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신앙의 가르침 속에는 많은 패러독스(paradox), 즉 역설(逆說)이 있다. 역설이란 ‘겉으로는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진리가 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성경의 가르침은 역설로 가득하며, 이에 대한 이해 정도는 신앙의 깊이에 대한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등장하는 8복의 내용은 전체가 역설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온유한 자의 복, 애통하는 자의 복,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등은 세상의 복과 대조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에 대한 역설적 설명이다. 영적인 파산, 영적인 겸손, 영적인 비애와 영적 굶주림이 저주가 아니라 복이 된다는 가르침은 역설이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역설의 윤리도 가르치신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막 10:4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5).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마 19:30). 바울의 가르침 중에서도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는 말씀도 역설적 진리의 다른 사례이다.

성경의 여러 가르침도 역설이지만, 우리의 믿음을 관통하고 있는 복음의 핵심내용이 역설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독일의 개혁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ergen Moltmann)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Crucified God)이라는 책으로 서술하였다. 이는 명백한 역설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군림하고, 억압적이며, 위계적인 하나님 되시기를 포기하신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내려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까지 자기를 포기하신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향한 은혜로운 역설이자 위대한 역설이다.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땅히 영화롭고, 빛나며, 권위 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섬기는 왕”(Servant King)이 되셨고,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비참하게 죽어간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역설이다. 예수께서는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왕은 “제사장인 왕”(Priestly King)이신지라 자신을 제물로 십자가에 드리셨다는 것은 영광의 제사장적인 왕이 얼마나 철저하게 낮아지셨는가를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복음의 사건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생한 은유(metaphor)의 형식으로 전파된다. 이 역설적 은유는 우리에게 복음이 전달하는 의미심장한 진리와 감동을 전하여 준다. 폴 리꾀르가 말한 것처럼, 생생한 은유를 통하여 주어지는 “상징은 생각을 일으킨다”(Symbol gives rise to thought). 그런데 그리스도 사건의 역설이 주는 상징의 내용은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감격적으로 전달한다.

2018년을 보내고 이제 우리는 소망의 2019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충현선교교회가 세워진지 34주년을 바라보면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이 때에 우리 교회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충현 제단은 고 정상우 목사님을 위시한 여러 신앙의 선배들이 흘린 눈물의 장마비 속에서 시작하여 복된 장마비를 체험하는 오늘에 이르렀다. 눈물로 씨를 뿌리러 나가서 기쁨으로 후손들의 영적 성장과 부흥의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이 은혜의 역설이다.

개척된 지 4년이 지나면서 교회는 스스로 가난하여 지기로 결심하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해외의 복음전파를 위하여 낮아진 교회에 얼마나 많은 풍성함과 부요함을 채우셨는지 모른다. 교회의 어른들과 자녀들이 선교지에 나가 복음의 세계적 확산을 바라보며 동참하고,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체험하였다. 이제 선교 30주년을 맞이하여 20여 선교사 가정을 초청하여 선교대회를 가지며 풍성한 영적 추수를 확인할 것이다. 교회 예산의 4분의 1일을 선교에 투입함으로 가난해진 것은 선교 제단의 부요함으로 다시 채워지는 역설이 되었다.

2019년을 바라보면서 당회는 두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우리의 자녀들과 지역사회를 위한 어린이 학교(Day Care Center)를 시작하려는 결정이고, 앞으로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위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모든 결정은 현재의 재정적 핍절함에도 불구하고 후대들을 위한 투자이다. “차세대를 위한 자유”(Freedom for the Next Generation)라는 모토를 가지고, 우리 교회는 자유로운 교육공간으로 자유로운 교제의 공간으로 자유로운 예배의 공간으로 변화될 것이다. 현재의 우리 세대가 선택한 제한과 핍절은 미래 세대의 자유와 부요함을 얻게 되는 역설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