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민호
(Photo : ) ▲ⓒ사진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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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이 어떤 만물의 법칙보다 더 사실로 믿고 인정하는 속설이 있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도 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1년, 2년이라고도 하고 6개월이라고도 하는데, 하여간 점점 주기가 짧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애틋해?"
"중년 부부가 왜 손을 잡고 다녀?"
"연애한 지 1년인데 아직도 매일 만나?"
"2년 전부터 연애했다면서 아직 안 헤어졌어?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농담을 섞어, 혹은 진지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나 역시 '뜨거움이 다하는 시기가 오는 것에 대비하자'라는 글도 쓴 적이 있다.

이런 속설은 실제 그렇기도 하고, 신체 리듬이나 호르몬 변화 등 일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특정 시기를 넘어서도 애정 전선에 이상이 없으면 무슨 벼슬이라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커플은 특별하다, 나니까 이 정도 해 준다는 느낌도 있다.

반대로 사랑이 식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변덕과 불성실한 자세를 탓하기보다는, 사람은 원래 이러니까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자기가 늦게 나온 건 생각 않고 교통체증은 당연한 일이라 지각해도 내 탓이 아니라는 식으로, 아주 쓸모 있는 사랑의 변명으로 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이 마법처럼 신비해서 모든 관념을 뛰어넘는 '절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자주 낭만에 빠져서 말하곤 한다. 자기가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만능열쇠로 쓰다가도, 귀찮고 떠나고 싶을 때는 불가항력적 한계를 들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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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무엇이 정답일까.... 사랑은 심리학과 생물학을 뛰어넘는 아름답고 신비한 것일까, 한계가 존재하는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부끄러움일까....

정답은 없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랑에 반드시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시들해지면 이미 다 끝났고, 질렸고, 지쳤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변한 것만은 아니고, 사랑의 양상이나 얼굴이 조금 바뀐 것일 수 있다. 그것을 속단하여 사랑이 다했다고 단정 짓는 거다. 헤어지고 나서 그제야 깨닫기도 하지만 이미 늦다.

주변에 보면 여전히 아내가 끔찍이 사랑스럽다는 이들이 있고, 남편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끼리 왜 저러나(?) 싶다지만, 어쨌든 이상적이고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내가 아는 어떤 중년 남성은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자기 아내가 항상 예쁘지만 특히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길 때 정말 예쁘다며 "어떻게 여자가 나이 들수록 점점 더 예뻐질 수가 있죠?"라고 적었다. 진심으로 궁금한 것 같았다.

사진을 보면, "어떻게 이런 멘트를 SNS에 올릴 수가 있죠?"라고 묻고 싶을 만큼 평범한 모습이지만, 그분의 글을 곱씹다 보니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알 것처럼, 그 부인이 새삼 아름다워 보였다. 사랑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아내는 좀 민망해도 행복했을 것이며, 주변의 부러움도 샀을 거다.

그들이라고 부부싸움을 안 하겠는가.... 이처럼 실제로 아내랑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 보이고 매일 티격태격하는 것 같아도, 서로가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굳이 고깝게 바라보고, 서로 필요해서 동맹을 맺은 것이라 하면 그런 것이겠지만, 결국은 사랑이다. 얼굴을 조금 바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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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모든 음식을 버리지는 않는다. 아줌마들은 웬만한 유제품은 못 먹게 돼도 그걸로 세수를 한다나.... 절대 안 버리고 꼭꼭 보관한다. 끝내 사용을 안 해서 완전히 상해 버릴 때까지 용도는 바뀌었어도 버릴 생각은 전혀 없어서 끝까지 가지고 있다. 사람도 늘 처음처럼 애틋하지 않고 시큰둥한 것 같지만 버릴 만큼 싫지 않으면 사랑이다. 그렇게 갖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양상의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마치 오래 버티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 동물과도 같이, 최소한의 감정 소비로 애정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한쪽이 죽을 때까지, 하늘이 갈라놓을 때까지 갖고 있는 거다. 그것을 애정이 아니라고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

원래 사랑은 초라하고 못난 것이다. 그 모습으로는 도저히 서로를 선택할 수 없겠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콩깍지로 잠시 가려, 판타지의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담을 수 있게 해 놓으셨다. 그런데 그 느낌만이 사랑이라고 오해하면 진짜 사랑의 민낯이 드러났을 때 그 낯섦에 돌아서고 마는 것이다. 그 패턴을 사랑의 한살이처럼 시스템화하는 것이 세상의 철학이고, 마귀의 속임수다.

사랑은 상호작용이라서 한쪽 연인이나 배우자의 불성실함 때문에, 혹은 갖가지 예기치 못했던 변수 때문에 이별하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애초에 하나님은 할 수 없도록 창조해 놓고 그것을 해내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다. 남은 시간들은 인내와 노력으로 사랑을 유지하고, 둘 사이의 사랑의 에너지를 최소화하여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늘리며 주님 나라를 위해 함께 걸으라는 뜻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아기가 한없이 자라지 않듯이 사랑은 결코 끝없이 진화하지 않는다. 만물의 퇴보, 사랑의 퇴화는 인간의 타락과 함께 주어진 일종의 형벌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리는 죽음을 통해 애초에 범접할 수 없었던 천국, 에덴동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나라에 동참하게 하시는 것처럼, 나빠진 것보다 더욱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가능하다,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세상의 말들을 하나님 말씀보다 신뢰하는 것은 그분을 모독하는 일이 될지 모른다.

사랑을 오래 지속하는 게 돌연변이가 아니다. 계속 사랑하는 게 별종이 아니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을 퍼뜨려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가 그 말의 진원지다. 짧은 사랑, 쉬운 이별, 가정의 흩어짐.... 누가 노리겠는가?

이미 실패했더라도, 지금이라도 관념을 바꿔야 한다. 사랑에 관한 세상의 거짓말을 거부하고, 그 거짓에 속고 싶은 얄팍한 마음을 꾸짖으라.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머리를 빗는 것과 같은 일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은 한여름밤의 짧은 꿈이 아니라 생시, 뜬눈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기나긴 겨울밤의 현실임을 잊지 말자.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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