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의 아버지 오므리는 그야말로 잘난 사람이었습니다. 엘라 왕 암살 후 3장군의 혼란기를 평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오랫동안 북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집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우리주변에도 운동 잘해서 잘난 사람, 공부를 잘해서 잘난 사람, 여러 모양으로 잘난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잘난 사람은 잘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과 주변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난 사람은 예리한 칼과 같습니다. 반면에 잘된 사람은 칼집입니다. 칼집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좋은 신앙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리한 칼과 같이 잘난 사람은 반드시 칼집이 필요합니다, 칼집이 없으면, 그 날카로운 칼로 자신을 벨수 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그랬습니다. 힘 있고 능력 있다 여겨졌던 칼을 자랑하다가 아버지를 다치게 했습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칼은 칼집 없으면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잘난 사람은 반드시 잘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카로운 칼을 주시기보다는 그 칼을 집어넣을 수 있는 칼집부터 주십니다. 그것이 은혜와 사랑으로 주시는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신앙인은 신앙의 칼집을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껏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날카로운 칼은 칼집 이후가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의 칼집 없는 날카로운 칼을 받게 되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좋은 집에 살면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고. 많은 월급 받으면서 정신 이상에 걸릴 수 있습니다. 상황은 칼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좋아지면 해결 될 거야? 한 안일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결코 어떤 상황이나 조건이 칼집이 아니고 신앙만이 칼집입니다. 신앙회복이 우선입니다. 예배 회복이 우선입니다.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자아실현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self가 문제였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 생각입니다. 그런데 내 인생이니 내가 완성한다니요? 완전한 율법으로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만들려했던 바울도 끝내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self로 살지 말고,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self로 살아 성공했던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전도서에서 인생은 허무하고 무가치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칼집 만들되 얼마든지 부어주시는 날카로운 칼이라는 은사와 축복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self로 살지 말고, 은혜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Self로 살기보단 Grace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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