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2006-04-30 07:51
제자들의 나태함, 혈기, 이기적인 모습 바라보신 주님
목회 현장은 크건 작건 하나의 가정임을 세월이 지나며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삼 년을 지내시는 동안 열두제자와 더불어 사역하시고, 함께 생활하며 나누셨던 모든 삶은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생선 비린내 풍기던 이들을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고,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비밀을 하나 하나 가르쳐 세워 나가셨지만 그들의 성장은 좀처럼 눈에 띄게 보여지지 않았었다.
선생님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생각과 환상에 사로 잡혀 있던 이들을 바라보시며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시던 주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제자들의 나태함, 성급함, 혈기, 이기주의적인 마음들을 바라보시며 죽음을 앞두고 사역을 부탁하시던 주님의 가슴에 얼마나 큰 멍이 들었었을까. 그래서 목회 현장은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학교인 것 같다. 목사들의 가슴은 늘 숫덩이이다.
북가주 근교 기도원 앞마당에 불에 새까맣게 타버린 고목이 한 그루 서있었다. 어느 날 보니 그 타버린 고목에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봉사하시는 분께 여쭤보니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시커먼 모습을 볼 때 마다 제 더러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칠해 버렸지요’
그 고목 앞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픈 적이 있었다. 새카맣게 타버린 가슴을 미소라는 페인트로 칠해버리고 의연한 척 살아가는 내 모습 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사순절을 지내며 릭워렌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 40일 켐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3과를 묵상하는 가운데 이런 글이 눈길을 끌었다.
‘슬프게도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아직도 영적으로 계속 기저귀를 차고 젖병을 빨며 영적 유아 상태에 머물러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장하려고 의도 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기저귀 갈아주는데 이골이 나있는 삶들이다. 갈아주고 닦아주고, 씻겨주기도한다. 하지만, 목사를 슬프게 하는 건 기저귀에서 풍겨나는 오물 냄새가 아니다.
릭워렌 목사의 지적대로 성장을 위한 발버둥과 노력 없이 세상이라는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바라볼 때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연단이 겹칠 때, 절망의 벼랑 끝자락에 서있을 때 그때야 말로 뒤로 돌아서서 십자가 밑에 무릎 끓어야 할 때인데, 한발 앞이 낭떠러지인줄 알면서도 계속 그 길로 나가는 모습을 볼 때 목사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힘들 때 교회를 찿고, 목사를 찿고, 신앙의 식구들을 찿아 삶을 나누며 기도로 이겨나가는 모습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인 것을 이제 우리 모두가 깨달아갔으면 한다.
지난주일 아침, 예배를 준비하다 연단 속에 힘겨워하는 한 교우의 집에 전화 심방을 했다.
그들이 교인으로서가 아닌 피를 나눈 형제이상의 가족임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 그분들의 힘겨운 목소리를 들으며 안타까움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야 했던 경험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존재들인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성도들이 힘겨워하고, 아파할 때 목사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늘 뒤에서 기도하며 함께 눈물 흘리고 있음을 느끼며 힘겨울수록 가족애로 뭉쳐지는 교회 공동체를 꿈꾸어 본다.
목사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지만 행복해서 눈물흘릴 때도 많이 있기에 위안이 되고 사역의 보람을 느낄수 있다. 어느날 보니 기저귀를 떼어 버리고 의연하고 성숙하게 성장해 우뚝서 있는 교우들을 바라볼때이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처럼 신앙생활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새벽마다 제단에 나와 머리 숙여 기도하고, 설거지, 쓰레기 치우기 등의 궂은일을 묵묵히 기쁨으로 감당하는 분들을 볼 때이다.
주일 성수하는 일을 피곤함 때문에 힘겨워하던 교우들이 이제는 주일이 기다려 진다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목사는 행복의 눈물을 흘린다.
목장이나, 소그룹 모임을 통해 삶을 나누는 가운데 자신도 놀랄 만큼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감격하는 간증하는 모습들을 목격하며 함께 가슴이 뛴다.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할 분들이 힘겨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방황할 때 함께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우뚝서 가는 모습들을 바라볼 때 목사는 뒤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며 기뻐하셨듯이 목사에게 신앙으로 성장해가며 영적인 기쁨을 나누는 교우들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으랴.
그래서 목사의 눈시울은 마를 날이 없다. 슬퍼서 울고, 안타까워서 울고, 기뻐서 울고, 너무 행복해서 운다.
