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의 후원자 모집활동을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인 컴패션밴드 멤버들과 함께 아이티에 갔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먹을 게 없어 진흙으로 만든 과자를 먹는 아이들.

이런 저런 설명들을 미리 듣고 갔는데도 막상 현실을 마주 대하니, 눈을 돌리는 곳마다 탄식이 절로 났습니다.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다니는 ‘마켄 쉘루아’는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재작년 불어닥친 태풍과 홍수로 마켄의 집은 집터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집이 떠내려갈 때 엄마가 업고 있던 동생이 휩쓸려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켄도 엄마도 그저 바라만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어린 소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단 자책감이 묻어있는 듯 했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어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앗아간 재해와 굶주림, 그리고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지쳐 있는 아이티에 또 절망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죽은 이가 몇십 만이고, 피해자가 몇백 만이라고 합니다.

국제컴패션 직원들이 긴급구호 물품을 실은 헬리곱터를 타고 아이티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6만 5천명이 넘는 컴패션아이들이 무사한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국 후원자들이 일대일 결연후원하고 있는 어린이들이 2,124명인데 그 가운데 제가 후원하는 웨스턴린도 포함돼 있습니다.

10개월 전 그녀를 만나 즐거운 반나절을 보낸 곳이 바로, 이번 지진으로 붕괴된 몬타로호텔이었습니다. 당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어 웨스턴린을 떠나보낼 때, 그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 준비해간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는 가지만, 그 선물들과 어울리지 않는 환경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 배웅을 하고도 한참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형편마저도 얼마나 더 망가져 있을까요….

컴패션의 도움으로 홀로 갓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에게 ‘언제가 제일 힘드냐’ 물으니, “지금이요…”라고 힘없이 답하던 엄마는 과연 무사할까요?

‘후원자를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고 감사의 노래를 불러준 컴패션 대학장학생들은 지금 살아 있을까요?

파일럿, 우주비행사…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그리던 교실이 눈에 선한데, 그 아이들을 지금 누가 돌봐주고는 있을까요?

처절한 현지 소식을 접하는 내내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을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이 안전하기를…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돕는데 더 많은 나라,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기를…

불과 9개월 전, 웨스턴린과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봅니다. 그리고 사진 속 내 아이에게 말 걸어봅니다.

“무사한 거지? 혼자가 아니야, 함께 네 고통을 나눌께. 끝까지…”

신애라/ 배우, 한국컴패션 홍보대사

한국컴패션은 지난해 3월 컴패션밴드와 아이티를 방문했다. 후원자 모집활동을 자원하고 있는 컴패션밴드 멤버들은 주로 연예인들로 구성됐으며, 이들 대부분은 일대일 결연으로 아이티 아이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현재 차인표-신애라 부부, 주영훈-이윤미 부부, 션-정혜영 부부 등 이들은 강진으로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결연자들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마음 졸이면서 현장 소식을 지켜보고 있다. 컴패션은 현재 230곳의 어린이센터를 세우고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6만 5천명의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으며, 이들 중 한국 후원자들은 2124명을 돕고 있다. 현장에 급파된 국제컴패션 위기대책팀에 따르면 현지 컴패션 직원 74명 중 40명의 생사가 확인된 상태이며, 나머지 직원들과 결연 어린이들의 소재는 파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