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한국 감을 좋아한다. 10년 이상의 유학 생활에서 제일 먹고 싶었던 과일은 주황색이면서 주홍색인 한국 감이었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들마다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전경 속에 독특하게 등장한 한국 감의 감칠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볼 수 없고 한국에서만 나는 것이기에 더욱 그리웠다. 사과, 외, 수박, 배, 그리고 오이 등을 비롯한 여러 야채들과 실과들은 외국에서 접할 수 있었지만 감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가끔 미국 잡화점(grocery)에 전시되곤 하지만 손쉽게 사먹을 있지 못할 정도로 값은 비싸다. 물론 한국보다는 값싸긴 해도. 나는 왠지 한국산 한국 감이 좋다.
가을 단풍이 되면 겨울을 재촉하는 낙엽의 떨어짐 뒤에도 나무에 대롱대롱 남아있는 주황색의 한국 감들은 나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가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결실의 계절임을 알리기 때문이다.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한 해의 절정은 그야말로 한국 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한국 감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학기 중 한국에 거하는 동안 나는 가을이면 한 상자씩 집에 두고 하나씩 꺼집어 내어 맛을 본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전도사님들 가운데 한 분이 친히 가꾸고 서리가 내린 직 후에 손수 딴 감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 서리가 내린 직후에 딴 ‘대봉’이기 때문에 그윽한 맛도 있고 그 수고에 감사하면서 지금도 먹고 있다. 그윽한 대봉의 맛을 맛보기 전에는 창원에서 수고하시는 동역자 목사님께서 진영의 단감을 선물하셔서 올 한 해에도 정말 원 없이 먹고 있다. 감칠 맛 나고 정성이 듬뿍 담겨있는 한국 감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내가 한국 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하나이다. 한국 감을 통해 나는 ‘결실’이라는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불렀던 동요인,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데요.” 수고하고 흘린 땀방울의 노고가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결실의 한국 감을 나는 좋아한다.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도록 수고했음을 은밀히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셨다는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을 주님께서 아셔서 수고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해주실 때를 가리켜 결실의 때라고 여겨진다. 나는 보상의, 즉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는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을 믿는다. 나는 인생을 통해 그것을 항상 경험한다.
요즈음 젊은 분들은 미국행을 선호한다. 자녀 교육을 걱정하고 그들의 앞날을 염려하기 때문에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요령을 피우고 눈치 빠른 자들이 흥행하는 식으로 보다 나은 조건을 자녀들에게 제공하면 그들이 보다 훌륭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주요한 하나가 있다. 바로 미국 교육은 외적인 요소, 즉 한국보다는 객관적으로 낫다는 단순한 요소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준법정신’을 키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나라의 법들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준법 생활을 철저히 한다. 그래서 학력 위주가 아니라 노동의 결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사무직이 높은 급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노동하는 자들이 높은 사례를 받는다. 노력의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작은 일이라도 법의 보호를 받는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에 호소하면 법에서 작은 한 사람이라도 보호해준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심사를 다 아신다. 요셉의 심사를 아시듯이 우리들의 심사도 다 아신다. 성실히 행하고 노력한다면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신다. 그래서 나는 ‘갚으시는 하나님’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공수로 보내시지 않는 주님이심을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누구나 신분의 차이 없이 그를 의지하고 말씀에 따라 행하면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사람을 통해, 적절하게 갚아주심을 믿는다. 이러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주님은 말씀대로 행하심을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나는 한국 감이 좋다. 결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행하신 수많은 복들을 나는 헤아려 본다. 정말 귀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결실을 의미하고, 그윽한 단 맛을 가진 한국 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님의 은혜가 그와 같기 때문이다.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홈페이지www.eunra.com)
외국에서 볼 수 없고 한국에서만 나는 것이기에 더욱 그리웠다. 사과, 외, 수박, 배, 그리고 오이 등을 비롯한 여러 야채들과 실과들은 외국에서 접할 수 있었지만 감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가끔 미국 잡화점(grocery)에 전시되곤 하지만 손쉽게 사먹을 있지 못할 정도로 값은 비싸다. 물론 한국보다는 값싸긴 해도. 나는 왠지 한국산 한국 감이 좋다.
가을 단풍이 되면 겨울을 재촉하는 낙엽의 떨어짐 뒤에도 나무에 대롱대롱 남아있는 주황색의 한국 감들은 나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가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결실의 계절임을 알리기 때문이다.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한 해의 절정은 그야말로 한국 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한국 감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학기 중 한국에 거하는 동안 나는 가을이면 한 상자씩 집에 두고 하나씩 꺼집어 내어 맛을 본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전도사님들 가운데 한 분이 친히 가꾸고 서리가 내린 직 후에 손수 딴 감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 서리가 내린 직후에 딴 ‘대봉’이기 때문에 그윽한 맛도 있고 그 수고에 감사하면서 지금도 먹고 있다. 그윽한 대봉의 맛을 맛보기 전에는 창원에서 수고하시는 동역자 목사님께서 진영의 단감을 선물하셔서 올 한 해에도 정말 원 없이 먹고 있다. 감칠 맛 나고 정성이 듬뿍 담겨있는 한국 감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내가 한국 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하나이다. 한국 감을 통해 나는 ‘결실’이라는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불렀던 동요인,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데요.” 수고하고 흘린 땀방울의 노고가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결실의 한국 감을 나는 좋아한다.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도록 수고했음을 은밀히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셨다는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을 주님께서 아셔서 수고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해주실 때를 가리켜 결실의 때라고 여겨진다. 나는 보상의, 즉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는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을 믿는다. 나는 인생을 통해 그것을 항상 경험한다.
요즈음 젊은 분들은 미국행을 선호한다. 자녀 교육을 걱정하고 그들의 앞날을 염려하기 때문에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요령을 피우고 눈치 빠른 자들이 흥행하는 식으로 보다 나은 조건을 자녀들에게 제공하면 그들이 보다 훌륭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주요한 하나가 있다. 바로 미국 교육은 외적인 요소, 즉 한국보다는 객관적으로 낫다는 단순한 요소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준법정신’을 키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나라의 법들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준법 생활을 철저히 한다. 그래서 학력 위주가 아니라 노동의 결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사무직이 높은 급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노동하는 자들이 높은 사례를 받는다. 노력의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작은 일이라도 법의 보호를 받는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에 호소하면 법에서 작은 한 사람이라도 보호해준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심사를 다 아신다. 요셉의 심사를 아시듯이 우리들의 심사도 다 아신다. 성실히 행하고 노력한다면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신다. 그래서 나는 ‘갚으시는 하나님’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공수로 보내시지 않는 주님이심을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누구나 신분의 차이 없이 그를 의지하고 말씀에 따라 행하면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사람을 통해, 적절하게 갚아주심을 믿는다. 이러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주님은 말씀대로 행하심을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나는 한국 감이 좋다. 결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행하신 수많은 복들을 나는 헤아려 본다. 정말 귀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결실을 의미하고, 그윽한 단 맛을 가진 한국 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님의 은혜가 그와 같기 때문이다.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홈페이지www.eun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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