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토), 76세를 일기로 하나님께서 정한 삶의 시간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나가신 곽종문 장로님의 장례를 여러분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잘 마쳤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목사로서 많이 고마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 교회 교인들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잘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장례예배를 집례 할 적마다 느끼는 건데 갑자기 닥친 장례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많은 분들이 고인의 삶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며 유가족을 위로하고 부활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증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번 곽 장로님 장례예배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여 평생을 교회와 함께 하신 장로님의 삶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는데 사별의 슬픔을 당한 유가족에게는 커다란 힘과 위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례를 집례한 제게도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로님 장례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그리고 장례를 모두 마친 후, 교회를 섬기며 함께 지난 장로님과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다가 장로님의 삶을 통해 깨달은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곽 장로님을 가까이서 뵌 적이 있으신 분들은 쉽게 공감하시겠지만 장로님은 평소 걸으실 때 몸의 상체를 약간 앞으로 구부리고 걸음을 재촉하여 걸으셨습니다. 앞서 가는 누군가를 쫓아가듯이, 누군가에 의해 이끌림을 받듯이, 마치 양이 앞서가는 목자를 따라가듯이 장로님의 걷는 모습은 그렇게 앞으로 굽으셨습니다. 장로님께서 좋아하시던 성경 말씀이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한 시편 23편이셨다는데 그 말씀을 좋아하시어 걷는 모습이 그렇게 바뀌셨는지, 아니면 그런 모습 때문에 그 말씀을 좋아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로님의 삶은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는 양처럼 그렇게 사신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장례예배시에 아드님되시는 곽태우 전도사님께서 아버님을 추모하는 중에 장로님은 평생을 건축업에 종사하셨는데 평소에 아드님 말로는 장로님은 자신이 “곽 목수”로 불리기를 좋아하셨답니다. 아마도 그렇게 목수로 불리기를 좋아하신 이유 중에는 주님과 같이 직업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그렇게 자신은 목수로 사시면서도 장로님은 아들이 망치를 들고 못질하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여기셨다고 합니다. 그런 목수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배운 것은 “목수는 망치질을 잘하는 것이나, 못질을 잘 하는 것보다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수평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목공 작업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도 균형(수평)을 이루는 일”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장로님의 삶을 생각해보니 장로님께서는 생활과 신앙의 수평을 잘 유지하며 사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장로님께서는 기도하실 때 음성이 평소 때에 비해 한 옥타브를 낮추셨습니다. 아마 장로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한번이라도 들으신 분들은 제가 하는 소리가 무슨 말인지 금새 이해하실 것입니다. 왜 평소와 달리 기도하실 때는 한 옥타브 낮은 소리를 내시는지, 의도적으로 그러시는 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목소리가 바뀌는 건지는 장로님께 물어보지 못해서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기도하시는 음성이 한 옥타브 낮아지는 것은 사실 음성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장로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로님은 전화를 하면서 상대에게 당신을 소개하실 때마다 늘 “저 곽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름 석자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시고 그냥 당신의 성(性)만 알리는 장로님,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에도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으신 장로님은 그렇게 늘 자신을 낮추시며 겸손하게 사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로님을 생각하면 참 부지런하신 분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해 전에 장로님께서 저의 목사관을 수리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매일 작업을 하기 위해 목사관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부들에게 일을 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여기 저기 현장을 챙기며 작업하시는데 항상 인부들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시는 것을 뵌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의 이러한 부지런함은 일터에만 일찍 가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도 항상 일찌감치 오십니다. 주일예배 시간 전에 오시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시작하는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장로님께서는 5시 5분이 되면 교회에 도착하십니다. 이렇게 장로님은 어느 약속에나 약속시간 전에 먼저 도착하셔서 상대방을 기다리곤 하실 만큼 부지런하게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잠시 한국에서 지내시곤 다시 이곳 미국에 와서 사시다가 삶을 마치신 장로님, 그 살아온 연륜만큼 쉽지 않은 삶의 여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으로 삶과 신앙의 균형을 이루며 겸손하게 일생을 살아오신 장로님을 그리워하며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