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의 차이가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A:
1. 성자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일은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위격"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 것은 318년에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이 때에 장로 중에 하나였던 "아리우스"는 당시 감독이었던 알렉산더가 설교 중에 하나님의 통일성에 대해 그릇된 언급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감독 알렉산더의 설교 내용 중에는 하나님의 통일성에 대해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러나 문제는 알렉산더 감독을 비난한 장로 아리우스 역시 성자에 대해 옳지 않은 주장을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로 아리우스는 헬라식 이원론을 따라 하나님과 사람은 직접 관련을 맺기에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사람을 중보하는 성자 역시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성자를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중간에 있는 존재 로 생각했습니다. 아리우스는 성자를 성부 하나님께 "종속된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는 성자를 하나님께 창조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성자께서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창조되신 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주장을 시로 만들어서 당시 기독교인들이 노래로 부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에 문제가 일어났으며, 알렉산더 감독은 321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하여, 장로 아리우스의 장로직을 박탈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아리우스의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그 문제가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는 분쟁 조짐까지 보이게 되자 323년 동로마 제국까지 석권한 콘스탄틴 황제는 위기감을 느끼고 이 두 사이를 중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3. 그러자 콘스탄틴 황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325년 5월 20일 전체 기독교권을 말라하는 대종교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니케아에서 열린 이 회의는 전체 기독교의 대표자들이 모두 참여한 최초의 회의였습니다. 이때에 아리우스 편을 지지했던 사람은 니코메디아라는 감독이었으며, 알렉산더를 지지한 사람은 아다나시우스였습니다. 아다나시우는 이미 "성자의 성육신"에 관한 논문을 통해 당시 신학자로 크게 인정받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에 아리우스와 알렉산더의 중간 입장에 서 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유명한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였습니다. 유세비우스는 중간 입장에서 자신이 속해 있던 가이사랴 교회의 세례 문답을 양쪽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기본 교리"로 제시했습니다. 이 교리 문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말씀, 하나님 중의 하나님....독생자, 하나님에 의해 처음 창조되신 분, 성부 하나님에 의해 잉태되신 분....등"으로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4. 그러나 이러한 고백문은 당시에 일어났던 아리우스와 알렉산더의 논쟁에 대한 만족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니케아 회의에서 교회 대표자들은 이 고백문을 아리우스의 논쟁에 답변을 제시할 수 있도록 다시 수정했습니다. 이 때에 수정된 고백문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셨으며, 진정한 하나님 중의 진정한 하나님이며, 창조되지 않고 아버지와 같은 본질로 나셨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해 창조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신앙 고백문은 당시에 참석한 모든 교회의 대표자들이 동의하였으며, 이로 인해 교회의 공식 교리로 체택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 아리우스의 입장을 지지했던 두 명의 감독만은 끝내 이 교리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이 두 감독은 파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5. 여기에서 논쟁이 되었던 문제는 성자께서 "아버지와 같은 본질", 즉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을 지니고 계신다는 구절이었습니다. 아리우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아버지와 같은", 또는 "아버지와 비슷한 본질" 을 가진 분으로 표현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대표자들은 이러한 고백에 대해서 한 발도 양보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때에 교회의 대표자들이 성자의 신성에 대한 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 만일 성자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신성"을 지니지 않았다고 한다면, 기독교 교회는 본질이 서로 다른 두 분의 신을 믿는 이신론의 종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대표자들은 성자의 신성에 대해 양보할 수가 없었습니다.
2) 또한 성자의 신성을 양보하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중보할 중보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자께서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중보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자의 신성에 대한 교리를 결코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6. 이러한 이유로 인해 결국 니케아 교회 회의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을 가지신 분" 이라는 교리를 공식으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리는 후에 몇 차례 논쟁(2차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3차 에베소 회의)을 거치면서 더욱 더 분명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451년에 열린 제 4차 종교회의인 칼케돈 종교회의에서 "성자의 신성에 대한 교리"는 최후로 확정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리는 지금까지 기독교 교회에서 수용되어 성도들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는 교회에서 세례 문답을 할 때에 성자 예수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7. 이와 같이 성자의 신성에 대한 교리는 13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서 4차례의 전 세계 교회 대표자들의 모여서 심사숙고하여 결정된 교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교리는 지금까지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전통 교리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 동안 교회 역사를 보면 이러한 기독론을 무너뜨리거나 반대하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다 이단으로 정죄되고 말았습니다. 기독론에 대한 이단은 대부분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도전을 합니다. 첫째는 성자께서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둘째는 성자께서 참 사람이라는 것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자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또한 완전한 사람"이라는 교리를 부정하는 어떠한 시도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왜 이사야가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기 600 여년 전에 다음과 같이 소리 높여서 예언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