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희 집사
(Photo : 기독일보) 조준희 집사

모든 인생은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인식하는 사람이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7장 2절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라고 했다. 인생의 정점을 경험한 지혜자 솔로몬의 충고다.

기자는 죽음의 언덕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던 조준희 집사를 만났다. 암으로 인해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며 치료 과정을 확인하는 상황이다. 병원에서 오는 길이었다. 비교적 좋아지고 있다는 의사의 소식을 듣고 상기된 얼굴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조 집사가 토해내는 삶의 고백들은 더 아름답고 더 멋진 노래요 찬양이었다. 죽음의 언덕을 바라본 사람의 여유와 관조가 있었다.

성당에서 시작한 신앙생활

조준희 집사는 신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천주교 모태신앙이다. 아버지는 신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미사에 참석하시는 열심 있는 신앙인이셨고 신앙 안에서 리더십도 있어서 사도회장을 맡아 봉사하기도 하셨다. 이런 아버지는 딸도 신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원했다.

어린 조준희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열심히 성당 생활을 했다. 다행히 성당 생활이 좋았다. 조준희 집사에게 성당 경험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교리 교육과 신앙 훈련을 통해 신앙생활의 습관화도, 신앙의 기본 개념 숙지도 가능했다. 어느덧 하나님을 아는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교회 생활

1981년 1월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 오자마자 교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뉴욕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하면서 프라미스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그 후 남가주로 이주하면서 나성서부교회, 그리고 밸리에 정착하면서 만남의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12년 정도 만남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분주한 삶의 자리에서

대부분 이민자의 삶이 그러하듯 조준희 집사도 이런 저런 일들을 했다. 그러다가 하게 된 사업이 웨딩 사업이다. 정확히 말하면 종합이벤트 회사였다. 결혼식 준비 및 진행은 물론 모든 모임과 잔치 그리고 행사 일체를 돕는 비즈니스였다. 바빴다! 문자 그대로 눈코뜰 새가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 예배만 겨우 드렸다. 아주 가끔씩 수요 예배를 드렸고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정도의 신앙생활이었다.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너무 바빴다. 그리고 나름의 보람도 있었다. 사업도 잘 되었고 직원들을 돌보는 즐거움과 기쁨도 있었다.

죽음의 언덕을 바라보며

조준희 집사는 한동안 일 중독자로 살았다. 과도하게 열심히 살았다. 주어진 삶의 자리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쉬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쉬지 못했고 쉴 수가 없었다. 이미 시작한 사업이었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삶에 대한 의무감을 갖다보니 더욱 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 왔다. 스스로 생각해도 아픔을 잘 참고 내색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고관절 문제인줄 알았다. 진통제로 다스리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초음파 진단을 하니 임파선 문제였다. 정밀진단이 필요하였지만 정밀진단을 받지 않고 참았다. 통증이 더 심각해지면 근육이완제로 다스렸다.

암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밀진단을 받고 보니 암이었다. 의사들의 권면을 따라 MRI 검사와 조직 검사를 거쳐서 최종 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어른 주먹 크기만한 암 덩어리를 발견한 것이다. 걷지도 못하고, 구부리지도 못하고, 양말도 신지 못하고 겨우 Walker로 의지해서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암 덩어리였던 것이다.

이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2017년 7월 암이 확진된 후에 사업을 그만 두기로 맘을 먹고 건물의 리스 해제를 요청했다. 거부당했다. 2017년 8월 22일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서 다시 리스 해제를 요청했다. 그리고 23일 오랜만에 수요 예배에 참석을 했다.

그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울음이 터졌다. 좀처럼 울지 않는 조준희 집사는 그날 밤 자동차 안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끼며 통곡을 했다. 절망감이 밀려오고 그간 참아왔던 아픔이 통절하게 전해왔다. 통곡하는 동안 기도가 터졌다. “가게 문을 닫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좀 쉴 수 있게 해 주소서!” 목 놓아 부르짖었다.

8월 24일 아침 식사중에 건물 관리를 하는 매니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8월 말까지 가게를 비워 달라고 했다. 너무 급했다. 재고 정리 등의 시간의 필요했다. 매니저를 통해서 건물주와 협의한 것이 10월말 폐업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업을 그만두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까? 사업장을 정리하며 재고도 정리하고, 부채도 정리하고, 그간의 관계들도 정리하며 인생도 정리하고 있었다. 죽음이 눈앞의 언덕에서 손짓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이젠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가게 정리를 빙자해서 기증을 많이 했다. 우선 웨딩 사업에 주요 품목인 드레스들을 교회와 기관에 증여를 했다. 책들은 도서관에 기증을 했다.

남은 시간들을 헤아려 보니 별로 길 것 같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 조정하는 가운데 딸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사돈의 권면으로 시작된 일이다. 내키지 않은 일이었지만 딸의 삶에 도움이 되고, 남겨질 남편의 유익을 위해 결정한 일이다.

죽음의 언덕을 바라보며 기도가 많아지고 예배 참석 횟수가 많아졌다. 그렇다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래서 종종 드리는 기도가 있다. “주님 제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 때 저를 데리고 가세요! 그리고 주님! 하늘나라 가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소서!” 놀라운 것은 5분이면 족했던 기도인데 30분을 훌쩍 넘는 시간을 기도로 채운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기도에 담긴다.

삶의 끝자락에 다시 만지는 웨딩드레스

조준희 집사는 요즘 다시 웨딩드레스를 만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질리도록 만지고 다듬었던 웨딩드레스다. 그러나 지금은 섬김과 사랑의 마음으로 기쁘게 드레스를 만진다. 가게를 정리하면서, 현재 출석하며 섬기고 있는 만남의교회(이정현 목사)에 헌물했던 드레스가 사역의 도구가 되었다. 웨딩 미션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사역이 되기를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담임목사의 지도로 조준희 집사등의 사역 팀에서 여러 이유로 결혼식을 갖지 못한 부부들에게 무료 결혼식을 배설하려 한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겨야 한다는 교회의 비전을 실행하는 것이다. 조준희 집사가 헌물한 드레스와 그의 사업 경험이 주님의 일에 쓰임 받게 된 것이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비전과 기도의 제목 “하나님과 놀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기자가 비전과 기도 제목을 물었다. 암을 이겨가는 환자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생글생글 웃으며 인터뷰를 하던 조준희 집사는 심장을 담은 기도 제목들을 토해냈다. 먼저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아울러 남은 날들을 살아갈 길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다.

맞물려 이어지는 기도가 현재 맡은 웨딩 미션을 위한 기도다. 전도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놀고 싶어요!”라고 기도한단다. 조 집사는 평생 바쁘게 살았다. 바쁜 삶을 핑계로 예배도 소홀했다. 자연히 하나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죽음의 언덕을 바라보고 나니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이 아쉽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런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놀고 싶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근사한 기도와 소망이다.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천국이 그렇게 좋다는데 빨리 가도 좋을 것 같아요!”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신앙인의 고백이라 더욱 강한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