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대 홍효균 목사 때 청소년 분과를 시작으로 10대를 거쳐, 11대 때는 사무총장 역할, 그 후로도 각 분과위원장, 청소년센터 사역 등을 도맡아 뉴욕교협에서 정말 오랫동안 사역해왔던 이병홍 목사.
금년 한 해는 우리 교회가 뉴욕의 모든 교회를 섬긴다
며칠 전 교회에서 “금년 한해는 우리 교회가 뉴욕의 모든 교회를 섬긴다라고 생각하라. 안목을 넓혀서 생각하라. 공적인 일 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설교했다. 교협일 하면 성도들이 대신 뛰게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성도들이 이제 알아서 교회 일을 챙긴다.
목자의 양의 관계가 잘 정립되는 목회
목자와 양의 관계가 잘 정립되는 목회. 목자가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알고, 목자가 양을 인도하고 지도하는데로 훈련받는 양은 잘 따라오고 순종하는 목회를 추구한다. 성장속도는 좀 느린 것 같지만 분열이 없는 가족 같은 교회를 이끌고 있다.
제자양육은 순모임으로
순모임은 가정목회다. 편하게 가지를 친다는 의미에서 ‘순’이라고 이름붙였다. 순모임으로 구역모임을 한다. 순리더(순장)가 돌아가면서 제자양육공부를 하고 주일 아침에는 사역자들이 함께 양육모임을 한다.
교회는 1983년도에 개척
뉴욕에는 1981년도에 와서 1983년도에 교회를 개척했다. 한국에서는 일반목회 안하고 특수목회했다. 국립의료원과 적십자사에서 원목으로 사역했었다. 일반목회는 미국에서 처음이다.
교목으로 오신 장인어른에 의해 회개
집안이 다 유교가정이었다. 사촌형수님이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다 나를 전도했다. 본격적으로 신앙생활하게 된 것은 중고등시절이다. 경주 영광 중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장인어른이 그 학교 교목으로 오셨다. 처음에는 내가 하나님 어디 계신가 보여달라고 그 분을 괴롭혔다. 그런데 그 분이 끝까지 나를 붙잡고 회개시켰다. 그 분의 영향을 받고 전국적으로 활동했던 KSCM(Korean Student Christian Movement)에도 들어갔다.
그 때 거듭나고 신앙생활 열심히 했다. 사실 장인어른이 날 신학교로 강압적으로 추천한 셈이다. 그렇게 신학대학을 가게 되었다. 나중에 장인 어른이 교목으로 계시다가 상주에 가셔서 목회를 하시면서 교회건축을 하는 중에 연탄가스로 쓰러졌다. 장모님은 일찍 깨어났는데 장인은 1년 동안 병원에 있다가 교회 사임하시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충격적이라서 찾아가봐야 하는데 주소를 몰라 찾을 길이 없었다. 그 분 딸이 기독교단체 간사로 있었는데 후배가 딸 있는 곳을 안다고 해서 병문안 간다고 만났는데 장인어른을 만났더니 사위로 삼겠다고 해서 결혼하게 되었다.
가족관계
남매인데 모두 결혼했다. 아들은 2000년에 결혼, 쌍둥이 손녀를 낳아서 함께 살고 있고 딸은 얼마전에 결혼했다.
전도가 안 될 때가 가장 힘들어
참 전도하기가 힘들고 교인들을 사회 봉사 차원에서 그냥 도와주고 교인이 될까하고 이민초기에 방도 얻어주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런 분들이 교회 일꾼이 되지 않을 때 실망이 되었다. 또한, 프로그램을 하면 시간제약을 많이 받는다. 뉴욕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목회하는데 마음껏 성도들을 잘 양육하고 그런 충분한 프로그램을 갖지 못했을 때 안타까웠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뉴욕에 와서 목회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나같이 부족한 자를 쓰심이 감사하다. 미국 올 때 단 돈200불과 책 두 가마가 전부였다. 그렇게 빈손으로 왔는데 자식들 다 잘 교육받게 하셨다. 그리고 교회당도 마련하게 하시고 이렇게 오늘까지 순탄하게 목회하고 성도들의 사랑을 많이 받게 하심이 감사하다. 성도들이 참 많이 사랑해 준다. 난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 말 밖에 없다.
한국교회와의 연합선교사역 추진할 것
먼저는 해마다 해 온 일들을 잘해야겠다. 하지만 비전을 가지고 나가는 교회가 성장한다. 항상 선교를 외치면서 너무 개교회 위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열심은 있지만 질서가 없는 것 같다. 공동으로 선교사역을 함으로써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한국교회와 연합해서 하면 좋겠다.
한국에 있을 때 어떤 교회가 농촌교회를 50개 교회를 돕는다고 했다. 한교회 만원씩. 그런데 그런 지원은 해당교회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전혀 안 된다. 50개 교회를 돕는 금액으로 한 교회를 도와서 교회당을 지어주고 그러면 2-3년 안에 자립할 것이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교회는 또 다른 교회에 도움을 주기 마련이다. 선교도 이런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선교정책이 필요하다. 선교나갔다가 적응 못하고 돌아오면 후원자 다 사라지고 붕 뜨게 되는 선교사들이 많다. 선교협력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 문화교류사업도 앞장서서 하고 군선교도 지원하고 싶다.
