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미마센, 와다구시와 니혼진 데쓰! 유 갓 더 건?” (실례지만, 나 일본사람인데 총 좀 있어?) 여명의 LA 다운타운 뒷골목, 정차한 일제 캠리 승용차의 차창을 스르륵 내리면서 남자가 도로변에 삼삼오오 어슬렁거리던 불량배들에게 건조하게 말을 뱉았다.
새벽 댓바람부터 총을 찾는 낯선 동양인에게 흑인 청년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대자 적개심으로 불타는 눈동자를 한 동양 남자는 급출발로 도로에 굉음만 남기고 바람같이 사라진다.
사랑을 잃어버린 수컷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해지는 건가 보다. 1999년 초, 필자는 분노와 좌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시리얼 넘버가 없는 갱들 소유 총을 구하려고 잃어버린 천사의 도시 로스 앤젤레스의 뒷골목을 그렇게 헤메이고 있었다.
사실, LA는 천사를 잃어버린 도시가 아니라 ‘많은 천사들’이라는 라틴어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필자에게 그 도시는 영락없는 잃어버린 천사의 도시였다. 그 때 총을 구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긴 세월이 지나서야 필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내면의 분노를 내려놓고 진심으로 옛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리브가를 예비하신 것처럼 허락해주신 지혜롭고 아름다워 신실한 배필을 만나 날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고자 감사와 찬양으로 기뻐하며 생활하고 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이제는 바울의 고백이 필자의 고백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필자와는 달리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비운의 남자, 경비행기 비행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영국인 귀족 제프리 클리프튼(콜린 퍼스 분)은 이지적이고 아름답던 아내 캐서린 클리프튼(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가 자신의 헝가리인 탐험가 친구 알마시(랄프 파인즈 분)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불같이 분노하게 된다.
제프리는 자신의 아내를 태운 비행기로 아내의 정부 알마시에게 돌진을 한다. 불행하게도 제프리의 비행기는 사막에 내려 꽂히게 되고 자신은 즉사하게 된다. 아내의 내연남 알마시는 부상 당한 내연녀 캐서린을 안아서 근처의 동굴에 눕혀 놓고 의료진을 데리러 떠난다. 불륜남 알마시가 4일 동안을 걸어 도착한 도심은 이미 전쟁이 한창이었다.
알마시를 발견한 영국군인은 알마시를 독일인으로 알고 한참을 고문하다가 결국 감옥 이송하는데, 알마시는 운 좋게 호송기차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한다. 다시 사막을 도보로 횡단하며 그녀에게 가던 중 독일군을 만나 알마시는 그들에게 자신이 직접 그린 사막지도를 팔고 비행기 연료를 얻는다. 내연녀 캐서린의 남편 경비행기로 캐서린에게 도착하지만, 이미 그의 내연녀 캐서린은 죽었다.
불륜도 사랑이라며 죽은 캐서린을 비행기 앞 좌석에 태우고 사막을 날아가는 비행기, 사막에서 독일군이 쏜 대공포에 비행기는 불을 내뿜으며 추락하고 비행기 뒷좌석의 알마시는 화염에 휩싸인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신의 눈에는 피눈물이 나게 되는 법. 불륜남 알마시는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고 급기야 얼굴형체마저 흉측하게 변한다.
1944년. 이탈리아의 폐허같던 한적한 수도원에서 불륜남 알마시는 자신을 간호해주던 순진한 간호사 한나에게 남은 진통제 주사를 모두 놔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면서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던 성경 말씀을 입증해 보였다. 비극이나 환란 속에서 어렵게 이루어진 사랑이야기가 더 애잔하고 아름답다고 누군가 말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않는다. 그냥, 죄는 죄고 불륜은 불륜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 알마시와 캐서린은 자신들의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하면서 분명 신실하게 서로의 배우자에게 “Yes, I do!”(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서약했었을 것이다. 혼인서약을 하면서 보통의 경우처럼 그들은 육신의 정절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7절로 28절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가늠할 수 있는 육신적인 정절’을 초월하는 단계, 즉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기까지 가르치셨다.
진정한 혼인서약은 성적인 태도와 관심이 전적으로 남편과 아내에게로만 향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시고 계시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알마시와 캐서린의 성적인 태도와 관심에는 아무리 좋은 말이나 미쟝센으로, 또 문화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여도 서로 배우자에 대한 정절의식은 이미 없고 서로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상대로 음욕을 품은 채 서로를 대하였다. 그 죄의 결과는 당연히 사망이다. 그것도 아주 처참한 최후, 영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그들은 지옥불에서 하루를 천년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주관적 혹평에도 불구하고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해 작품상을 비롯해서 감독상, 여우 조연상(줄리엣 비노시), 음악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음향상, 편집상. 등 총 9 개 부문 수상의 영광을 받았었다.
어쨌든, 믿는 자들로서 배우자와 심신 간에 완전한 합일체가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신비한 경험의 즐거움을 뺏기지 않으려면, 내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배우자와의 상호신뢰를 완벽하게 지키며 산다는 일은 참으로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을 잘 지켜나가며 부부생활을 잘 해낸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기쁨과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우자와의 상호신뢰를 완벽하게 잘 지키며 산다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던지 주님과 동행하는 즐거움과 주님의 임재를 깊이 묵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휴식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주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이미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시련과 환란의 시기가 닥친다고 해도,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가 우리 삶에 깃들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문제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도움이 온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환희에 가득차서 노래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음부의 권세로 무장한 골리앗과 같은 세상에서 다윗과 같은 순전한 믿음과 순종이 필요한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여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할렐루야!
