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박사는 서울대 철학과(B.A.)와 대학원(M.A.), 총신대 신대원, 美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대학원(Th.M.),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Dr.Thoel)를 나왔다. 그의 자유대학 신학박사 학위 논문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직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은 튀빙겐대학교 선정 20세기 100대 신학저술 모음 'Theologicum'에 수록된 바 있다. ⓒ이대웅 기자
(Photo : )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 철학과(B.A.)와 대학원(M.A.), 총신대 신대원, 美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대학원(Th.M.),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Dr.Thoel)를 나왔다. 그의 자유대학 신학박사 학위 논문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직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은 튀빙겐대학교 선정 20세기 100대 신학저술 모음 'Theologicum'에 수록된 바 있다. ⓒ이대웅 기자

 

 

개혁주의 신학 교육에 헌신한 서철원 박사(78)는 최근 교의신학 7권 전집을 완간했다. 7권은 △신학서론 : 믿음으로 신학함 △하나님론: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사역 △인간론: 인간,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론: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의 구원사역 △구원론: 의롭다 하심, 거룩하게 됨 △교회론: 교회, 하나님의 집 △종말론: 창조 경륜의 궁극적 성취 등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조직신학 저서다.

<변증학>을 쓴 반틸 밑에서 공부하며 박사학위 논문에서 칼 바르트의 자유주의 신학을 강력히 비판하는 등 '뼈대'를 세운 박형룡 박사에 이어 한국 개혁주의 신학의 '콘텐츠'를 채우는 일에 헌신해 왔다. 지난 5월에 한 세미나에서는 '현대신학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제목의 발표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은 지난달 이뤄진 서철원 박사와의 인터뷰.

-박사님 하면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나는 고3 때 WCC를 반대하다 퇴학당한 사건이고, 하나는 100대 논문으로 선정된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1959년 대전중앙교회에서 장로교 총회가 열렸는데, WCC 찬성과 반대 측으로 나뉘어 회의가 중단됐습니다. 한쪽은 연동교회에 와서 속회를 했고(후일 통합), 한쪽은 승동교회에 와서 속회했습니다(후일 합동). 연동과 승동 측으로 불렸습니다.

저는 자세히 잘 모르면서 WCC로 가면 안 된다고 다니던 학교(순천 매산고)에서 데모를 했습니다. 5월 초 7명이 함께 교정에서 인쇄물을 나눠주면서 반대시위를 하려 했는데, 사전에 누설돼 교사에게 막히고 교장이 참석한 회의 끝에 즉결처분으로 퇴학당했습니다. 결국 7월 중순 숭일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고3은 전학이 안 된다고 했지만, 정규오 목사님(전 광주중앙교회)이 넣어 주셨습니다."

-당시 퇴학을 안 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교에서 대학 진학시 장학금도 약속받았었는데, 퇴학을 당하고 나니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도움을 받았다면 힘들지 않게 살았을 것입니다. 시골내기라 서울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가정교사도 잘 못해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서울대에 당당하게 합격하셨습니다.

"지금 같으면 석 달이나 쉬고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는 열심히 하고자 했습니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총신대 신대원으로 진학하셨는데요.

"고3 때 정 목사님이 '총신대를 4년제로 만들었다. 학비도 도와줄테니 가라'고 하셨지만, 목표대로 서울대에 진학했습니다. 서울대 4년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정 목사님이 느닷없이 아버지를 통해 '총신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대학원과 해외 유학비까지 대시겠다며....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목표로 삼고 있었는데,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총신대 신대원을 같이 다니다 대학원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습니다.

군목 제도가 막 생겼을 때여서, 안수를 좀 빨리 받은 다음 시험을 치르고 27세 때쯤 군목이 됐습니다. 훈련기간에 군목 시절까지 합치면 4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다른 사람들 대학 마치고 학위 2개 딸 시간에 국내에만 있었던 셈이어서, 비참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1972년 8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는데, 이것만 마치고 다시 철학을 하려는 나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함께 미국으로 온 아내가 오자마자 임신을 했고, 세 학기 중 두 학기 시험 기간이 출산 기간과 겹쳐서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철학부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온 분에게 자문을 구하니, 7-8년 공부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철학 반 조직신학 반으로 수정했습니다."

