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인교회가 선교지에서 신학교를 세워 현지인을 양육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신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사역하는 현지인이 생기다보니, 잘못된 교리나 사상에 휩싸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나 아프리카 경우 잘못된 가르침으로 기독교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한국교회서 이단시여기는 곳이 활개치고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또한 한인이 현지어를 배워 교회를 개척하는 것보다 현지인을 양육해 그들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에 신학교 사역은 중요한 사역중 하나이다.

본지는 서부아프리카에 위치한 코트디브와르(영어명 Ivory Coast) 아비장한인교회(담임 백성철 목사)가 펼치고 있는 신학대 운영과 현지 교회개척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비장한인교회는 많은 목회자가 꿈꾸는 전 교인이 평신도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교회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코트디브와르는..
서부아프리카는 북으로 모리타니아로부터 남쪽 카메론까지 16개국이 있으며, 인구는 나이지리아 1억 2천명을 포함해 총 2억 4천만 명이 살고 있다. 북위 10도선 이상 서부아프리카 국가는 대체적으로 이슬람이 주종교(6개국)이며, 기타 나라는 전통 신앙이 주종교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고 있다. 개신교가 주종교인 가나와 나이지리아는 신학 교육부재로 이단이 범람하고 있다. 이들 16국가 9개국 9천만 명이 불어를 사용하며 이슬람 주종 6개국 중 5개국이 불어권(세네갈, 말리, 기니,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이다.

코트디브와르도 불어권으로 1천 6백만 명(2005년자료) 60개 이상 부족으로 구성돼 있으며, 면적은 남북한 1.5배다. 수도는 암스크루(15만 명)이나 행정수도에 불과하고, 아비장(3백 50만 명)이 경제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동쪽으로 가나, 서쪽으로 라이베리아와 기니, 북쪽으로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등 5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진하는 이슬람 세력과 북진하려는 기독교간 대치 상황과 인접 이슬람 국가 통로 국가로 중요성이 매우 높은 입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코트디브와르는 1893년 프랑스 식민지로 있다가 1960년 독립국이 됐다. 1999년 12월 24일 군부 쿠테타가 일어나 2000년 10월 바보 대통령이 집권했다. 현재 내전 등으로 유엔군이 주둔하고 있다.

아비장한인교회는 1980년에 세가정이 모여 첫 예배를 시작한 이후 6년 동안 가정에서 예배드린 후 초대 담임으로 김인철 목사가 부임했으며, 2대 담임인 곽상호 목사에 이어 1996년 3대 담임 백성철목사가 부임했다. 성도는 50%가 사진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올해로 창립 27주년을 맞이했다.

뉴욕신학교와 손잡은 입테시신학교
아비장한인교회는 지난 2천년에 현지인 목회자 양성을 위해 입테시신학교(코트디브와 장로회신학교)를 세웠다. 현재 40여 명 신학생이 3년 코스로 학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 신학대생을 위해 여러 한인교회서 후원하고 있다. 뉴욕복된교회(담임 최예식 목사) 경우 10여 명 신학생을 돌보고 있다.

또한 신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을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이 학위를 취득하면 그들을 입테시 신학교 교수로 세운다.

지난 여름(8월)에는 뉴욕신학교(NY Theological Seminary) 부총장과 디렉터가 방문해 입테시 신학교 운영에 놀라워하며 직접 뉴욕신학교에서 교수를 지원해 입테시신학교에 박사코스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우리가 못하는 일을 백 목사가 해냈다."라고 감탄해 했다. 입테시신학생 졸업식으로 KPCA 동북노회 노회장 김영 목사(웨체스터 제일교회)와 코트디브와르를 찾았다가 이들 일행을 만났던 최예식 목사는 "미국이나 다른 선교사가 신학교를 세웠지만 실패했는데, 백 목사님은 현지인을 헌신적으로 섬기며 사역하고 있기에 뉴욕 신학교 관계자가 그것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라고 언급했다.

두 학교 교류는 백성철 목사가 뉴욕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과정을 밟았기에 안면이 있었으며 입테시 신학교 소식을 듣고 뉴욕신학교에서 직접 코트디브와르를 방문하며 이뤄진 것이다.

현재 입데시신학교는 학생 교육뿐 아니라 기존 목사와 사모 평생 재교육을 하고 있으며, 불어권을 포함한 인접 서부 아프리카 선교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지 교회 개척
아비장한인교회 지원으로 12개 지교회가 설립됐다. 이중 교인이 200명 이상으로 자립한 3개 지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세워 전체적으로 30여개 교회로 늘어났다. 이는 입테시 졸업생이 매년 2개 이상 현지인 교회를 세우며 교회 개척에 탄력을 가하게 됐다. 이들은 가정교회로 시작하며, 아비장교회 지도하에 가정교회가 한국이나 미국 한인교회와 자매 관계를 맺어 자체 성전과 최고급 시설 사택을 제공받게 된다. 또한 교회건축시 반드시 아이를 위한 놀이터와 교육관도 짓는다.

