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Photo : 기독일보)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초등학교 때 그 친구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친구의 집은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밀가루 공장 사장 아들이었던 그 친구의 집은 공장의 한 켠의 큰 집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친구 어머니가 저희들을 부르시더니 저와 제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너희 아버지 뭐하시노?" 어떤 영화에서 선생님이 한 질문으로 유명한 그 질문에 한 친구는 의사라고 하고, 한 친구는 선생님이라고 하고, 한 친구는 공장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한 똑같은 질문에 "아부지, 사업하시는데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수첩에다가 그 친구 이름과 제가 대답한 저희 아버지의 직업을 그 수첩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는 귀가 안 들리는 장애를 가지셨지만, 할아버지 유산으로 인해 아무 일도 안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집에만 계셨고 그런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대구에 2개밖에 없는 사립초등학교였는데, 그 때 당시에 꽤 비싼 등록금을 한달에 내야 했기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대구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셨습니다. 근데 저희 부모님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장애를 가지셔서 항상 집에 계신 아버지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셔서 문맹이셨던 어머니로 인해 저는 초등학교 내내 열등감을 가지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친구 집에 갈때마다 주눅이 들고 부모님들의 챙김을 받는 그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저는 장남으로서 항상 부족한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러한 부모님들을 친구들이 알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제가 제일 싫었던 것이 바로 저의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가정 조사 때 부모님의 직업란에는 항상 거짓말로 써내야 했고 친구 집에 놀러가면 그들의 부모님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항상 거짓으로 대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아버지 직업을 두명의 친구 부모님에게 다르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생겨서 창피를 당할 뻔 한적이 있습니다. 억지로 둘러대서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것이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습관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잊지 않도록 제가 말한 아버지의 직업을 수첩에 기록해 놓은 겁니다. 그냥 똑같이 대답하면 되는데, 숫기가 없어 당황스러우면 꼭 다른 직업을 이야기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큰 열등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나름 이쁘게 생겨 많은 칭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보고 잘 생겼다고 하면 그것이 이상하게 싫었습니다. 인정이 안되고 도리어 저를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 열등감은 또 다른 열등감을 만들어 가고 또 다른 열등감은 스스로 가면을 쓰도록 저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 마음은 절대 들키지 않고 어른까지 잘도 버텨왔습니다. 자신 있는 사람처럼 그리고 당당한 사람처럼 열심히도 가면들을 만들어 쓰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참된 빛이 저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의 모든 삶의 열등감이 오히려 그 빛을 바르게 알도록 하는 도구가 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겁니다.

오히려 그러한 열등감으로 살아온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게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의외로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것보다 더 감사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의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의인 "예수님"만 자랑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드는 그 약함이 너무 큰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만이 나의 자랑이 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부족했던 나의 과거의 삶이 너무 좋습니다. 부족하셨던 저의 부모님이 너무 좋습니다. 부족했던 저의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부족했던 저의 능력이 너무 좋습니다. 부족했던 저의 건강이 너무 좋습니다. 부족했던 저의 성격이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삶을 살도록 하신 하나님이 너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족함 때문에 십자가가 더욱 더 큰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예수님만 저의 기쁨과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열등감 속에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숨겨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 약함이 복입니다. 제가 증인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