-지도교수인 코넬리우스 반틸의 변증학 전체를 수용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반틸이 '전제주의'로 변증학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참'임을 전제하고 조직신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와의 대화에서도 기독교 기본 진리에서 출발해, 아무리 불신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신 의식'이 접촉점이 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수업 중 토론하면서 '전제주의로 창조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를 여쭤봤습니다. 저는 증명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이 '전제주의'인데 그걸 공격하니 얼마나 당황하셨겠어요. 전제주의로 칼 바르트를 공격했는데 말입니다. 반틸이 제게 합당한 답을 주진 않았습니다. 써 와서 발표하라고만 하더라고요(웃음).

기독교 진리가 참이라는 데서 출발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를 이루셨는지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창조'인데 말입니다. 물론, 저는 신학하는 방법 등에서 반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틸은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를 참 좋아합니다. 신학을 말할 때는 거의 바빙크를 갖고 이야기합니다. 계시의 흐름도 바빙크와 연결돼 있지만, 바빙크와는 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서철원 박사와 함께한 최더함·고경태 박사. ⓒ이대웅 기자
(Photo : ) ▲서철원 박사와 함께한 최더함·고경태 박사. ⓒ이대웅 기자

 

 

-어려운 공부를 결국 마치고 귀국하셨습니다.

"정규오 목사님이 총신대 시절 학비를 대 주셨고, 웨스트민스터 비행기표도 감당해 주셨습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에 갈 때는 미국 친구들이 반, 정 목사님이 반씩 후원해 주셨습니다. 정 목사님이 은퇴하신 뒤에는 자유대학에서 장학금을 주셔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총신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저술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총신대 은퇴 후 한국개혁신학연구회를 운영하고 계신데요.

"<복음과 율법의 관계>, <하나님의 구속경륜>, <교리사> 등이 있고, <성령신학>은 오순절 운동의 혼란을 정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회는 신학 교육에 복음 선포가 희박하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 사역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회자와 선교사, 신학교수 요원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성경공부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서가 기독교를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 요한 다음 신학자를 꼽으라면 히브리서 저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훌륭한 신학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확실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이루는 데는 바울의 글이 도움이 됩니다. 믿음과 은혜로만 구원을 이루는 것이지, 행함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제시한 것이 율법의 완성과 폐지입니다. 히브리서를 바로 이해해야, 구약과 신약의 연대(連帶)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교의신학 7권을 내놓으셨습니다.

"한국에 한국 저자의 바른 조직신학 책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남의 것을 옮긴 번역서나 짜깁기한 책입니다. 성경이 말한 복음의 내용을 바로 제시하고,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는 목회자들뿐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신학 서론부터 종말론까지 제시하려면 신학의 출발점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 출발점이 없습니다. 칼빈조차 신학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만 했지, 출발점은 없습니다.

모든 신학과 설교의 시작은 '창조의 경륜'입니다. 저는 그 입장에서 저술을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것이 선이기에 생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 외의 길은 악이기에, 죽음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을 한 나무에 계시하셨는데,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선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주자가 되기로 하고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쓸어버리고 다시 짓지 않으시고, 범죄한 백성을 돌이키셔서 자기 백성을 삼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려면 인간이 범한 죄값을 갚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모두 범죄자이기에, 죄값을 갚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범죄했으니 사람이 갚아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 되시어 대신 갚으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죄를 용서하도록 회복시키셨습니다. 그것이 교회로 나타났고, 그 회복이 완성되면 역사는 끝이 납니다.

