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약 8백여명의 통일교도들이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과 주변을 8시간 동안 점거하고 시위를 벌인 후 자진 해산했지만 현장에는 아직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동아일보측은 신도들이 시위 당시 이를 취재하던 동아일보 사진부의 강병기 기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촬영을 방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강 기자는 신도 4명과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옷이 찢기고 팔에 멍이 들었으며 줌렌즈 1개를 빼앗겼다. 또 동아일보 출판광고팀의 박모 씨는 신도들이 던진 화분 파편에 맞아 오른쪽 눈의 각막을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18일 신동아 9월호가 발매된 이후 22일까지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휴대전화에는 “죽이겠다” “밤길 조심하라” 등 협박성 문자메시지 200여 통이 들어왔다.

통일교도들은 <대해부 통일교 왕국>이라는 신동아 9월호의 기사에 대해 “통일교 탈교자들의 일방적인 진술만 듣고 작성된 편파적이며 명예훼손적인 기사”라고 비난하며 일간지 사과광고, 신동아 9월호 회수, 책임자 처벌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동아일보 사옥 1층 로비와 5층 편집국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시위를 주도한 간부들은 동아일보사 관계자들과 4차례 면담했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들은 오후 5시 20분경 자진 해산하며 “더 강도 높은 시위를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돌아갔다.

이에 신동아측은 “기사에 불만이 있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순리”라며 “언론사의 사무실을 점거해 폭력시위를 벌인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밝혔다. 이 편집장은 “통일교 관계자들과 21일부터 4차례 대화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무단 침입과 기물 파손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일교도들은 신동아 9월호가 통일교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자 잡지가 발간된 직후인 18일과 21일 동아일보사를 항의방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자 기습적으로 동아일보 사옥을 점거해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번의 강경한 시위는 동아일보사의 대표적 잡지인 주간동아와 신동아가 그동안 통일교를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다 갑자기 방향성이 급전하면서 통일교도들에게 더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2006년 3월호 신동아 중 <일본 흔든 한국 통일교, 한국 뚫은 일본 창가학회>라는 기사는 한국 남성들이 일본 통일교 여성과 합동결혼하는 모습을 한일민족화합의 측면에서 부각시키고 있다. 또 주간동아 483호(2005년 5월 3일)에는 <통일교 곽정환 시대 활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통일교와 문선명 교주의 활동을 평화와 종교의 사회참여라는 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주간동아 242호(2000년 7월 13일)는 <남북관계 훈풍 타고 “더 가까이”>란 기사에서 통일교의 북한 내 활동을 충실히 홍보해 주고 있기도 하다.

가장 최근인 주간동아 517호(2006년 1월 3일)는 신년특집으로 <문선명, 평화를 향한 세계 편력>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문선명 교주의 ‘천주평화연합’ 창설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신동아 9월호는 <대해부 통일교 왕국- 바치고 또 바쳐라, 멀고 먼 지상천국>이라는 표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비판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신동아와 주간동아의 취재가 대부분 통일교 핵심인사들과의 인터뷰 혹은 대외적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보도는 기자가 직접 통일교를 탐방하고 탈교자들을 인터뷰 한 후에 썼다는 점이 다르다.

취재를 맡은 조성식 기자는 경기도 가평에 통일교가 조성한 청평성지를 방문한 체험을 바탕으로 현장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특히 통일교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또 가평에 통일교가 소유한 부동산 재산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한다. 이어 통일교의 교리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며 문선명 교주를 향해 “메시아인가 사이비교주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기자는 “통일교는 예수를 실패한 메시아로 간주하며 성서를 기독교와는 상당히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 기사는 통일교의 합동결혼과 헌금에 대해 가장 강력한 비판을 던진다. 일본 통일교 여신도들과 결혼한 후 정상적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탈교자 남성들을 인터뷰해 증언을 받았다. 또 총생축 헌금, 천주승리축하헌금, 구국헌금, 건국기금, 십의삼조 등 통일교가 각종 명목으로 받는 헌금을 보도하며 “일본 쪽 헌금이 통일교의 젖줄”이라는 소문도 덧붙인다.

이번 동아일보 점거 시위 후 인터넷과 각종 매체에서 통일교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면서 통일교 내부에서도 공식 웹사이트(http://www.tongil.or.kr/) 커뮤니티 등에 “투쟁보다는 화해로, 강경함보다는 의연함으로 대처하자”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 하지만 지도부는 앞으로도 강도높은 시위를 천명한 터라 현장의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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