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듣기 힘들지만, 예전에 제가 학교에서 종교 수업을 들을때는 노아의 홍수 얘기를 꽤 들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문이 닫히는데 그 전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 죽으니까 빨리 들어가야 살 수 있으니 예수님을 믿으라는 (당시 생각에) 헛소리 였죠. 하지만 감사하게 지금 저는 그 방주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바다라고 하면 멋진 해변, 아름다운 경치, 로맨틱하고 즐거운 곳으로 생각하지만 고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죽음,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바다 끝에는 엄청난 폭포가 있어서 그 곳을 통해 죽은 사사람들이 사후 세계로 간다고 생각하여, 뗏목에 죽은 사람을 태워 장사 지내기도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바다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갈릴리 바다 (호수) 를 건너면서 폭풍이나 풍랑을 만나는 등 많은 사건들을 겪었으며, 요한 계시록에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는 바다가 있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즉 다시는 시험, 심판, 저주가 있지 않을 거라고 하는 것이죠.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원인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원인은 창세기 6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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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설명하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사람들의 딸들이 그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그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2~6:5>

당시의 사람들은 힘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사람들의 심리가 드디어 발현이 되는 시기였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하여 지어진 인간들이 자신의 능력과 성공과 발전을 힘 삼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은 악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이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죽이고 빼앗아야 나에게 힘이 생깁니다. 지금의 세상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인구는 70억이지만 120억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됩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수억명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이 것을 하나님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이 땅에 저주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저주일 뿐입니다. 인간들은 스스로 심판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폭력이 땅에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땅을 보시니, 보라, 그것이 부패하였더라. 이는 땅 위에서 모든 육체가 자기의 길을 부패시켰기 때문이라. <창세기 6:11~6:12>

지금도 똑같은 심판의 행위들을 쌓고 있는 우리들

사람들은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선이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악인것 처럼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역시 성경과는 동떨어진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오히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시에 섬길수 없다고 하셨던 맘몬을 주인으로 섬기는 시스템입니다. 지금 한국의 대기업들은 나라의 경제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엄청난 현금을 투자하지 않고 쌓아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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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에 일하던 사람들도 재계 1위 삼성 그룹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직급하나 없는 일반 시민 최순실의 명령을 받고 일해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하루에 40명 씩 여러 이유로 자살을 하고 있죠. 그 중 많은 수가 직접적인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을 하며 간접적으로는 다 연관이 되어 있죠.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두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제 곧 엄청난 경제 공황이 올 것이고 그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강력한 자들, 명성있는 자들이 되었고 또 더 강력하게 되고 싶을 뿐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열망하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서 오늘 하루를 살고 있을 뿐입니다.

여자들도 남자들도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서 내적인 아름다움보다 외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고 있고, 티비 인터넷 심지어는 신문에도 매일 나오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의 음란함을 보고 즐깁니다. 그리고 악한 상상을 합니다.

또 정치권을 보십시오.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선거의 공약과는 아무 관계 없이, 뒤로는 자신의 더러운 이득을 위해 뇌물을 받고 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뇌물을 바칩니다. 권모술수와 비열한 네게티브 만이 존재하는 곳이 정치권이며, 그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곳이 동일합니다.

그게 심판의 이유 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인간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셨는데 오직 노아를 살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노아를 살리신 이유는 노아의 선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 <창세기 6:8~9>

많은 사람들이 노아가 완전하고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의인이기에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살리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홍수가 끝나고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잤던 부끄러운 일을 행합니다. 이는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죠. 그가 완전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함이지 노아의 행위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어째튼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아주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시고 노아는 120년간 산 위에서 방주를 만듭니다. 아마 수 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자였습니다. 결국 그는 방주를 완성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수컷과 암컷이 두 마리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이레가 지나서 땅 위에 홍수의 물들이 임하니라. <창세기 7:9~10>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7일 후에 홍수가 시작된 이유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바로 홍수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7일이 지나고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7일은 창조의 싸이클입니다. 성경은 숫자가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데 7은 완전수 입니다. 이에 따라서 우리는 일주일을 삽니다. 그러면 8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시작 혹은 안식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이 세상의 역사를 나타내고 그 역사의 끝에 심판이 있을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 심판에는 두 가지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스스로 살아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방주안에 즉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이 있습니다. 노아라는 이름의 의미는 안식 입니다.

노아의 생애에서 육백 번째 해 둘째 달 곧 그 달 십칠일 바로 그 날에 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리며 비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 위에 쏟아졌더라. <창세기 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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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0일간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화산등의 깊음의 샘들이 터집니다. 엄청난 지진이 있었을 것이고 당시의 해수면이 점점 위로 올라왔을 것입니다. 이 저주의 바다 즉 심판의 바다에 닿는 사람들은 죽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직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 대신 방주가 물에 빠져서 죽고 그 안에 타 있는 자들이 살아나는 이야기가 노아의 홍수 이야기 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야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지만 구원을 얻는다고 얘기를 합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버려져서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 <요한 복음 15: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로마서 8:1>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6~3:2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 되니 곧 여덟 혼이라. 그 일과 동일한 모형 곧 침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또한 우리를 구원하나니 (이것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응답하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20~21>

침례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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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의 의미에 대해서는 로마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다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로마서 6:3~5>

침례의 의미는 예수님과의 연합이며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함께 죽어야만 예수님안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같이 부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침례는 할례에서 왔는데 할례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나의 몸에 새기는 약속의 표시 입니다.

이것이 곧 기독교가 얘기하는 복음과 바로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갈라디아서 2:20>

힘과 성공과 정욕과 돈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찬 이 세상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곧 예수님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심판 가운데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로 들어오십시오.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출처:fingerofthoma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