최재훈 감독(HnB 픽처스)
새벽 댓바람부터 총을 찾는 낯선 동양인에게 흑인 청년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대자 적개심으로 불타는 눈동자를 한 동양 남자는 급출발로 도로에 굉음만 남기고 바람같이 사라진다.
사랑을 잃어버린 수컷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해지는 건가 보다. 1999년 초, 필자는 분노와 좌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시리얼 넘버가 없는 갱들 소유 총을 구하려고 잃어버린 천사의 도시 로스 앤젤레스의 뒷골목을 그렇게 헤메이고 있었다.
사실, LA는 천사를 잃어버린 도시가 아니라 ‘많은 천사들’이라는 라틴어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필자에게 그 도시는 영락없는 잃어버린 천사의 도시였다. 그 때 총을 구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긴 세월이 지나서야 필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내면의 분노를 내려놓고 진심으로 옛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리브가를 예비하신 것처럼 허락해주신 지혜롭고 아름다워 신실한 배필을 만나 날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고자 감사와 찬양으로 기뻐하며 생활하고 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이제는 바울의 고백이 필자의 고백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필자와는 달리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비운의 남자, 경비행기 비행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영국인 귀족 제프리 클리프튼(콜린 퍼스 분)은 이지적이고 아름답던 아내 캐서린 클리프튼(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가 자신의 헝가리인 탐험가 친구 알마시(랄프 파인즈 분)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불같이 분노하게 된다.
제프리는 자신의 아내를 태운 비행기로 아내의 정부 알마시에게 돌진을 한다. 불행하게도 제프리의 비행기는 사막에 내려 꽂히게 되고 자신은 즉사하게 된다. 아내의 내연남 알마시는 부상 당한 내연녀 캐서린을 안아서 근처의 동굴에 눕혀 놓고 의료진을 데리러 떠난다. 불륜남 알마시가 4일 동안을 걸어 도착한 도심은 이미 전쟁이 한창이었다.
알마시를 발견한 영국군인은 알마시를 독일인으로 알고 한참을 고문하다가 결국 감옥 이송하는데, 알마시는 운 좋게 호송기차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한다. 다시 사막을 도보로 횡단하며 그녀에게 가던 중 독일군을 만나 알마시는 그들에게 자신이 직접 그린 사막지도를 팔고 비행기 연료를 얻는다. 내연녀 캐서린의 남편 경비행기로 캐서린에게 도착하지만, 이미 그의 내연녀 캐서린은 죽었다.
불륜도 사랑이라며 죽은 캐서린을 비행기 앞 좌석에 태우고 사막을 날아가는 비행기, 사막에서 독일군이 쏜 대공포에 비행기는 불을 내뿜으며 추락하고 비행기 뒷좌석의 알마시는 화염에 휩싸인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신의 눈에는 피눈물이 나게 되는 법. 불륜남 알마시는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고 급기야 얼굴형체마저 흉측하게 변한다.
1944년. 이탈리아의 폐허같던 한적한 수도원에서 불륜남 알마시는 자신을 간호해주던 순진한 간호사 한나에게 남은 진통제 주사를 모두 놔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면서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던 성경 말씀을 입증해 보였다. 비극이나 환란 속에서 어렵게 이루어진 사랑이야기가 더 애잔하고 아름답다고 누군가 말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않는다. 그냥, 죄는 죄고 불륜은 불륜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 알마시와 캐서린은 자신들의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하면서 분명 신실하게 서로의 배우자에게 “Yes, I do!”(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서약했었을 것이다. 혼인서약을 하면서 보통의 경우처럼 그들은 육신의 정절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7절로 28절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가늠할 수 있는 육신적인 정절’을 초월하는 단계, 즉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기까지 가르치셨다.
진정한 혼인서약은 성적인 태도와 관심이 전적으로 남편과 아내에게로만 향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시고 계시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알마시와 캐서린의 성적인 태도와 관심에는 아무리 좋은 말이나 미쟝센으로, 또 문화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여도 서로 배우자에 대한 정절의식은 이미 없고 서로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상대로 음욕을 품은 채 서로를 대하였다. 그 죄의 결과는 당연히 사망이다. 그것도 아주 처참한 최후, 영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그들은 지옥불에서 하루를 천년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주관적 혹평에도 불구하고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해 작품상을 비롯해서 감독상, 여우 조연상(줄리엣 비노시), 음악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음향상, 편집상. 등 총 9 개 부문 수상의 영광을 받았었다.
어쨌든, 믿는 자들로서 배우자와 심신 간에 완전한 합일체가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신비한 경험의 즐거움을 뺏기지 않으려면, 내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배우자와의 상호신뢰를 완벽하게 지키며 산다는 일은 참으로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을 잘 지켜나가며 부부생활을 잘 해낸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기쁨과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우자와의 상호신뢰를 완벽하게 잘 지키며 산다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던지 주님과 동행하는 즐거움과 주님의 임재를 깊이 묵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휴식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주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이미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시련과 환란의 시기가 닥친다고 해도,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가 우리 삶에 깃들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문제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도움이 온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환희에 가득차서 노래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음부의 권세로 무장한 골리앗과 같은 세상에서 다윗과 같은 순전한 믿음과 순종이 필요한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여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할렐루야!
최재훈 감독(HnB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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