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명상(눅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교회학교 교사 50년을 하는 동안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유치부를 가르치던 오래 전 일인데 그 때는 지금처럼 짧은 여름성경학교가 아니고,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하면 한 보름씩 기간을 가지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했었다. 새벽기도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시간이 짜여 있다 보니 낮에 한 잠씩 재우는 시간도 있었다.

낮잠자는 시간이 되었는데 한 아이가 기도를 했다. “하나님! 피곤하시죠? 주무세요. 그럼 나도 잘께요.” 천진난만하게 기도하는 어린 아이의 기도를 듣고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의 이러한 기도와 같이 티없이 맑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그 때의 감동이 오늘까지도 나의 신앙 가치관이 되었다.

아이들을 기독교교육으로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의 영혼을 책임진다는 것은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신앙으로 지도하는 일에 있어서 교사의 책임과 의무가 얼마만큼 중요한가, 또 어떻게 지도해야 바람직한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인지를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인내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는 우선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항상 문제가 많다. 교회에 오면 우선 학교와 달리 자유스러운 마음에 떠드는 아이가 있고, 예배 시간에 들락거리는 아이도 있고, 화장실 간다는 녀석이 밖에서 버젓이 놀고 있기도 하며, 찬송가를 부르면 곡조도 안 맞으면서 일부러 괴성에 가깝게 큰 소리로 부르는가 하면, 또 어떤 아이는 새침떼기처럼 전혀 부르지 않는 아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자리를 넓히느라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도 하고, 또 교회 오면 꼭 울다가 가는 아이도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을 받아 교육하기란 인내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저 녀석은 원래 그래’ 하고 방치하거나 교육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꾸준한 관심과 가능성을 가지고 교육하여야 한다. 지금은 산만하고 영적이지 못한 아이라도 꾸준한 그리스도 정신 안에서 자라면 그 아이도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으며 모범적인 크리스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적응하고 성실한 아이만을 신임하고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을 그저 들락거리는 인원으로만 간주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교사상이 될 수 없다.

이솝 우화에 바람과 해가 길을 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람은 자신의 강한 힘을 믿고 큰소리를 치며 나그네에게 바람을 불어댔다. 나그네는 옷을 벗기는커녕 더더욱 옷깃을 여미며 외투자락을 부여 잡았다. 그러나 해가 살금살금 햇볕을 쪼이자 나그네는 긴장이 풀리며 몸이 더워져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 그들의 내기는 해가 이기는 것으로 끝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항상 해는 이겼고 바람은 진 것으로 끝난다면 바람은 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람도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의 후편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이제는 반대로 길 가는 나그네의 옷을 입히는 내기를 하기로 한다. 해가 아무리 햇볕을 쪼여도 나그네는 외투를 둘러 입지 않고 오히려 들고가는 외투조차도 성가스러워 한다. 그러나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어대자 나그네가 이제는 외투를 껴 입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바람이 이겼다.
아이들에게 바람도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이렇게 가르쳐줘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도 잘 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각오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들 역시 지금은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성장하면서 신실하고 모범적인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된다. 이렇듯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엄문용 총무(대한기독교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