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라면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스승입니다. 세네카는 로마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수사학, 변론술, 웅변술 그리고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하지만 왕의 미움을 받아 8년간의 유배생활을 합니다.
코르시카섬에서 8년간의 유배생활 마치고 돌아 온 세네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황제 클라우디우스 양아들 네로의 가정교사가 됩니다. 가정교사의 인연으로 네로가 황제에 즉위하자 보좌역으로 왕의 통치를 돕습니다. 그러다가 왕의 폭정에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독서와 집필에 몰두합니다.
네로 폭정에 반대했던 세네카는 황제의 미움을 받다가 네로의 암살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을 받습니다. 황제 네로는 옛 스승 세네카에게 즉시 자결하라고 명령합니다. 세네카는 자신의 제자 네로의 명을 받고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세네카는 키케로와 함께 로마를 대표하는 철인입니다. 그가 남긴 행복론은 곧 살펴 볼 어거스틴의 행복론과 더불어 로마 시대 양대 행복론입니다. 물론 세네카 행복론은 어거스틴 행복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네카 행복론을 정리합니다.
첫째 세네카는 올바른 기대가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잘못된 목표 설정이 불행의 출발입니다. 세네카는 행복을 위해 정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세네카는 소소한 만족과 기쁨을 통한 행복을 목표로 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세네카는 황홀한 쾌락의 절정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지속적으로 누리는 만족, 보람 그리고 기쁨이 행복을 준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쾌락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삶의 소소한 만족, 보람 그리고 작은 기쁨을 기대하는 것이 행복을 누리는 지혜입니다.
둘째 세네카는 이성의 활용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세네카는 냉철한 철학자요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이성이 신이 주신 최선의 선물로 이성을 활용한 삶이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이성을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하며 살아야 행복합니다.
이성을 활용해서 “참아야 하는 것은 의연하게 참아야” 하며 “인간의 힘으로는 회피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초연함으로 자유로운 것이 이성적인 삶이요 행복한 삶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이성적인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을 준비하고 행복을 누리는 삶입니다.
셋째 세네카는 미덕의 실천이 행복의 진입로로 이해합니다. 세네카는 진정으로 행복하려고 하면 미덕을 앞장세우고 쾌락은 따라오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미덕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미덕이 없는 인생은 아무리 많은 소유와 권력을 자랑해도 미개인이요 야만인의 삶이요, 미덕이 없는 삶은 금수와 유사한 삶입니다. 미덕이 없는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넷째 세네카는 물질에 대한 자유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네카는 욕망의 관리를 말합니다.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재산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재산으로 미덕을 실천할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네카에 의하면 부의 노예가 아닌 부의 주인이 되어야 행복합니다. 부유함은 선이 아니지만 지혜로운 부유함은 선과 미덕을 위한 통로입니다.
세네카의 행복론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깊은 사변을 통해서 숙성된 그의 행복관은 지금 읽어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과 동시대를 살았던 세네카의 행복론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세네카의 행복은 땅의 행복을 말하고 바울의 행복은 하늘 행복입니다. 세네카의 행복이 찰나적 행복이라면 바울의 행복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세네카의 깊은 사색에 근거한 행복론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정리된 바울의 행복론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원수도 삶의 불편함도 고통도 극복한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나는 기뻐(행복)하고 기뻐(행복)하리라(빌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