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10일 영국 사우스 햄톤 항에서 당시 세계최대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수많은 인파의 축하 속에 2223명의 승객(승무원포함)을 태우고 첫 출항을 했습니다. 프랑스의 셸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즈타운 항을 들려 미국의 뉴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 여객선의 첫 출항이 어이없는 실수로 당시 세계최대 참사 사건이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건조 책임자인 토머스 앤드류가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고 호언장담했던 타이타닉 호는 첫 항해에서 북대서양 차가운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출항당시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서, 배안에 있는 쌍안경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선원들은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하고 육안으로만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출항 후 얼마 되지 않아 빙산이 떠다닌다는 소식을 부근을 지나는 선박으로부터 무선통신으로 적어도 4월14일 6통의 경고를 받았으나, 승객들의 통신발신 업무에 바쁜 승무원들은 짜증을 내며 무시했습니다. 빙산의 출현은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4월14일 23시 40분, 북대서양의 뉴펀들랜드 바다에 이르렀을 때 빙산감시원이 전방 450미터에 있는 높이 20미터의 빙산을 발견하게 됩니다. 쌍안경이 있었으면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을 너무 늦게 발견하여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불과 20km 밖에 화물선 캘리포니안 호가 정박하고 있었지만 1명뿐인 통신사는 취침중이라 조난신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안에서 구명보트로 갈아탄 아내와 아이를 향해 ‘마지막 선물’을 내려 보냈던 가장의 사연이 한 세기만에 공개됐습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온라인 판은 지난3월26일 아내가 남긴 기록을 통해 사후97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고(故) 아서 웨스트(당시36세)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아내 애더와 두 딸 콘스턴스, 바바라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이민을 떠나기 위해 타이타닉호에 오른 웨스트씨에게 1912년 4월14일밤 불행이 닥쳐온 것입니다. 미국에서의 새 삶에 대한 기대에 부푼 것도 잠시,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시작되자 웨스트씨는 두 딸에게 구명기구부터 입힌 뒤 아내와 아이를 구명보트로 데려갔습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이 구명보트에 안착하자 갑판에 서 있던 웨스트씨는 객실로 돌아가 따뜻한 우유 한 병을 가져온 뒤 우유병을 밧줄에 묶어 구명보트를 향해 내려 보냈습니다.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웨스트씨의 아내 애더는 자신이 남긴 기록에서“우유병을 내게 건네준 뒤, 그는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갑판으로 돌아갔다.”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가라앉는 순간 구명보트에 있던 일부 남자 승객들은 두려움에 질려 여자들의 치마 밑에 숨기까지 했지만 남편은 1천500명의 다른 승객들과 함께 용기 있는 죽음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후 애더와 콘스턴스, 바바라는 구조선 ‘카르파티아’호에 의해 구조된 뒤 영국으로 돌아갔으며 애더는 1953년에, 콘스턴스와 바바라는 각각1963년, 200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숨질 때까지 참사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바바라가 세상을 떠난 뒤 애더가 남긴 기록과 웨스트씨의 마지막 선물인 ‘우유병’이 공개 되면서 이들의 사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웨스트씨가 마지막으로 보내주었던 우유 한 병과 같은 하나님의 마지막 선물입니다. 오직 하나뿐인 아들의 생명을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내려주신 것입니다. 우유 한 병속에 웨스트씨의 생명이 담겨 있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사람과 생명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애더와 콘스턴스 바바라의 가슴속에는 웨스트씨의 생명을 태운 사랑의 불꽃이 평생토록 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마지막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