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사람들의 지능과 체력에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미묘하고 작은 차이에서 성공과 실패가 갈립니다. 작은일 하나를 처리하는 경우에도 누구든 그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거기서 나타나는 효과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세밀한 부분을 어떻게 처리 했느냐 에서 판가름 납니다.

대만 제일의 갑부인 왕융칭 포모사 회장은 바로 그런 면에서 성공의 기회를 거머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왕융칭은 어려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찍부터 장사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1932년 16세였던 왕융칭은 고향을 떠나 자이라는 곳에 가서 쌀가게를 열었습니다. 작은 도시였던 자이에는 이미30여개의 쌀가게가 있어서 경쟁이 매우 치열했습니다. 밑천이라고는 200위안이 고작이었던 왕융칭은 행인도 별로 없는 외진 골목 한 귀퉁이에 작은 점포를 세내어 쌀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늦게 생겼고 규모도 제일 작아 그런 곳에 쌀가게가 있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도저히 경쟁력이 없는 사업이었습니다.

직접 쌀자루를 둘러메고 집집마다 팔러 다녀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던 왕융칭은 쌀의 품질과 서비스를 높임으로써 살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쌀농사의 수확이나 가공 기술이 매우 낙후되어 모래와 잔돌이 쌀에 섞일 수밖에 없었고, 소비자들은 밥 지을 때마다 돌을 골라내는 불편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융칭은 이 당연해 보이는 일에서 실마리를 찾아냈습니다. 식구를 동원하여 쌀에 섞여있는 돌을 골라내어 돌 없는 쌀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왕융칭의 가게 쌀은 돌이 없다더라. 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왕융칭은 쌀의 품질뿐 아니라 서비스의 질도 개선했습니다. 당시에는 쌀을 산 사람 자신이 직접 쌀을 들고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쌀을 사러오는 손님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젊은이들은 생계 때문에 일터로 나가고 집에 있는 노인들이 쌀을 사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점에 착안하여 손님 집으로 직접 쌀을 배달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배달 서비스는 생각도 못하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왕융칭의 배달 서비스는 단순 배달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배달이라면 고객의 집에 갖다 주는 것으로 또는 원하는 자리에 놓아 주는 것으로 그치지만, 왕융칭은 처음 오는 손님의 집에 쌀을 배달해 줄 때마다 그 집 쌀독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식구는 몇 명인지, 어른이 몇 명이고 아이가 몇 명인지, 그리고 식사량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이 기록을 토대로 손님의 집에 쌀이 언제쯤 떨어질 것인지를 예측하여 그때가 되면, 손님이 가게에 찾아오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배달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융칭은 손님이 쌀을 쌀독에 부어 달라고 할 경우, 쌀독에 쌀이 남아 있으면 그 쌀을 모두 퍼내고 나서 쌀독을 깨끗이 닦고 새 쌀을 먼저 담고 난 후 남아있던 쌀을 위에 부어 넣었습니다. 전에 남아 있던 쌀이 오래되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세심한 배려에 손님들은 감동했고 더욱 손님이 늘어났습니다. 쌀을 배달하면서 대부분의 가정들이 날품팔이로 생계에 어려움이 있음을 알고 필요할 경우 쌀값을 후불하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융칭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비약적인 성공을 하게 되고 몇 배 큰 가게로 확장하고 정미소까지 차리면서 훗날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게 됩니다. 사업이 크게 확장되어 대기업의 총수가 된 뒤에도 그는 사소한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이 그에게 작고 사소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크고 굵직한 일에 집중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거시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지만 세부적인 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일 것입니다. 세부적인 것을 개선하여 2명이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만들면 생산력이 2배로 증대되는 셈이고, 한 사람이 2대의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다면 생산력이 4배로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가져오고, 작은 부주의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부주의로 실수할 수 있지만, 부주의 하는 실수가 그 사람의 자질을 대변함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