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리카와의 만남
집시선교를 하면서 가슴 깊이 와 닿는 것은 집시민족을 위해서 복음과 교육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고 또한 집시지도자를 육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특별히 집시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30 - 40여 명의 믿음이 신실하고 능력이 있는 집시 청소년들을 지역교회의 목회자나 지역의 신실한 분들의 추천에 의해 선발하여 학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장학금 후원을 해 오고 있다.
2005년 3월 경, 헝가리 개혁교회 샤로스파탁 신학교 부설 짐나지움(고등학교 과정)에 교목으로 있는 사보 마리아(Szabo Maria) 목사님께서 에리카라고 불리는 한 집시 학생 후원을 요청하였다. 요청을 받은 뒤 마리아 목사님과 에리카와 함께 첫 만남을 갖게 되었는데 에리카는 훤칠한 키에 영어를 잘하였고 독일어는 헝가리에 있는 독일마을에 있는 유치원을 다녔던 이유로 어릴 적부터 배웠고 그 이후 짐나지움에서 계속 독일어를 공부해서 상당한 수준의 독일어 실력을 갖춘 집시 학생으로 보기 드문 재원이었다. 짐나지움을 졸업하면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하고난 후에 우크라이나에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다부진 꿈도 가지고 있었다.
에리카는 5월에 있을 졸업을 앞두고 졸업식에 입을 옷, 졸업 앨범, 선생님들께 드릴 선물비 등 졸업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정작 졸업을 위해서 누구에게 마땅히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어 교목인 마리아 목사님께 부탁을 하였고 평소 교제를 나눠왔던 우리 선교회에 에리카를 위해서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에리카를 만나게 되었고 졸업식에 필요한 비용과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과 함께 예쁜 손목시계를 선물로 준비하고 졸업식에 참석해서 사진도 찍어주고 그의 가족들에게도 축하의 인사도 건네고 그렇게 해서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에리카는 그의 바람대로 샤로스파탁 개혁교회 신학교에 입학을 하여 신학의 과정에 들어서게 되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에리카의 학업에 어려움이 없도록 돕기도 다짐하였다.
에리카의 어머니보다 우리가 15세 정도 많다 보니 우리는 에리카를 단지 집시 장학금을 후원해 주는 학생이기에 앞서 자녀와 같은 마음으로 돌보게 되었다. 틈틈이 차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에리카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깊은 교제를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집시 가족을 얻은 큰 기쁨이었다.
에리카의 가족은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와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17세 된 남동생,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좌도팔바(Zadorfalva)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천주교회에 다니는 외할머니가 에리카를 유치원 때부터 정성을 들여서 키우셨고, 자신의 어머니와 두 동생은 마땅히 살 공간이 없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지내다가 외할머니의 집에서 얹혀사는 그런 형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외할머니의 비좁은 작은 집에 가족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여 학기 중에는 신학교 기숙사에 그리고 방학 중에는 우리 집에서 함께 거처하기도 하였다.
집시선교에서 멀어지는 에리카
에리카는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난 후에 집시마을 예배 사역, 집시 컨퍼런스, 집시 가정을 방문할 때에 동행해서 집시선교 사역을 도왔다. 또한 단기 선교팀이라도 방문을 하게 되면 단기 선교팀들을 위해서 많은 수고도 아끼지 않고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밝은 모습으로 교제하며 참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에리카는 신학교에 입학해서 학업도 열심히 했고 집시 선교사역도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에리카의 주위 친구들로부터 에리카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의 남자 친구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가 어느 날 대화 중에 남자 친구와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남자 친구에게 신앙이 있느냐”고 첫 질문을 했더니 머뭇거리는 듯하였다. 그러한 에리카에게 “너는 신학의 과정을 밟고 있기에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진 형제를 만나야 한다”는 조언을 해 줄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인가는 우리 집을 뜬금없이 방문하여 남자 친구를 소개 하는 것이었다.
