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되면 선물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산타클러스가 선물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고 싶어한다. 최소한 성탄카드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성탄절의 선물은 동방박사들에게서 유래한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세 가지 예물 즉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 동방박사의 세 가지 예물을 외국인노동자와 연결하여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유익한 의미를 찾아보는 상상을 해보기로 하자.
먼저 아기 예수와 외국인노동자와의 연관성이다.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헤롯 왕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죽음의 칼을 피해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3년 동안 이집트로 피신을 하였다. 본래 요셉은 목수 일을 하던 사림이었다. 그리 부유한 가정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요셉이 이집트로 피신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3년 동안 놀았다고는 할 수 없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언가 일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기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이집트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그의 가족은 난민이자 외국인노동자 가족이 된 것이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드린 세 가지 예물 속에 숨어있는 외국인노동자를 향한 메시지는 어떤 것이 가능 할까 ? 첫째로 드린 예물은 황금으로서 왕을 의미한다. 외국인노동자와 왕으로 오신 예수는 어떤 유추가 가능할까 ? 왕은 백성을 돌보는 사람이다. 특히 하나님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민중의 자리를 이해하려면 스스로가 낮은 자리로 내려 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고, 짐승의 밥그릇인 먹이통에 태의 자리를 두고 태어나신 것이다. 스스로가 모든 인간들 중에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가장 작은 자가 된 것이다. 태아를 보호 할 울타리도 없는 마구간, 사람들도 찾지 않고 오직 동물들만 눈뜨고 지켜보는 동물의 집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이러한 아기 예수의 나심을 외국인노동자들이 타국에서 노예나 짐승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현실과 연결해 보는 것은 어떨지. 타국에서 가난하고 법적 보호의 취약 자들로 살아가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예수는 왕으로 오셔서 억압과 착취자가 아닌 법과 권력으로 지켜줄 왕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될까 ?
둘째로 드린 예물은 유향으로서 제사장을 의미한다. 유향은 향기 나는 나무껍질에서 유출해낸 향료이다. 이는 주로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향료라 한다. 우리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한다. 제사장은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하고, 하나님과의 중간 매개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외국인노동자 역시 나그네 혹은 철새(migrant)라 부른다. 뿌리를 떠난 사람들(uprooted people)이다. 갈 곳도 잠자리도 없는 사람이다. 아기 예수가 세상에 올 때 갈 곳이 없어 여관을 전전 긍긍하다가 결국 마구간에 태의 자리를 정하고 그곳에서 나신 것이다. 아기 예수는 나면서부터 갈 곳 없는 나그네로 오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도망자로 나그네로 몸을 피해야 했다. 그래서 아기 예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친구이자 이들의 구세주이기도 하다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
셋째로 드린 예물은 몰약으로서 죽음과 삶을 의미한다. 몰약은 나뭇가지와 잎 사이의 진액으로 굳어진 액체로서 방부제 역할을 한다. 특히 사람이 죽고 나면 시신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약품이다. 몰약은 주로 예수의 죽음과 삶을 의미한다.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고향을 도망 나와 이집트로 도망을 가야했다. 아기 예수를 잡아 죽이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헤롯군대를 피해 도망 간 것이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를 찾지 못하자 3살 이하의 모든 어린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한다. 이 당시에 많은 어린아기들의 칼끝에 희생을 당하였다. 늘 도망 다니고 숨어 지내야 하는 지금의 외국인노동자들의 상황과 조금도 바를 바 없다. 단속을 피하여 9명이 목숨을 잃어 버리는 오늘의 상황이 바로 예기 예수가 죽음을 피하여 도주한 상황이다. 아기 예수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갔듯이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이 땅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국경을 넘는 이주 노동은 단순한 돈벌이의 상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죽음의 사선을 넘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아기 예수가 그랬듯이 지금 외국인노동자는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오늘을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따스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아기 예수께 동방박사가 드린 세 가지 예물 속에 담긴 외국인노동자와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여전히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된 자들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성서가 가르쳐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교훈을 되새기며 기독교인들은 이들 나그네 된 자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이름이 있어도 이름대신 “야 임마”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은 “우리도 인간이다”라며 한국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성탄 선물은 ‘차별없는 따스한 마음’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 하지 말라. 너희도 애급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 이니라.(출애굽기22:21)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박하거나 학대하지 말려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예레미야22:3)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네게 두지 말며 (레위기19:13)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곤 내게 한 것이라 (마태복음 25:40)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5:16)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박천응 목사/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 소장