개척교회 모든 후원은 아비장교회를 통해 현지인교회로 들어가며, 3년간은 아비장교회에서 서포터 해준다. 또한 현지인 사역자가 사역을 힘들어할 시 아비장교회에서 사역자를 다른 이로 세우기도 한다. 이처럼 교회개척은 아비장 한인교회와 신학교와 한인교회 협력으로 진행되며, 아비장 한인교회가 사역에 있어 중요한 중심축 기능을 하고 있다. 아비장한인교회는 현지인 교회가 자립해 또 다른 지교회를 자체적으로 개척하도록 돕고 있다.

다음은 사역지 교회와 협력교회

다부 교회(1997):뉴저지 주소망 교회
아보보-온누리 교회(1998):뉴저지 온누리 교회
벤자빌 교회(1998):뉴저지 트렌톤장로교회
요뿌공 교회(1999):뉴저지 온누리교회
디보-엠불러 교회(2000):필라델피아 앰불러장로교회
아냐마교회(2003):뉴저지 한소망교회(EM)
은두시 복된교회(2004):부천 복된교회
싸쌍드라교회(2005):KPCA 동북노회
다나내 교회:스페인 라스팔마스선교교회

백성철 목사와 아비장 한인교회
백성철 목사는 한국에서 집사로 있으며 '평신도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언기도를 했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뒤 신학교를 졸업해 목사안수를 받으며 뉴저지 애디슨 지역에서 교회개척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백 목사는 최예식 목사가 뉴욕에서 목회를 시작하기 이전 벧엘기도원에서 사역하고 있을 당시 벧엘기도원에 찾아갔었다. 그때마침 아비장한인교회 한 교인이 담임목사를 청빙하고자 미국에 왔다가 벧엘기도원에 들렸었다. 이후 벧엘기도원 파송선교사로 백 목사가 아비장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코트디브와르를 가게 된 것이다.

최 목사는 "백 목사가 5년 목회하고 다시 뉴욕으로 오기로 했었지만, 그가 기도하며 '선교사로 코트디브와르에 뼈를 묻겠다'고 결심하며 계속 사역한 것이 벌써 12년째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사역을 하다 보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교회를 세우게 됐고 신학교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며 "백 목사님은 절대 자기 것을 먼저 챙긴 적이 없다. 사심 없이 사역에만 집중한다."고 그의 인간성을 설명한다.

2년 전 내란으로 반군과 정부군이 대치상태에 있을 때 일이다. 대사관에서 선교사도 철수하라고 권해 10여 명 한인선교사도 다 철수한 상황에서 백 목사와 아비장한인교회 교인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백 목사는 "여기서 죽을 테니 다 가라"고 했지만, 교인도 백목사와 함께 남아 총알도 날아오는 상황가운데 교회를 지켰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내란이 지나갔으며, 떠났던 선교사가 백 목사에게 '우리는 살려고 다 나갔는데, 혼자 남아 계속 사역을 진행했다'며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반군지역에 있는 10개 교회에서 백성철 목사를 초대한 일이 있었다. 한국대사관도 교인도 반군 지역에 들어가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그는 '교회가 부르는데 어떻게 거절하느냐. 생명을 내걸고 가겠다'고 밝히며 들어갔다. 이에 백 목사 사모도 '혼자 죽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나도 같이 가겠다'며 부부가 함께 들어가 반군 지역에 아름답게 교회를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기도 했다. 이후 반군지역 10개 교회가 아비장한인교회와 같은 노회(아비장한인교회는 KPCA 동북노회 소속)에 가입하는 일도 있었다.

최 목사는 "한국대사관도 미 대사관도 그런 백 목사 희생과 섬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며 "백 목사님은 사례금도 다 헌금으로 내놓고 있다. 교인도 '우리 목사님은 하나님 일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분이다.'라고 말하며 그들도 헌신적으로 모든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아비장한인교회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에게 어머니와 같은 교회이기도 하다. 해마다 그들을 초청해 1주일간 세미나 등을 진행하며 재충전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코트디브와르가 서부아프리카 수도 역할을 하고 있기에 물자가 가장 풍부할뿐더러, 섬김에 최선을 다하는 백 목사와 아비장한인교회 교인의 헌신이 뒤따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9월 KPCA 동부노회 노회장 자격으로 입테시 신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김영 목사는 "아비장한인교회 모든 성도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역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모든 성도가 다 선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힘 있는 신앙 모습이었다."라며 "교인이 4-50명뿐이지만 교회 예산이 35만 불이다. 있는 힘을 다해 선교하는 교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부 아프리카의 복음화
아비장한인교회는 엡테시 신학교로 인접 이슬람 국가에 선교사를 파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코트디브와르, 토고, 카메론 등 한인선교사가 운영하는 3개 신학교를 중심으로 서부 아프리카 사이버 신학대학을 설립하려고 한다. 아프리카 토속어 성경 발간 및 토속어 목사를 집중적으로 양육할 계획이다. 북쪽 이슬람 선교를 위한 라디오 방송도 설립할 예정이다.

최예식 목사는 "이번에 KPCA 동북노회차원에서 선교센터를 지원해줘 아비장한인교회는 선교센터를 짓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서부 아프리카를 커버하려고 한다."라며 "주변이 다 이슬람권이다. 코트디브와르도 이슬람권이지만 종교 자유가 있는 나라다. 이곳에서 신학생을 배출해 서부아프리카를 전도하면 엄청난 파워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