기독민원창구 마련
교회여러가지 문제들을 자꾸 사회언론사나 방송매체에서 이슈화하면 비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이 미친다. 신문사에서도 고발이 오고 그러면 안 낼 수도 없다. 사실 그렇게 한 번 나가면 파급효과가 전도길을 막는데 그런 것을 교협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교협 차원에서 교회내에서나 교회간 갈등을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금년 한 해는 우리 교회가 뉴욕의 모든 교회를 섬긴다
며칠 전 교회에서 “금년 한해는 우리 교회가 뉴욕의 모든 교회를 섬긴다라고 생각하라. 안목을 넓혀서 생각하라. 공적인 일 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설교했다. 교협일 하면 성도들이 대신 뛰게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성도들이 이제 알아서 교회 일을 챙긴다.
목자의 양의 관계가 잘 정립되는 목회
목자와 양의 관계가 잘 정립되는 목회. 목자가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알고, 목자가 양을 인도하고 지도하는데로 훈련받는 양은 잘 따라오고 순종하는 목회를 추구한다. 성장속도는 좀 느린 것 같지만 분열이 없는 가족 같은 교회를 이끌고 있다.
제자양육은 순모임으로
순모임은 가정목회다. 편하게 가지를 친다는 의미에서 ‘순’이라고 이름붙였다. 순모임으로 구역모임을 한다. 순리더(순장)가 돌아가면서 제자양육공부를 하고 주일 아침에는 사역자들이 함께 양육모임을 한다.
교회는 1983년도에 개척
뉴욕에는 1981년도에 와서 1983년도에 교회를 개척했다. 한국에서는 일반목회 안하고 특수목회했다. 국립의료원과 적십자사에서 원목으로 사역했었다. 일반목회는 미국에서 처음이다.
교목으로 오신 장인어른에 의해 회개
집안이 다 유교가정이었다. 사촌형수님이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다 나를 전도했다. 본격적으로 신앙생활하게 된 것은 중고등시절이다. 경주 영광 중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장인어른이 그 학교 교목으로 오셨다. 처음에는 내가 하나님 어디 계신가 보여달라고 그 분을 괴롭혔다. 그런데 그 분이 끝까지 나를 붙잡고 회개시켰다. 그 분의 영향을 받고 전국적으로 활동했던 KSCM(Korean Student Christian Movement)에도 들어갔다.
그 때 거듭나고 신앙생활 열심히 했다. 사실 장인어른이 날 신학교로 강압적으로 추천한 셈이다. 그렇게 신학대학을 가게 되었다. 나중에 장인 어른이 교목으로 계시다가 상주에 가셔서 목회를 하시면서 교회건축을 하는 중에 연탄가스로 쓰러졌다. 장모님은 일찍 깨어났는데 장인은 1년 동안 병원에 있다가 교회 사임하시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충격적이라서 찾아가봐야 하는데 주소를 몰라 찾을 길이 없었다. 그 분 딸이 기독교단체 간사로 있었는데 후배가 딸 있는 곳을 안다고 해서 병문안 간다고 만났는데 장인어른을 만났더니 사위로 삼겠다고 해서 결혼하게 되었다.
가족관계
남매인데 모두 결혼했다. 아들은 2000년에 결혼, 쌍둥이 손녀를 낳아서 함께 살고 있고 딸은 얼마전에 결혼했다.
전도가 안 될 때가 가장 힘들어
참 전도하기가 힘들고 교인들을 사회 봉사 차원에서 그냥 도와주고 교인이 될까하고 이민초기에 방도 얻어주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런 분들이 교회 일꾼이 되지 않을 때 실망이 되었다. 또한, 프로그램을 하면 시간제약을 많이 받는다. 뉴욕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목회하는데 마음껏 성도들을 잘 양육하고 그런 충분한 프로그램을 갖지 못했을 때 안타까웠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뉴욕에 와서 목회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나같이 부족한 자를 쓰심이 감사하다. 미국 올 때 단 돈200불과 책 두 가마가 전부였다. 그렇게 빈손으로 왔는데 자식들 다 잘 교육받게 하셨다. 그리고 교회당도 마련하게 하시고 이렇게 오늘까지 순탄하게 목회하고 성도들의 사랑을 많이 받게 하심이 감사하다. 성도들이 참 많이 사랑해 준다. 난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 말 밖에 없다.
한국교회와의 연합선교사역 추진할 것
먼저는 해마다 해 온 일들을 잘해야겠다. 하지만 비전을 가지고 나가는 교회가 성장한다. 항상 선교를 외치면서 너무 개교회 위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열심은 있지만 질서가 없는 것 같다. 공동으로 선교사역을 함으로써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한국교회와 연합해서 하면 좋겠다.
한국에 있을 때 어떤 교회가 농촌교회를 50개 교회를 돕는다고 했다. 한교회 만원씩. 그런데 그런 지원은 해당교회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전혀 안 된다. 50개 교회를 돕는 금액으로 한 교회를 도와서 교회당을 지어주고 그러면 2-3년 안에 자립할 것이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교회는 또 다른 교회에 도움을 주기 마련이다. 선교도 이런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선교정책이 필요하다. 선교나갔다가 적응 못하고 돌아오면 후원자 다 사라지고 붕 뜨게 되는 선교사들이 많다. 선교협력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 문화교류사업도 앞장서서 하고 군선교도 지원하고 싶다.
기독민원창구 마련
교회여러가지 문제들을 자꾸 사회언론사나 방송매체에서 이슈화하면 비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이 미친다. 신문사에서도 고발이 오고 그러면 안 낼 수도 없다. 사실 그렇게 한 번 나가면 파급효과가 전도길을 막는데 그런 것을 교협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교협 차원에서 교회내에서나 교회간 갈등을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