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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혼, 처음부터 허락되지는 않았던 일


크리스천은 이혼율이 일반인들보다 낮긴 하지만 갖가지 갈등으로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혼을 한 크리스천들에 대해 신앙을 이유로 비난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많은 부부가 이혼을 생각해 볼 정도로 큰 위기나 사소한 분쟁, 이견이 있을 것이니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보다 낫다고 할 일도 아니다. 사회적 이목과 목회자라는 이유 등으로 억지로 살거나 서류만 그대로 두고 따로 사는 이들은 더욱 위선적일 수도 있다.


많은 갈등, 특히 종교 문제로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과연 하나님이 이혼을 허용하시는지, 성경에 그런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내 주변의 어떤 여성은 남편이 새로 다니게 된 이상한 교회 목사가 이혼하라고 압력을 넣으면서 불화가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물론 그런 목사는 이단이겠지만 그도 성경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이 문제다.

일단 구약성경의 율법에 '이혼 증서'에 관한 이 말씀들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가 아내를 취하여 그녀와 결혼한 뒤에 그녀에게 어떤 부정함이 있음을 발견하였으므로 그녀가 그의 눈에 호의를 얻지 못하거든 그는 그녀에게 이혼 증서를 써서 그녀의 손에 주고 그녀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을 떠나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느니라. 그런데 나중의 남편도 그녀를 미워하여 그녀에게 이혼 증서를 써서 그녀의 손에 주고 그녀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혹은 그녀를 아내로 취한 나중의 남편이 죽었으면 그녀가 몸을 더럽힌 이후에 그녀를 내보낸 그녀의 이전 남편이 그녀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그 일은 주 앞에 가증한 것이니라. 너는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할지니라. (신 24:1-4)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세의 율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 그녀를 버리라고 명령하였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이 강퍅하므로 너희 아내를 버리도록 너희를 허락하였으나 처음부터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였느니라. (마 19:7-8)

그리고 이 질문과 답 이전에 남녀 관계에 대한 처음의 창조 섭리를 그들 유대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거늘. (마 19:4-6)

물론 예수님이 계시던 이때도 구약시대이다. 십자가 사건을 전후로 구약과 신약이 나뉘며 새롭게 열린 교회시대 이후로 이방인을 포함한 신약 성도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지침들을 받게 된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 이전의 예수님 말씀이 그런 지침과 모순이 된다거나 그 말씀들의 효력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약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과 신약 교회에 대한 경륜이 다르다는 것이다. 당연히 권리와 의무도 다르다. 
이런 개념을 뒤죽박죽 이해하고 적용하면 많은 오해와 문제가 발생한다. 이혼장만 써 주면 끝이 아니라는 거다.

 

2. '갈리게 하라'와 '떠나게 하라'의 차이


그런데 고린도전서에 이혼에 관한 말씀이 있긴 있다. 믿지 않는 배우자, 즉 신앙이 서로 맞지 않는 사람과는 이혼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여, 권장까지는 아니지만 부득이한 경우에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경우다. 우선 문제의 고린도전서 7장 15절 상반절을 먼저 개역개정 성경으로 본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갈라서게 되면 갈리게 하라고...? 정말 이것이 이혼을 허용하는 말씀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는 모든 자유가 있다.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악한 길로 고의로 갈 때는 징계를 받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는 이혼도 가능하다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세워 주지는 아니하나니. (고전 10:23)

다만 이 말씀처럼 가능한 모든 일이 유익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7장 15절 말씀을 제대로 번역한 것을 보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떠나거든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경우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셨느니라. (고전 7:15, 흠정역)

 

이처럼 내가 주체가 되어 배우자를 버려도 된다는 문맥이 아니다. 배우자가 정 믿기 싫다면서 떠나기를 원할 때는 보내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는 말과는 그 주체가 사뭇 다르게 들린다. 갈리게 한다는 것은, 마치 교회나 제삼자들이 어떤 부부를 조율하고 판결하라는 식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 구절을 중심으로 7장을 잘 보면, 사도 바울은 최악의 상황을 말하면서 오히려 웬만해선 이혼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매우 많은 교회였다. 이들에게는 험한 사례를 많이 말하면서 가르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잘 새겨서 봐야 한다. 앞뒤 문맥과 강조점이 무엇인가? 이어지는 7장 16절에서는, 배우자가 하나님을 믿게 될지도 모르는데 꼭 보내야겠느냐고 묻는다.

오 아내여,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 남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고전 7:16)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며, 우리 주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애타게 찾으시는데, 이미 구원받은 성도인 여러분이 한 영혼을 위해 남은 인생을 투자할 가치가 없겠느냐,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3.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예표(豫表)하는 결혼


구약의 대언자 호세아는 창녀인 고멜을 끝까지 사랑하라는, 어찌 보면 부당해 보이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다. 물론 호세아는 그 명령을 안 따라도 구원을 못 받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호세아와 고멜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아내인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와 성도들, 즉 그분과 정혼한 '한 처녀(신부)'인 교회시대 성도의 관계와 원칙이 비슷하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남편인 하나님을 잊고 음탕한 고멜처럼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내치시지 않는다. 신약 성도들도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구원을 잃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불공정한 약속이다. 결혼도 공정하고 평등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혼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고 인내로 완성된다. 고멜과 호세아, 구약 성도와 하나님, 성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이런 원리들을 담고 있다.


고린도전서 7장은 15절의 잠깐 언급을 빼면 다 이혼하지 말고 한 몸으로 잘 살라는 권면이다.

믿지 않는 남편은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고 믿지 않는 아내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었나니 그렇지 않으면 너희 자녀들도 부정하였을 터이나 이제 그들이 거룩하니라. (고전 7:14)

믿지 않는 사람도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는 이 말씀은 부부가 한 몸이라는 원리가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을 해도 예외가 아니라는 하나님의 원리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걸림이 되거나 교회에 방해가 되면 이혼할 수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요구하시거나 허용하시는 이혼은 전혀 없다. 그런 상대면 결혼 전에 만나지 않기를 바라시겠지만, 이미 결혼한 뒤에는 결코 나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도 이혼을 하게 될 수 있다. 치명적인 범죄나 부도덕, 폭행은 물론 의심증 같은 정신질환 등 도저히 함께 살기 어려운 케이스도 있으며, 부부간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섣불리 욕하거나 비난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다른 일에 있어서도 완벽하게 살지 못하는 것처럼 결혼생활도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혼을 할 때 믿음을 이유로 내세우거나 성경에도 이혼을 허용하는 구절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이혼을 허용할 만한 더 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원리에 위배됨을 알고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최초의 공동체를 해석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보면 그 집단의 건전성을 알 수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집단 결혼을 시키고 일정 기간 동안 잠자리도 금지시킨다든지, 툭 하면 반대하는 배우자와 이혼하고 자기네 종교단체에 전념하라는 등의 강요를 하는 간교한 이단에 속지 말아야 한다. 

결혼이 흔들리는 세상이지만, 지금 심각하게 이혼을 고민하고 있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어제와 오늘이 한결같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위로를 바라보면 어떨까....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자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함께할 것이다.

[ 출처: 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http://m.blog.naver.com/woogy68/220479255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