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때문에 딸에게 버림받은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노련한 노장 트레이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매기(힐러리 스웽크)는 가족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인생을 살아온 30대 여인으로 '권투만이 자신의 소망'이라며 프랭키에게 '자신을 권투선수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 프랭키는 '여자'라는 이유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매기의 트레이너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만 매기의 '권투에 대한 집착'에 그만 두손을 들고 만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한스런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은 '권투' 때문에 점점 서로에게 아버지같은 딸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경기에 임하는 매기에게 프랭키는 ‘모쿠슈라’라는 새이름이 새겨진 망토를 입혀준다. '나의 소중한 혈육'이라는 뜻이다. 프랭키에게 매기는 친딸과 같은, 아니 어쩌면 친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비록 피를 나눈 아버지와 딸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진정한 ‘모쿠슈라’가 된 것이다.

75살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2005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휩쓴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교회(성당)는 하나의 소품처럼 등장한다. 프랭키는 매주 교회에 출석하며 예배 후 줄곧 신부를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 그 '괴롭힘'이란 다름아닌 매주의 설교에서 궁금한 점들을 묻는 것.

프랭키는 항상 진리에 대해, 사랑에 대해 목이 마르다. 그래서 신부의 설교에 나온 '성삼위일체'도 그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질문거리가 되는 것이다.

프랭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신부에게 "성삼위일체는 '1개의 봉지안에 들어가 있는 3개의 사탕'과 같은 것?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신부님, 좀 설명해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신부는 "어떻게 성삼위일체를 사탕에 비유할 수 있죠?"라며 핀잔을 줄 뿐이다.

성삼위일체는 감히 사탕에 비유할 수 없는 거룩한 존재라는 의미다. 신부는 매주 설교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오는 프랭키를 귀찮아한다. 심지어 "당신이 왜 매주 이곳에 나오는지 모르겠소"라며 모든 질문을 거부한다.

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프랭키의 아픔에 대해서도 "매주 딸에게 편지를 보내시고 있나요?"라고 말할 뿐이다. 수년동안 딸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그저 되돌아오기만 하는 편지를 아픔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놓아야만 하는 프랭키의 삶을 신부는 아는지 모르는지.

심지어 챔피언 타이틀 전에서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매기가 자신을 '안락사 시켜달라'고 애원, 극심한 고민에 휩싸인 프랭키가 신부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할 때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라고 말할 뿐이다.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고 하더라도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매기를 안락사 시킨다면) 당신은 괴로움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신부에게 프랭키는 얼굴을 감싸며 "나는 이미 죽을만큼 괴롭답니다"라는 혼잣말을 한다.

프랭키는 결국 사랑하는 매기를 안락사 시키고, 은퇴 복서이자 유일한 친구인 스크랩(모건 프리먼)이 기다리고 있는 정든 체육관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진정한 사랑과 안식을 찾았던 프랭키에게 교회는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오늘날 밤하늘을 수놓은 별보다 많은 십자가, 수많은 '거룩한' 성도들이 넘쳐나는 교회들이 진정한 '모쿠슈라'를 찾아 방황하는 이 땅의 많은 이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매주일 공허하게 울리는 설교가, 빽빽히 좌석을 채운 성도들이 아픔과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는 '죽을만큼 괴로운' 사람들에게 과연 무슨 해답을 안겨주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더욱 빛을 발한다.

모든 상품이 1센트에 판매되는 1센트 가게에서 백만불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건을 발견한다는 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허름한 곳에서 보물 같은 진귀한 것을 얻는다'거나 '뜻밖의 순간에 행운처럼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진리에 목마른 이 시대 현대인에게 과연 교회는 무엇을 주고 있는가, 무엇이 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