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문명은 불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죄악도 더불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요리하고,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내 다양한 불들이 있는가 하면, 욕망의 불, 질투의 불 등, 인간 내면에서부터 타오르는 불들도 있습니다.

번제단에 가장 중요한 것도 불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태우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번제단에서 쓰는 불은 인간이 만든 불이 아닙니다. 번제단에 쓰는 불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성막을 건축하고 난 다음에 번제를 드리기 위해 첫 번째 제물을 번제단에 올려놓았을 때입니다. 그때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살랐습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4)

성막에서 쓰는 불은 인간이 그때그때 피운 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불입니다. 성막에서 불이 필요한 곳이 세곳입니다. 번제단과 등대, 그리고 분향단입니다.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울 때 쓰는 불 뿐만 아니라 성소의 등대불을 밝힐 때도, 향단에 향을 피울 때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불을 써야 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인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하나님께 향을 피우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불을 내려주신 것이 아니라, 한번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불 끄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1445년 하나님께서 한번 내려주신 불을 간직하면서 성막과 성전에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불로만 사용하였습니다. 번제단에 제물을 드리지 않을 때는 불씨를 화로에 잘 간직해 두었다가 다음에 그 불씨의 불을 밝혀 다시 사용하였습니다.

일본 오끼나와에 가면, 유명한 오뎅집이 있다고 합니다. 오뎅국물이 얼마나 맛있는지 멀리서도 손님들이 온다고 합니다. 한번은 기자가 오뎅집 주인에게 맛있는 오뎅국물을 내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주인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오뎅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3대째 이어온 가업입니다. 할아버지가 맨 처음 오뎅집을 열면서 피웠던 불을 지금까지 한번도 꺼뜨리지 않고, 그 불로 오뎅국물을 우려냅니다.”

맛있는 오뎅국물의 비결이 할아버지가 피웠던 그 불을 잘 간직하면서 지금까지 같은 불로 오뎅국물을 우려내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불은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막은 번제단에 내린 불로 시작된 것이라면, 교회는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로 시작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불을 통하여 얻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충만한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세상에서 가장 능력있다는 설교, 가장 은혜롭다는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도처에 넘쳐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신앙이 자꾸 위기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은혜받은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자꾸 까먹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불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서운하다,” “억울하다,” “시험들었다”는 등의 인간적인 불에 사그라들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한번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믿음의 능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