화, 곧, 말과 행동의 변화를 포함한다. 이 변화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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