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의 작시자 零下 정용철 목사(98)와 정필규 사모의 결혼 80주년 기념 감사예배는 지난 5일 평안교회(담임 강성림 목사)에서 열렸다.
정용철 목사는 강원룡 목사, 문익환 목사, 문동환 목사 등과 함께 간도 용정중학교과 한국 신학대학교에서 함께 수학했던 한국 기독교계 원로다.
80주년 감사예배는 강성림 목사의 인도로 참석자들이 정 목사가 작시한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를 찬양했으며, 강성림 목사의 설교에 이어 오정방 장로(오레곤 문학회장)와 평안교회 박종봉 장로가 축사했다.
이어 정용철 목사의 가족이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를 찬양했으며 아들 정재두 목사(워싱톤 은퇴목사회장)의 인사에 이어 문창선 목사(타코마 침례교회 원로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정용철 목사는 "사람이 산다는 것이 사람의 뜻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린 것인데, 너무도 감사하게도 저희는 80년을 부부로 함께 살 수 있게 해주셨다"며 "이 가운데 자녀의 축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정 목사 가정은 한인 기독교 역사에 드물게 정주복-정용철-정재두-정계성 4대 목사 로 이어지는 믿음의 가정으로 1대 정주복 목사는 1920년대부터 목회한 한국교회 원로 목사로 영주 중앙교회를 담임했으며, 2대 정용철 목사에 이어 3대 정재두 목사는 에덴스 한인장로교회, 알라바마 헌스빌 한인장로교회, 워싱턴 영락교회, 포틀랜드 갈보리장로교회, 밴쿠버한인장로교회 등에서 목회를 했다. 4대째인 정계성 목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남 정재두 목사는 "다이아몬드 금강 혼은 매우 귀하다"며 "대를 이어 4대 목사 와 신앙의 사람들이 되게 하도록 신앙의 유산을 물려 주신 것을 하나님 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용철 목사는 한국 교회와 미주 한인 이민교회 역사의 산 증인으로 1948년 조선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0년 한국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부터 1968년까지 일본 동경신학대학과 청산학원에서 실천신학 수학, 1978년부터 1979년까지는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목회학을 연구했다. 1978년에는 데이비스 엘킨스 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1950년부터 1954년까지 흥해 제일장로교회, 1954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 신암장로교회에서 목회했으며, 1970년부터 1983년까지는 워싱톤 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목회했다. 1983년에 은퇴 후에도 2개 교회를 개척 시무하고 7개 교회에서 인터림 목사로 시무하는 등 활발한 사역을 이어갔다.
정 목사는 목회와 학업을 병행하는 중에도 왕성한 교계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1963년부터 1970년까지 한국찬송가위원,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대한기독교서회 편집위원,1969년부터 1970년까지 한국목회연구회 회장, 1974년부터 1981년까지 워싱톤 한인봉사센타 설립 및 이사장 , 1975년 워싱톤지역 교회협의회 회장, 1975년부터 1976년까지 워싱톤 성서대학 학장, 1981년 워싱톤 한인봉사센타 명예이사장, 1982년 워싱톤 지역 한인장로교회 협의회 회장, 1983년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협의회(NKPC) 회장, 1998년부터 2015년까지 영하 장학재단(목회자 양성) 설립, 이사장, 2002년 오래곤지역 한인 은퇴목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에는 미주 한인교회 100주년 미한백상을 목회자로서 유일하게 수상했다.