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출신 길례르모 바르가스(54세)의 왼쪽 귓볼은 2년 전부터 계속 자라고 있다.

커다란 알사탕처럼 탱탱하게 잡혀있어 가끔씩 얼굴 반쪽이 욱신거리며 쑤실 때가 많았다. 또 가끔은 귓속에 헬리콥터 지나가는 소리처럼 커다란 소음이 엄습한다. 혹 암 덩어리가 뿌리를 내리는가 싶어 불안해 한다.

귓볼에 마취약을 주사하고 수술 가위로 작은 흠집을 낸 후 감염된 피지 덩어리를 훑어낸다. 변색된 치약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회색 찌꺼기를 짜낸 다음, 베타딘을 듬뿍 묻힌 솜으로 환부를 깨끗이 닦아낸다. 혹시라도 덧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피며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하는 한인 여의사는 분명 천사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페어팩스에 있는 닥터 리 치과는 다른 외래 환자의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 대신 오갈 데 없는 도시빈민들의 문제투성이 치아를 돌보는데 할애된다.

귀빠지고 난생 처음 치과에 오는 사람도 있다. 치과 후진국인 중남미에서 조악스럽게 가설한 놋쇠 합금 틀니 사이에 꽉 들어찬 박테리아를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지대 뼈를 녹여버릴 정도로 감염된 치석을 제거하고, 상한 치아와 잇몸을 치료하고 나면 어깻죽지는 끊어지는 듯 하고 구슬땀으로 가운을 혼건히 적셔야 한다.

금년 4월부터 지금까지 치료받은 도시빈민이 벌써 70여명이 넘는다. 뽑아낸 썩은 치아만 한 봉지 가득할 정도다. 앓던 이를 정리한 환자들이 환한 미소를 찾고 기뻐하는 모습에 위안을 얻는다.

급식선교 하면서 제발 치실 사용하는 법도 가르쳐 소중한 치아를 통째로 들어내지 않게 해달라고 예방을 강조하는 그에게서 따뜻한 인간미와 사랑을 발견한다.

깨진 세면기에 오른손 바닥을 할퀸 로미 모랄레스(44세)의 손은 금새 피범벅이 됐다. 장갑을 끼지 않은 채 깨진 사기 조각을 쓰레기통에 넣다가 칼처럼 벼려진 단면에 손바닥이 깊게 베였다.

비닐 끈으로 손목을 묶어 지혈시키고 작업장에서 비상등을 켜고 성형외과 클리닉으로 달려왔다. 손바닥에 흐르는 작은 동맥, 정맥 하나가 끊어져 있었고 손바닥 근육은 너덜너덜하다.

침착하게 환부에 마취 주사를 놓고, 베타딘으로 소독한 후, 저절로 삭아 없어지는 실로 피부 아래를 20 바늘 꿰맸다. 부풀어오른 겉 피부는 검정실로 탄탄하게 역시 20바늘 꿰맸다. 로미에게 열흘간 매일 먹어야 될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한다.

한동안 통증으로 막노동을 못하게 될 이방인 노동자가 안쓰러워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한인 여의사의 모성애 깃든 정성이 가을날 맑은 하늘처럼 높고 아름답다.

최근의 미국 금융위기는 거리 일일 노동자들의 생사에 직격탄을 날렸다.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스산한 가을바람만 줄창 맞고 돌아오기 일쑤다.

젊고 건장한 온두라스 청년 엘리야 메히아(26세)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발목과 무릎을 상했다. 간신히 압박붕대로 묶고, 깁스를 한 채 절뚝거리며 한의사를 찾는다.

신비한 동양의학과 사상의학으로 전문성을 갖춘 한의사는 고통스런 환부에 직접 침을 놓지 않고 왼발의 통증을 오른쪽 상체로 돌린다. 중침으로 침착하게 몇 군데 화타처럼 침을 찌른다.

반신반의하는 엘리야, 그러나 감쪽같이 사라진 통증에 기절할 듯이 놀란다. 앉았다 일어났다, 짚어보며 확인하는 그의 눈망울에 감사와 탄복이 담긴다. 후줄근한 압박붕대와 깁스가 둘둘 말아져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금융위기로 모든 이의 마음이 뒤숭숭한 요즘, 세상을 사랑으로 전염시켜 보려고 금쪽 같은 시간을 할애하는 굿닥터들의 따뜻한 인술 때문에 그나마 훈훈하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자비의 손길, 자신의 아픔처럼 끌어 안고 싸매는 그들이 너무 아름답다.

(도시빈민선교 & 재활용품 & 중고차량 기증: 703-622-2559 / 256-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