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의 내용은 지난 10월 7일 감사한인교회(담임 김영길 목사)에서 개최된 '미션빌더스포럼'에서 발제된 내용이다. 총 4회에 걸쳐 풀러신학교 박기호 교수의 '선교역사에서 본 이민교회의 선교적 특성'원고가 실리며 온라인 지상을 통해 타 발제 내용도 연재된다. 자료제공: 미션빌더스포럼

2.성경 역사에 나타난 이민자들 선교적 특성

성서에 나타난 이민자들의 선교적 특성들을 고찰함에 있어서 먼저 구약의 예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신약의 예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 구약의 이민자들을 통한 선교의 특성

구약성서의 역사에 나타난 이민자들을 통한 선교의 특징은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선교에 동참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약함 가운데 이루어졌고, 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제자도 구현에 따른 것이었고, 자기 분야에 탁월한 사람들이 됨에 의한 선교였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증거하는 것이었으며, 4가지 선교 메카니즘이 사용된 선교였다.

구약의 이민자들의 선교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주도하에 됐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전략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선교였다. 세상 모든 민족들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의 사역,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이주하여 당대의 대기근에서 이스라엘과 애굽과 열국을 구한 요셉의 사역, 애굽에서 미디안 땅으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애굽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도운 모세의 사역 등은 모두 그들의 계획이나 전략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선교라는 면에서 아브라함의 선교, 요셉의 선교, 그리고 모세의 선교에 대하여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브라함의 선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창 12:1-5).

모세의 선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 3:7-10)

요셉의 선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찌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 (창 45:5-8)

이상의 말씀들은 모두 족장시대의 이민자들의 선교가 사람들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선교의 주체이시다. 하나님의 선교에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가거나 비자발적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 선교에 동참하여 선교하게 된 것이다. 자발적으로 나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 인간이 자원함으로 나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부르심에 대한 응답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자원 봉사자들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사)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선교사들은 선교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을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주시는 힘으로 선교해야 한다.

서구교회들이 세계선교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경제적인 힘에 의한 선교를 하므로 선교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온 것이 오늘날 제3세계 여러 나라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거부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구약시대 이민자들의 선교 특징 중 하나가 약함 가운에 이루어진 선교이었다는 의미는 포로시대 이민자들의 선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벨론 제국과 바사의 왕들을 비롯해 모든 민족들에게 왕들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경우 그들이 탁월한 사람들이 되므로 권세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선교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목숨을 건 위기, 약함 가운데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의 개입으로 만민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다음 구절들은 구약 포로시대 이민자들의 선교사 약함 가운데 선교요, 위기 속에서의 선교요, 제자도 실천의 결과로 되어진 선교요, 하나님께서 세상의 통치자임을 보여주는 선교였음을 보여준다.

다니엘의 세친구의 경우: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배나 뜨겁게 하라하고.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을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라 하니 이 사람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더라. 때에 느부갓네살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각 방언하는 자가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단 3:14-30)

다니엘의 경우: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이에 다리오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단 6: -18-28)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니엘,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시는 왕이시요 구원자시라는 것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구약의 이민자들을 통한 선교는 4가지 선교 메카니즘이 모두 사용된 선교이었다. 구약시대에 세계선교를 위하여 위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각 분야의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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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신약의 이민자들 (이민교회)을 통한 선교의 특성

신약의 이민자들을 통한 선교의 특징은 성령의 주도로 이루어진 선교이었으며, 교회 중심의 선교이고, 구제와 말씀선포가 함께 가는 선교이었고, 모든 교인들이 은사를 따라 참여한 선교이었고, 성령의 능력에 의한 선교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선교이었다.
성령의 주도로 이루어진 선교이었다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나 이민자들에 의하여 세워진교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주도로 선교하였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훈련을 잘 받았지만 그들은 효과적으로 선교하기 위하여 성령을 받아야만 되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역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4-8)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

안디옥교회의 경우:
수리아 안디옥교회는 이민자들 중심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설립부터 구성면에서 그렇다. 안디옥교회는 구브로(Cyprus)와 구레네 (Cyrene)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이민자들의 복음 전도로 세워졌으며, 구브로 이민자 출신 바나바, 그리고 길리기아 다소 이민자 출신 바울의 목회로 다져진 교회이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이 뵈니게 (Phonicia)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되 유대인에게 만 전하였으나 이미 이민 생활을 경험하여 다른 인종들과 교제하고 관계를 맺는데 좀 더 익숙한 구브로와 구레네 이민자들이 안디옥에 가서 안디옥에 사는 헬라인들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며,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된 것이다. (행 11:19-21). 예루살렘 교회가 착하고, 믿음과 성령에 충만한 바나바를 그 곳에 보내 교회를 목회하고 길리기아 다소에 가있던 바울이 와서 함께 사역하므로 안디옥교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행 11:9-26). 그리고 안디옥교회는 다인종 교회로서 구제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발전하였다 (행 11:27-30; 13:1-3).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 하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19-30)

이민교회는 본국교회보다 선교사역을 위하여 유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외국인들 가운데 처해 있으며, 언어와 문화적인 면에서 장애가 적으며, 신앙생활과 실천면에서 융통성이 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원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요구했던 할례를 요구하지 않은 것 등에서 볼 수 있다.

성서에 나타난 이민교회의 선교적 특성은 위에 언급한 선교의 네 가지 메카니즘의 종합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세계관을 잘 이해하였다. 안디옥교회 파송 선교사들, 곧 바나바와 바울은 약한 자의 입장에서 선교를 감당하였다. 안디옥교회 파송선교사들은 본국의 자산이 아닌 선교지의 자산으로 사명을 감당하였다.

로마교회의 예: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롬1:7-8)

"내 형제들아 너희가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 . .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롬 15:14, 22-24)

이상의 말씀들을 보면 로마에 가서 이민 생활하는 이민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로마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였다.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교역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인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성경지식이 풍부하고 서로 가르칠 줄 알았으며 자신들의 소유를 선교하는 교회였다. 결국 로마 제국을 복음화는데 쓰임 받았다.
신약 이민교회의 선교도 구약 이민자들의 선교 특성처럼 사람들의 계획된 선교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기 보다 하나님의 성령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물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졌고, 선교지인들의 언어와 문화와 세계관을 이해하는 이민자들에 의하여 주로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말씀 선포와 구제가 병행된 선교이었으며 사도들 뿐 아니라 집사들이 함께 적극 참여한 선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