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Q. 예수님에 대한 호칭으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그냥 상징적인 이름이었는지 아님 실제적인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요..
또, 이사야서에 나타난 아하스의 모습을 보면서...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택함받은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끊임없이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는데요. 제가 궁금한 것은 아하스의 말년의 삶이 어떠했는가라는 것입니다. 강권적인 은혜로 인해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택함받은 아하스가 개인적인 구원은 이루지 못했는지요...

 

A.

1. 이사야 (7-12장)은 이사야가 아하스 시대에 예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7-8장의 예언은 이사야의 아들들의 이름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1) 스알야숩(사 7:1-9)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주전 735년에 아람과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군사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은 곧장 유다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첫 공격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그들은 또 다시 군사 동맹을 맺고 유다를 칠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다를 쳐서 반 앗수르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유다 왕 아하스를 제거하고, 자신들을 따를 자(다브엘의 아들 7:6)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7:2). 유다는 아람-이스라엘 동맹군의 뜻을 수용하든지, 아니면 앗수르에 원병을 요청하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하스는 반앗수르 동맹을 반대하고, 앗수르에 원병을 요청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아하스에게 보냈습니다. 이사야는 그의 아들인 "스알야숩"(뜻-남은 자가 돌아오리라!)과 함께 아하스를 만났으며, 아하스에게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이사야는 아람 왕(르신)과 이스라엘 왕(베가)이 진노했다고 해도, 그들은 불에 다 타서 꺼져가는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7:3,4). 그때에 이사야와 동행했던 스알야숩이 이 약속의 살아있는 징표가 되었습니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여호와께서 다윗의 언약(삼하 7장)을 따라 남은 자들을 두신 것이며, 그들이 돌아와서 유다를 계승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아람과 이스라엘은 65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고한 후에, 아하스에게 이를 굳게 믿을 것을 권면했습니다. 


2) 임마누엘(사 7:10-25)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그 사실을 믿게 하려고 "하나님께 한 징조를 구하라"고 요청했습니다(10-11).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했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사야는 앗수르가 징조를 구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직접 징조를 주실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사야는 곧 "처녀가 한 아이를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임마누엘은 극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 계시고,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후에 이사야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으며, 실제로 그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불렀다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이 아이가 철이 들기 전에 아람-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며(7:16), 그 아이가 선과 악을 선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유다가 애굽과 앗수르로 인해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7:15). 그리고 그는 이 일로 인해서 유다는 황폐해지고 곳곳마다 가시가 자라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7:17-25). 


3) 마헬살랄하스바스(사 8장)-노략이 신속하게 이루어짐- 
 그 후에 이사야는 또 한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이 빨리 행해짐)였습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아이의 이름은 법적 증거로 삼기 위해 큰 서판에 기록되어 예언이 성취될 때까지 보관이 되었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이 사실임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앗수르와의 동맹을 고집했습니다. 아하스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여호와)을 버리고, 낮선 앗수르 강물을 더 좋아했습니다. 실로아는 기혼샘에서 성안의 물 저장소까지 물을 끌어주는 수로였습니다.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고(8:5-8). 술객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좆으라고 권고했습니다(20). 그러나 아하스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스 왕 때는 유다에게 있어서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아하스 때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아하스와 같은 악한 왕이 있었지만, 다윗 언약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왕 아하스가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다윗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유다를 남겨 두셨습니다. 아하스가 구원을 받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대하 28:27)을 보면 그가 죽었을 때에 그 열조와 함께(다윗과 함께) 장사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다윗의 길을 좆지 않고 일생 동안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의 언약에 소속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임마누엘과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의 예언은 일차적으로 이사야의 아내와 그녀가 낳은 아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이 완전히 성취된 것은 "처녀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을 통해였습니다. 주님께서 태어나신 때의 유다는 아하스 왕 때처럼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이두메인)인 헤롯은 로마를 등에 업고 다윗의 후손(왕족)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유다는 다윗 언약이 깨어질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다윗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헤롯 왕 때에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아들을 낳게 하시고, 그 아들을 통해 영원한 다윗의 보좌를 계승하게 하셨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바로 "예수"(구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헤롯으로 인해 다윗의 보좌가 끊어질 위기의 때에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위기의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임마누엘)을 보여주신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예수"(구원)라고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극한 고난 중에서도 자기 백성인 유다를 잊지 않고 그들과 함께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아기 예수를 통해서 완전하게 성취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하스 때에 아하스가 앗수르를 등에 업고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처럼, 헤롯 왕 때에도 헤롯이 로마를 등에 업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위기 때에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고, 아기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출처:biblena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