첫 눈에 에리카의 남자 친구는 헝가리 백인으로 키가 크고 참으로 훤한 얼굴을 가진 잘 생긴 형제로 샤로스파탁에 있는 교육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 형제를 만나고 난 후에 집시인 에리카가 첫눈에 반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에리카는 종종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왠지 에리카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집시선교 사역에 동참했던 에리카에게 가끔 여러 핑계가 있게 되었고 언제부턴가는 집시선교 사역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개혁신학교 첫 학년을 마치고 나더니 에리카는 어느 날 심각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만나서는 “더 이상 신학이 어려워 교육대학으로 편입을 하겠다”는 통고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이유일까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에리카, 네가 비록 신학의 과정을 그만두어 우리에게 많은 실망은 안겨 주었지만 너의 인생만이라도 성공적으로 살게만 된다면...”하는 그런 마음으로 교대에 편입을 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 학업을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후원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편입을 하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난 후에 에리카는 우리를 찾지 않았으며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장학금을 후원할 때가 되어 에리카를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다. 주위에 친구들에게 에리카가 학업을 계속 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오라는 이야기도 하였지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인지 우리를 향한 발길은 끊어졌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에리카를 향한 기억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을 무렵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에리카의 가정에 아버지가 출소하여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모두 죽이는 참담한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출소한 아버지가 끔찍한 일을...
에리카가 신학교에 재학 중일 때 종종 가정 이야기를 하다가 정작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단지 교도소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혹시 “어느 교도소에 수감 중이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답을 하는 에리카의 모습 속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비록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너에게는 아버지이고 그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 는 말과 함께 언제 시간이 나면 아버지가 어디 교도소에 계시는지 알아봐서 면회를 하자고 제의를 한 적이 있었다.
교도소에 있던 에리카 아버지가 출소가 되어 자신의 아내와 자녀가 있는 마을에 돌아왔지만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고,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던 남편의 요청을 거절한 아내와 두 자녀를 순간적으로 흉기로 내리쳐 살인을 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에리카 아버지는 가족을 죽인 이후 다시금 에리카까지 죽이기 위해 그가 있는 곳을 찾아 가던 중에 경찰에 먼저 잡혀 다시금 교도소로 수감되었고 에리카는 죽음을 면하게 되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엄마와 두 형제를 한꺼번에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위로하심을 기도하며
일 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집시선교의 현장에서 에리카와 함께 나누고 해왔던 모든 일들이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 에리카를 향한 우리의 바람은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그리고 가족을 잃고 슬픔 가운데 있는 에리카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Rev. Choi, Young & Anna (최 영 & 양 안나)
주소: 3950, Sarospatak, Cominius Ut 24, Hungary
전화: 36-47-311-193, 36-70-544-7141(핸드폰)
이메일: usmcy@hanmail.net/ usmcy@yahoo.co.kr
집시선교를 하면서 가슴 깊이 와 닿는 것은 집시민족을 위해서 복음과 교육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고 또한 집시지도자를 육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특별히 집시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30 - 40여 명의 믿음이 신실하고 능력이 있는 집시 청소년들을 지역교회의 목회자나 지역의 신실한 분들의 추천에 의해 선발하여 학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장학금 후원을 해 오고 있다.
2005년 3월 경, 헝가리 개혁교회 샤로스파탁 신학교 부설 짐나지움(고등학교 과정)에 교목으로 있는 사보 마리아(Szabo Maria) 목사님께서 에리카라고 불리는 한 집시 학생 후원을 요청하였다. 요청을 받은 뒤 마리아 목사님과 에리카와 함께 첫 만남을 갖게 되었는데 에리카는 훤칠한 키에 영어를 잘하였고 독일어는 헝가리에 있는 독일마을에 있는 유치원을 다녔던 이유로 어릴 적부터 배웠고 그 이후 짐나지움에서 계속 독일어를 공부해서 상당한 수준의 독일어 실력을 갖춘 집시 학생으로 보기 드문 재원이었다. 짐나지움을 졸업하면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하고난 후에 우크라이나에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다부진 꿈도 가지고 있었다.
에리카는 5월에 있을 졸업을 앞두고 졸업식에 입을 옷, 졸업 앨범, 선생님들께 드릴 선물비 등 졸업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정작 졸업을 위해서 누구에게 마땅히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어 교목인 마리아 목사님께 부탁을 하였고 평소 교제를 나눠왔던 우리 선교회에 에리카를 위해서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에리카를 만나게 되었고 졸업식에 필요한 비용과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과 함께 예쁜 손목시계를 선물로 준비하고 졸업식에 참석해서 사진도 찍어주고 그의 가족들에게도 축하의 인사도 건네고 그렇게 해서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에리카는 그의 바람대로 샤로스파탁 개혁교회 신학교에 입학을 하여 신학의 과정에 들어서게 되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에리카의 학업에 어려움이 없도록 돕기도 다짐하였다.
