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마을들을 순회하면서 손님들을 태워 나르는 허름한 시골 버스 하나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날도 버스 안에는 평소처럼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불꼬불 산길을 힘겹게 올랐습니다. 이렇게 올라갈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려가면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서 갑자기 제대로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산을 굽이굽이 내려갈 때에 버스는 더욱 더 가속도가 붙어서 내리막길을 광폭하게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버스는 가속도가 붙고, 사람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가운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서 버스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핸들을 잡은 버스 운전수만큼은 놀랍게도 오히려 침착한 모습으로 더욱 핸들을 부지런히 움직여 가며 손님들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섰습니다. “여러분, 이제 거의 다 내려왔습니다. 버스가 마을 어귀에 있는 다리만 지나면 ... 곧 언덕에 이르게 되어 그 땐 저절로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버스는 마을 어귀 다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화들짝 놀랄 일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다리 한 복판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놀고 있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운전수는 급하게 크락션을 빵빵 눌러댔습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재빨리 다리 한 쪽으로 비켜섰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만은 유난히 겁을 집어 먹고 꼼짝을 못하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운전수는 재빨리 방향을 결단해야만 할 아찔한 순간에 봉착했습니다.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리의 반대편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버스는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다리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는 그 어린아이가 당연히 버스에 치여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버스는 어느 새 다리 한 복판을 질주 통과한 후, 언덕에 이르러 멈추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다리 한 복판에서 피를 흘리며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운전수는 누구보다도 재빨리 다리 한 복판으로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다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씩 독설들을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운전을 그 따위로 하나? 정비가 되지도 않는 차를 왜 끌고 나왔단 말이야? 난폭 운전수, 살인마 ...”

이런 독설과 폭언들이 난무하고 있을 때,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마을 청년 한 사람이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만들 하십시오. 제발 더 이상 그 운전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다 눈을 돌려 그를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청년은 계속해서 이렇게 외쳤답니다. “지금 그 운전수가 자신의 품에 안고 있는 그 아이는 바로 그 분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명한 성서 신학자 니그렌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자신을 찾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우리 곁으로 찾아와 주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 희생시키는 아픔조차 감당하셨기에, 오늘 우리들이 살 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죄 많은 우리들을 위해 외아들을 보내 주신 그 분께 더욱 감사하고, 그 아들이 이 땅에 오심을 더욱 마음속 깊이 묵상하는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탄의 날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을 경건과 성결로 묵상하시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