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의 무일푼 유학생이 미국에 온지 13년 만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습니다. 미국내에서만 23개의 액세서리가게를 운영하는 액세서리 왕이 된 것입니다. 주인공은 앤드류 최(최외영)씨 입니다. 그의 액세서리 가게(So Good Jewelry)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등 주요 대도시, 곳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큽니다. 뉴욕 브로드 웨이 점은 17,000스퀘어피트를 넘는 대형 매장으로 최씨도 "세계 최대 수준의 규모"라고 말합니다. 이들 가게의 매출액도 연간 7000만 불을 넘는다고 합니다. 이 가게들은 외국 관광객의 단골 코스로 자리잡고 있으며, 뉴욕 관광 안내에 소개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뉴욕시티투어 코스에 들어가 있습니다.

최씨의 이런 성공 뒤에는 남이 모르는 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1990년 부산서 동아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5년 일본 쓰쿠바 대학에서 운동 생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유학을 갔으나 형편이 어려워져 학업을 접었습니다. 1996년 3월 뉴욕으로 옮겨가 브로드웨이 길거리에서 액세서리 노점상을 했습니다. 처음 밑천은 콜로라도에서 접시 닦이등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돈 500달러가 전부였습니다. 돈을 아끼느라 차이나타운에서 2달러짜리 도시락 하나를 사서 점심, 저녁을 해결하곤 했습니다. 매일 오전 7시에 나와 밤늦게 까지 일했습니다. 지나던 행인에게 "동양의 신비한 안마"라며 발 마사지를 해주고 발찌를 팔고,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에게 "정말 잘 생겼다".고 칭찬하며 어깨를 주물러 주며 목걸이를 팔았습니다.

뉴욕내 고급 백화점, 보석점을 돌며 인기 있는 디자인을 살펴본 뒤 물건을 떼오고 했던 그의 눈썰미와 성실성이 차츰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나비 머리핀 크리스털 브로치가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단골이 생기고 입소문이 나자 하루 5000달러 어치를 팔기도 했습니다. 2002년 3월 뉴욕에 리틀 이탈리아 지역에서 150스퀘어피트 짜리의 작은 가게를 낸뒤 2003년 3월 뉴욕 소호로 옮겨 2700 스퀘어피트짜리 가게를 차렸습니다. 20배 가까운 뻥뛰기 성장이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맥시코, 필리핀등 세계 곳곳에서 물건을 사들여 와 판매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고향 부산으로 진출하는 최씨는 부산을 아시아의 액세서리 메카로 만드는 꿈을 시작으로 액세서리의 글로벌 드림을 펼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9월1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옛 은아극장 자리에 엑세서리 전문점 'So Good Jewelry' 을 오픈 하면서 이를 토대로 서울, 도쿄, 상하이, 베이징, 오사카등 세계 곳곳에 So Good Jewelry 문화를 심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성공을 위해 유리한 조건이 있고, 불리한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 유리한 조건이고, 무엇이 불리한 조건입니까? 엑세서리 비즈니스가 새로 개발된 비즈니스로서 초창기였기 때문에 쉽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액세서리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비즈니스도 드물 것입니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비즈니스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 만큼 경쟁의 치열함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 뛰어든 최씨를 평가할 때 남이 상상할 수 없는 천재적인 사람이거나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무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결과는 그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도전이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구태여 그의 천재성을 말한다면 두뇌도 재능도 아닌 땀과 눈물이었습니다.

그의 액세서리는 땀과 눈물이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의 성공은 땀과 눈물의 액세서리로 장식된 것입니다. 유사 이래로 변함없이 보석처럼 빛나는 성공의 비밀이 있습니다. 땀과 눈물입니다. 성공은 땀과 눈물을 주고 사는 보석이며, 땀과 눈물로 만들어지는 진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