/ 크리스챤라이프 우동은 제공
제자들의 나태함, 혈기, 이기적인 모습 바라보신 주님
목회 현장은 크건 작건 하나의 가정임을 세월이 지나며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삼 년을 지내시는 동안 열두제자와 더불어 사역하시고, 함께 생활하며 나누셨던 모든 삶은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생선 비린내 풍기던 이들을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고,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비밀을 하나 하나 가르쳐 세워 나가셨지만 그들의 성장은 좀처럼 눈에 띄게 보여지지 않았었다.
선생님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생각과 환상에 사로 잡혀 있던 이들을 바라보시며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시던 주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제자들의 나태함, 성급함, 혈기, 이기주의적인 마음들을 바라보시며 죽음을 앞두고 사역을 부탁하시던 주님의 가슴에 얼마나 큰 멍이 들었었을까. 그래서 목회 현장은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학교인 것 같다. 목사들의 가슴은 늘 숫덩이이다.
북가주 근교 기도원 앞마당에 불에 새까맣게 타버린 고목이 한 그루 서있었다. 어느 날 보니 그 타버린 고목에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봉사하시는 분께 여쭤보니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시커먼 모습을 볼 때 마다 제 더러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칠해 버렸지요’
그 고목 앞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픈 적이 있었다. 새카맣게 타버린 가슴을 미소라는 페인트로 칠해버리고 의연한 척 살아가는 내 모습 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사순절을 지내며 릭워렌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 40일 켐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3과를 묵상하는 가운데 이런 글이 눈길을 끌었다.
‘슬프게도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아직도 영적으로 계속 기저귀를 차고 젖병을 빨며 영적 유아 상태에 머물러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장하려고 의도 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기저귀 갈아주는데 이골이 나있는 삶들이다. 갈아주고 닦아주고, 씻겨주기도한다. 하지만, 목사를 슬프게 하는 건 기저귀에서 풍겨나는 오물 냄새가 아니다.
릭워렌 목사의 지적대로 성장을 위한 발버둥과 노력 없이 세상이라는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바라볼 때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연단이 겹칠 때, 절망의 벼랑 끝자락에 서있을 때 그때야 말로 뒤로 돌아서서 십자가 밑에 무릎 끓어야 할 때인데, 한발 앞이 낭떠러지인줄 알면서도 계속 그 길로 나가는 모습을 볼 때 목사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힘들 때 교회를 찿고, 목사를 찿고, 신앙의 식구들을 찿아 삶을 나누며 기도로 이겨나가는 모습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인 것을 이제 우리 모두가 깨달아갔으면 한다.
지난주일 아침, 예배를 준비하다 연단 속에 힘겨워하는 한 교우의 집에 전화 심방을 했다.
그들이 교인으로서가 아닌 피를 나눈 형제이상의 가족임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 그분들의 힘겨운 목소리를 들으며 안타까움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야 했던 경험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존재들인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성도들이 힘겨워하고, 아파할 때 목사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늘 뒤에서 기도하며 함께 눈물 흘리고 있음을 느끼며 힘겨울수록 가족애로 뭉쳐지는 교회 공동체를 꿈꾸어 본다.
목사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지만 행복해서 눈물흘릴 때도 많이 있기에 위안이 되고 사역의 보람을 느낄수 있다. 어느날 보니 기저귀를 떼어 버리고 의연하고 성숙하게 성장해 우뚝서 있는 교우들을 바라볼때이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처럼 신앙생활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새벽마다 제단에 나와 머리 숙여 기도하고, 설거지, 쓰레기 치우기 등의 궂은일을 묵묵히 기쁨으로 감당하는 분들을 볼 때이다.
주일 성수하는 일을 피곤함 때문에 힘겨워하던 교우들이 이제는 주일이 기다려 진다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목사는 행복의 눈물을 흘린다.
목장이나, 소그룹 모임을 통해 삶을 나누는 가운데 자신도 놀랄 만큼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감격하는 간증하는 모습들을 목격하며 함께 가슴이 뛴다.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할 분들이 힘겨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방황할 때 함께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우뚝서 가는 모습들을 바라볼 때 목사는 뒤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며 기뻐하셨듯이 목사에게 신앙으로 성장해가며 영적인 기쁨을 나누는 교우들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으랴.
그래서 목사의 눈시울은 마를 날이 없다. 슬퍼서 울고, 안타까워서 울고, 기뻐서 울고, 너무 행복해서 운다.
/ 크리스챤라이프 우동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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