이 신학 사상이 창세기에 나와 있었다면 이해하기 쉬웠을텐데, 요한계시록 마지막에야 나옵니다. 이처럼 성경 전체가 창조의 경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부나 종교개혁자들, 현대신학자들까지 2,000년 역사 속에서 '창조의 경륜' 가운데 신학을 전공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정 교리가 훌륭하고 교회를 지켜왔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예정된 사람은 무조건 구원하셨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전자처럼 이야기해 왔습니다.

물론 예정론이 칼빈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가 완성하고 체계화시킨 것입니다. 어거스틴도 아퀴나스도 예정을 말했지만, 칼빈이 완성시켰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부족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도록 예정하셨습니다.

예정된 사람은 무조건 구원을 작정하셨다고 하니, 세례를 받아도 구원의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깨달아서 구원의 은혜를 얻지만, 옛 사람을 청산하지 못합니다. 칼빈도 성화의 문제를 다뤘지만, 성경적 방안을 말하지 못한 채 '옛 사람을 죽이면 새 사람이 나타난다'고만 했습니다. 어떻게 옛 사람을 죽이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17세기 청교도 존 오웬도 '죄 죽이기'를 말했는데, 칼빈의 반복이었습니다.

우리가 옛 사람을 죽이고자 하지만 육의 욕망을 나로서는 해결할 길이 없으니, 결국 로마 교회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 2,000년 역사 최초로 성경에서 말하는 '성화법'을 제시했습니다. 이걸 못하니 모두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사막으로, 수도원으로 가면 욕망이 사라지나요? 고행과 금욕만 있을 뿐입니다.

죄의 욕망이 있을 때, 요한일서 1장 7절처럼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면 그 욕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죄의 욕망'이라는 제목이 붙지 않아서 적용을 못했습니다.

지은 죄를 깨끗하게 할 수는 있지만, 죄의 욕망도 죄입니다. 욕망이 일 때,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구속의 사건을 적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모든 데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이 책을 열심히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서철원 박사는 바르트 신학에 대해
(Photo : ) ▲서철원 박사는 바르트 신학에 대해

 

 

-지난 5월 '현대신학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발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슐라이어마허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축약된 말을 썼기 때문입니다. 반틸이 바르트를 비평하면서 칸트의 철학을 많이 해설했지만,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는 하지 못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를 이해하지 못하니, 칼 바르트와 현대신학도 좀 과격할 뿐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바르트는 구약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슐라이어마허는 창조주 하나님을 없애버렸습니다. 칸트 철학으로 완전히 신학을 바꿔서, 인간의 의식을 변형시켜 버렸습니다. 철학을 해도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칸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슐라이어마허와 바르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학이 바른 신학이고, 현대신학은 가짜라고 담대히 선포하고 공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날 대토론회에서도 오영섭 박사가 바르트를 많이 변호했는데, 그를 예찬한 글만 읽었지 본론을 모르는 것 아닌가 합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하나님이 없다면, 바르트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바르트에게는 현상만 있기에, 현상 너머 배후의 하나님은 그에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에게 알 수 없는 하나님은 그에 대해 말할 수는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밖으로 지각을 받아들이고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데, 지각을 받아들인 거나 내가 오성의 법칙을 넣는 것이나 같습니다. 감각기관으로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 다 동등하다고 말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둘 다 동등하지만, 받아들이는 면에서는 의존적입니다. 이는 경건인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이 아닌 전적 의존을 믿고 말하면 그것이 곧 신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의존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번역 과정에서 '절대의존 감정'이라는 한국어 표현으로 바뀌었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그에게는 삼위일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면서...'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의존 의식을 객관화시켜서 아들로 만든 것입니다. 절대의존 감정을 느끼는 게 하나님이지, 그에게 하나님이 따로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슐라이어마허의 실상을 바빙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 하고 싶으신 말은.

"어느 학교에서 나왔든지,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 사역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냥 선포하면서 '복음 선포'라고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 사역을 선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은, 그 선포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온 제 교의신학 책은 설교 준비 교과서입니다. 온 백성이 다 읽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