먼저 아기 예수와 외국인노동자와의 연관성이다.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헤롯 왕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죽음의 칼을 피해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3년 동안 이집트로 피신을 하였다. 본래 요셉은 목수 일을 하던 사림이었다. 그리 부유한 가정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요셉이 이집트로 피신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3년 동안 놀았다고는 할 수 없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언가 일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기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이집트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그의 가족은 난민이자 외국인노동자 가족이 된 것이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드린 세 가지 예물 속에 숨어있는 외국인노동자를 향한 메시지는 어떤 것이 가능 할까 ? 첫째로 드린 예물은 황금으로서 왕을 의미한다. 외국인노동자와 왕으로 오신 예수는 어떤 유추가 가능할까 ? 왕은 백성을 돌보는 사람이다. 특히 하나님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민중의 자리를 이해하려면 스스로가 낮은 자리로 내려 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고, 짐승의 밥그릇인 먹이통에 태의 자리를 두고 태어나신 것이다. 스스로가 모든 인간들 중에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가장 작은 자가 된 것이다. 태아를 보호 할 울타리도 없는 마구간, 사람들도 찾지 않고 오직 동물들만 눈뜨고 지켜보는 동물의 집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이러한 아기 예수의 나심을 외국인노동자들이 타국에서 노예나 짐승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현실과 연결해 보는 것은 어떨지. 타국에서 가난하고 법적 보호의 취약 자들로 살아가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예수는 왕으로 오셔서 억압과 착취자가 아닌 법과 권력으로 지켜줄 왕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될까 ?
둘째로 드린 예물은 유향으로서 제사장을 의미한다. 유향은 향기 나는 나무껍질에서 유출해낸 향료이다. 이는 주로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향료라 한다. 우리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한다. 제사장은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하고, 하나님과의 중간 매개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외국인노동자 역시 나그네 혹은 철새(migrant)라 부른다. 뿌리를 떠난 사람들(uprooted people)이다. 갈 곳도 잠자리도 없는 사람이다. 아기 예수가 세상에 올 때 갈 곳이 없어 여관을 전전 긍긍하다가 결국 마구간에 태의 자리를 정하고 그곳에서 나신 것이다. 아기 예수는 나면서부터 갈 곳 없는 나그네로 오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도망자로 나그네로 몸을 피해야 했다. 그래서 아기 예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친구이자 이들의 구세주이기도 하다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
셋째로 드린 예물은 몰약으로서 죽음과 삶을 의미한다. 몰약은 나뭇가지와 잎 사이의 진액으로 굳어진 액체로서 방부제 역할을 한다. 특히 사람이 죽고 나면 시신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약품이다. 몰약은 주로 예수의 죽음과 삶을 의미한다.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고향을 도망 나와 이집트로 도망을 가야했다. 아기 예수를 잡아 죽이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헤롯군대를 피해 도망 간 것이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를 찾지 못하자 3살 이하의 모든 어린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한다. 이 당시에 많은 어린아기들의 칼끝에 희생을 당하였다. 늘 도망 다니고 숨어 지내야 하는 지금의 외국인노동자들의 상황과 조금도 바를 바 없다. 단속을 피하여 9명이 목숨을 잃어 버리는 오늘의 상황이 바로 예기 예수가 죽음을 피하여 도주한 상황이다. 아기 예수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갔듯이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이 땅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국경을 넘는 이주 노동은 단순한 돈벌이의 상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죽음의 사선을 넘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아기 예수가 그랬듯이 지금 외국인노동자는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오늘을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따스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아기 예수께 동방박사가 드린 세 가지 예물 속에 담긴 외국인노동자와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여전히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된 자들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성서가 가르쳐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교훈을 되새기며 기독교인들은 이들 나그네 된 자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이름이 있어도 이름대신 “야 임마”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은 “우리도 인간이다”라며 한국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성탄 선물은 ‘차별없는 따스한 마음’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 하지 말라. 너희도 애급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 이니라.(출애굽기22:21)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박하거나 학대하지 말려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예레미야22:3)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네게 두지 말며 (레위기19:13)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곤 내게 한 것이라 (마태복음 25:40)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5:16)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박천응 목사/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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