에리카의 어머니보다 우리가 15세 정도 많다 보니 우리는 에리카를 단지 집시 장학금을 후원해 주는 학생이기에 앞서 자녀와 같은 마음으로 돌보게 되었다. 틈틈이 차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에리카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깊은 교제를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집시 가족을 얻은 큰 기쁨이었다.
에리카의 가족은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와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17세 된 남동생,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좌도팔바(Zadorfalva)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천주교회에 다니는 외할머니가 에리카를 유치원 때부터 정성을 들여서 키우셨고, 자신의 어머니와 두 동생은 마땅히 살 공간이 없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지내다가 외할머니의 집에서 얹혀사는 그런 형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외할머니의 비좁은 작은 집에 가족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여 학기 중에는 신학교 기숙사에 그리고 방학 중에는 우리 집에서 함께 거처하기도 하였다.
집시선교에서 멀어지는 에리카
에리카는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난 후에 집시마을 예배 사역, 집시 컨퍼런스, 집시 가정을 방문할 때에 동행해서 집시선교 사역을 도왔다. 또한 단기 선교팀이라도 방문을 하게 되면 단기 선교팀들을 위해서 많은 수고도 아끼지 않고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밝은 모습으로 교제하며 참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에리카는 신학교에 입학해서 학업도 열심히 했고 집시 선교사역도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에리카의 주위 친구들로부터 에리카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의 남자 친구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가 어느 날 대화 중에 남자 친구와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남자 친구에게 신앙이 있느냐”고 첫 질문을 했더니 머뭇거리는 듯하였다. 그러한 에리카에게 “너는 신학의 과정을 밟고 있기에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진 형제를 만나야 한다”는 조언을 해 줄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인가는 우리 집을 뜬금없이 방문하여 남자 친구를 소개 하는 것이었다.
첫 눈에 에리카의 남자 친구는 헝가리 백인으로 키가 크고 참으로 훤한 얼굴을 가진 잘 생긴 형제로 샤로스파탁에 있는 교육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 형제를 만나고 난 후에 집시인 에리카가 첫눈에 반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에리카는 종종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왠지 에리카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집시선교 사역에 동참했던 에리카에게 가끔 여러 핑계가 있게 되었고 언제부턴가는 집시선교 사역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개혁신학교 첫 학년을 마치고 나더니 에리카는 어느 날 심각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만나서는 “더 이상 신학이 어려워 교육대학으로 편입을 하겠다”는 통고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이유일까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에리카, 네가 비록 신학의 과정을 그만두어 우리에게 많은 실망은 안겨 주었지만 너의 인생만이라도 성공적으로 살게만 된다면...”하는 그런 마음으로 교대에 편입을 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 학업을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후원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편입을 하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난 후에 에리카는 우리를 찾지 않았으며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장학금을 후원할 때가 되어 에리카를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다. 주위에 친구들에게 에리카가 학업을 계속 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오라는 이야기도 하였지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인지 우리를 향한 발길은 끊어졌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에리카를 향한 기억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을 무렵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에리카의 가정에 아버지가 출소하여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모두 죽이는 참담한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출소한 아버지가 끔찍한 일을...
에리카가 신학교에 재학 중일 때 종종 가정 이야기를 하다가 정작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단지 교도소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혹시 “어느 교도소에 수감 중이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답을 하는 에리카의 모습 속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비록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너에게는 아버지이고 그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 는 말과 함께 언제 시간이 나면 아버지가 어디 교도소에 계시는지 알아봐서 면회를 하자고 제의를 한 적이 있었다.
교도소에 있던 에리카 아버지가 출소가 되어 자신의 아내와 자녀가 있는 마을에 돌아왔지만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고,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던 남편의 요청을 거절한 아내와 두 자녀를 순간적으로 흉기로 내리쳐 살인을 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에리카 아버지는 가족을 죽인 이후 다시금 에리카까지 죽이기 위해 그가 있는 곳을 찾아 가던 중에 경찰에 먼저 잡혀 다시금 교도소로 수감되었고 에리카는 죽음을 면하게 되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엄마와 두 형제를 한꺼번에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위로하심을 기도하며
일 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집시선교의 현장에서 에리카와 함께 나누고 해왔던 모든 일들이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 에리카를 향한 우리의 바람은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그리고 가족을 잃고 슬픔 가운데 있는 에리카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Rev. Choi, Young & Anna (최 영 & 양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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