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톤에 1988년 가을에 와서 89년에 교협에 인사하고 여러 동역자와 선배제현들과 교유하면서 20년 세월이 꿈같이 흘렀다. 한국에서 10년은 학생신앙운동에 또 10년은 목회로 지냈으니 미국의 20년 사역은 한국에서 사역과 같은 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워싱톤 20년은 청 장년기의 대부분이었고 이제 노년기에 접어 들어 벌써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금석지감이 없지 않다.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속에 워싱톤은 어느덧 제 2고향이 되었고 이 안에서 쌓아 올린 교분이 현재 나의 전부가 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참 좋은 분들과 만나 사귀게 되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특히나 연장자 여러분들의 사랑을 듬뿍받아 산설고 물설은 타향땅에서 마치 내 나라에서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워싱톤은 내게 영적 지도력을 함양하는 좋은 토양이 되었다, 비단 내가 속한 교단의 어른들에게서 만이 아니라 교단을 초월해서 연만하신 여러분들의 지도편달과 따뜻한 격려와 사랑의 기도가 없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다. 그만큼 워싱톤은 그 여타한 지역의 교계와 달리 탄탄한 영적 지도력이 알게 모르게 구축되어 있었다. 각 교단마다 카리스마를 가진 어른들이 계셔 그분들을 배우고 따르면 큰 실수 없이 일을 잘 할 수 있었고 교계는 물론이요 동포사회에서도 칭찬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장형과 같은 대 선배들과 교유하면서 때로는 응석을 때로는 이유없는 반항을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순종하면서 함께 워싱톤 교계를 섬겨 올 수 있었음을 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아온 워싱톤 지도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學行一致

사실 영적 지도력은 배움과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워싱톤지역의 영적 지도력은 이문제에 있어 여타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그 흔한 잡음들이 없었다. 문제는 배운바를 실천에 옮겨야 그 지도력이 건전함을 만 천하에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2. 思行一致

다음으로는 사행일치인데 내가 만든 신조이다, 생각할 思자의 思行이지 似而非 似의 似行이 아니다. 생각이 그 사람의 사상을 만들고 철학을 만들고 신조를 만들지 않는가? 나는 워싱톤에서 20년 동안 신학의 양극화나 철학의 양극화나 심지어 정치적 사변의 양극화를 겪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온유한 생각을 가지고 또 그 생각과 철학들을 행동에 나타내 보인 지도력이 주류였기에 다른 이들이 가만히 들어와 성공할 수 없었으니 이 또한 감사치 않을 수 없다.

3. 品行一致

워싱톤의 영적 지도력은 어른들의 품격에서 나왔다고 생각된다. 다른 지역을 보면 멱살잡이는 기본이며 상스런 말들이 난무하고 툭하면 고소 고발이 일반 사회에 까지 파장을 불러오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그런 일들이 없이 잘 지내 온 것은 이런 어른들의 인품이 행동에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4. 言行一致

내가 이곳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는 말씀하면 그 말씀에 책임지는 지도력이다. 그래서 언행일치가 안되는 사람은 이 지도력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도태됨을 보아 왔다.

5. 信行一致

무엇보다 그 어떤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지도력이 이 워싱톤을 압도하였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 이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좋은 전통을 잘 이어 나가야 한다. 영적 지도력이 부재하면 군웅이 할개치는 춘추전국시대가 될 것이다, 워싱톤 교계는 앞으로도 질서있고 은혜스러운 교계가 되어 질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