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으면 까무러치게 싸우는 장면을 본 한 노인이 큰 소리로 외치기를 " 싸우려거든 국회나 교회에 가서 싸워"했다는 루머는 서민들의 소리요 또한 하늘의 소리다. 요즈음 교인들이 모이면 서울의 소망교회 이야기로 시간가는줄을 모른다. 7만여명의 교인이 모이고 현직 대통령이 출석하고 한국의 이름 석자 대면 다 아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그 곳에서 거룩한 주일 1부 예배가 끝나고 다음 예배를 준비하는 당회장 실에 들어간 현직 부 목사와 전직 부 목사가 문을 잠그고 당회장을 코 뼈가 부러지게 패고 짖밟아 4주간의 병원 치료를 받을 폭행을 한 사건을 연일 일간지에서 보면서 어떻게 교회가 이 지경까지 왔느냐? 하는 슬픈 생각이 든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곧 밝혀지겠지만 어찌되었든지 성스러운 주일 낮 목사들이 당회장실에서 치고 받은 폭행은 누가 들어도 이해 할수가 없다.
교인들이 더 염려하는 것은 그 일이 어떤 특정한 교회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체 교계가 그런 일이 있을수 밖에 없는 풍토를 이 번 일을 보면서 더 걱정한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끄러운 일들, 즉 유명하다는 목사들의 명예욕으로인한 총회장 선출에 쓰는 천문학적 돈 잔치, 당회장의 권력 남용, 지저분한 스캔들과 지방색이 난무하는 종교 정치꾼들의 장난 등등...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크고 작은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성실한 교인들이 소리없이 교회를 떠나게 된다. 마귀가 춤을 추며 좋아하는 일들이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고 하셨다. 썩어져가는 세상에서 방부제 역할을 하고 맛을 내서 생동력 있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아울러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떼가 없어 길까에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는 경고도 하셨다. 또 교회는 세상에 빛이 되어 어두운 곳을 밝혀 밝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 서라는 것이다. (참고 마5:13-16)) 사실 그 말씀을 따라 운영되는 교회가 많지만 근래에 들어 그 원래의 모습이 퇴색되어 소금의 맛과 빛을 잃은 교회가 더 많아진다는데 교계의 슬픔이있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교인들을 걱정하고 교인들이 장로들을 염려하고 장로들이 목회자들을 근심하며 염려하는 세상으로 순서가 바뀌고있다.
고린도 지방은 당시 살기 좋은 자연조건을 잘 갖추고 있어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항구도시로써 무역이 활발해서 경제적으로 부요한 곳이었다. 사도바울은 아곳에 교회를 세워 세계적인 전도의 꿈을 실현하고저 노력했다. 그런데 그 뜻과는 다르게 교인들이 4파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일반인들과 다를것 없이 사치하고 성적으로도 타락하고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는 것을 본 바울은 너무도 실망해서 회개하고 옳바른 성도가 되라고 여러번 눈물로 호소하고 권면과 꾸지람을 했으나 세상 향락에 깊이 물든 교인들은 그 경고를 받아드릴 마음마저 마비되어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바울을 배척하다가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정반대의 교회다. 본국에서의 핍박을 피해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먼 나라인 안디옥으로 피난 온 교인들은 제일 먼저 교회를 세웠다. 빈 손으로 모인 교인들이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도록 노력했다. 먼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 드리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러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은 문화적으로나 습관이 매우 다르지만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고 또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그 지역 발전을 위해 전적으로 몸과 물질로 헌신함은 물론 떠나온 모국이 흉년으로 어려울 때는 모금을해서 보내고 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숨어있는 인재들을 찾아서 지도자로 키웠다. 그런 교인들을 본 그 곳 원주민들이 정말 그리스도를 닮은 교인이라고 해서 크리스챤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 교회는 날마다 부흥이 된 것이다.
꼭 같은 이민 교회지만 어떤 교회는 참 교회의 모습으로 일반인에게 칭찬을 받으며 부흥했고 다른 곳은 많은 인재와 재산을 가지고도 안으로 당파 싸움과 사치, 우상승배로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길까에 버려져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짖밟히는 신세가 되었다. 재미 한인교회들은 어디로 갈까?
교인들이 더 염려하는 것은 그 일이 어떤 특정한 교회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체 교계가 그런 일이 있을수 밖에 없는 풍토를 이 번 일을 보면서 더 걱정한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끄러운 일들, 즉 유명하다는 목사들의 명예욕으로인한 총회장 선출에 쓰는 천문학적 돈 잔치, 당회장의 권력 남용, 지저분한 스캔들과 지방색이 난무하는 종교 정치꾼들의 장난 등등...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크고 작은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성실한 교인들이 소리없이 교회를 떠나게 된다. 마귀가 춤을 추며 좋아하는 일들이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고 하셨다. 썩어져가는 세상에서 방부제 역할을 하고 맛을 내서 생동력 있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아울러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떼가 없어 길까에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는 경고도 하셨다. 또 교회는 세상에 빛이 되어 어두운 곳을 밝혀 밝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 서라는 것이다. (참고 마5:13-16)) 사실 그 말씀을 따라 운영되는 교회가 많지만 근래에 들어 그 원래의 모습이 퇴색되어 소금의 맛과 빛을 잃은 교회가 더 많아진다는데 교계의 슬픔이있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교인들을 걱정하고 교인들이 장로들을 염려하고 장로들이 목회자들을 근심하며 염려하는 세상으로 순서가 바뀌고있다.
고린도 지방은 당시 살기 좋은 자연조건을 잘 갖추고 있어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항구도시로써 무역이 활발해서 경제적으로 부요한 곳이었다. 사도바울은 아곳에 교회를 세워 세계적인 전도의 꿈을 실현하고저 노력했다. 그런데 그 뜻과는 다르게 교인들이 4파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일반인들과 다를것 없이 사치하고 성적으로도 타락하고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는 것을 본 바울은 너무도 실망해서 회개하고 옳바른 성도가 되라고 여러번 눈물로 호소하고 권면과 꾸지람을 했으나 세상 향락에 깊이 물든 교인들은 그 경고를 받아드릴 마음마저 마비되어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바울을 배척하다가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정반대의 교회다. 본국에서의 핍박을 피해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먼 나라인 안디옥으로 피난 온 교인들은 제일 먼저 교회를 세웠다. 빈 손으로 모인 교인들이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도록 노력했다. 먼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 드리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러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은 문화적으로나 습관이 매우 다르지만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고 또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그 지역 발전을 위해 전적으로 몸과 물질로 헌신함은 물론 떠나온 모국이 흉년으로 어려울 때는 모금을해서 보내고 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숨어있는 인재들을 찾아서 지도자로 키웠다. 그런 교인들을 본 그 곳 원주민들이 정말 그리스도를 닮은 교인이라고 해서 크리스챤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 교회는 날마다 부흥이 된 것이다.
꼭 같은 이민 교회지만 어떤 교회는 참 교회의 모습으로 일반인에게 칭찬을 받으며 부흥했고 다른 곳은 많은 인재와 재산을 가지고도 안으로 당파 싸움과 사치, 우상승배로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길까에 버려져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짖밟히는 신세가 되었다. 재미 한인교회들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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